<2층의 가족거실 전경>
거실은 남북으로 길게 자리를 잡고 옥상정원과 다른 방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평창......이것은 근대건축 5원칙 중 하나인 기둥과 벽의 분리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과거 석조건축은 창을 만드는 것 자체가 하나의 구조적 모험이었다. 벽 자체가 구조재 역할을 할 수밖에 없으니, 그 벽에 창을 뚫는 것은 구조재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콘크리트가 발견되고, 이로 인해 기둥이 하중을 전적으로 떠안음으로써 벽은 구조재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제 벽에는 자유자재로 창이 뚫렸다. 그것을 극대화해서 보여준 게 바로 수평창이다.
<거실의 동측방향 수평창들....파노라마처럼 주변 경관이 들어온다>
<실내의 수평창은 옥상정원의 수평창과 연계되면서 안팎의 구분을 자연스레 이어준다>
<거실에서 바라본 옥상정원 모습>
<거실에서 바라본 램프의 모습-1층에서부터 이어진 램프는 3층 옥상까지 계속 이어진다>
<꼬르뷔제가 설계한 의자도 놓여있다.>
<또다른 의자>
<안방으로 들어가는 문>
옥상정원에 나가기 전에 방들을 둘러보았다. 장식이 사라진 깔끔한 벽들은 자칫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데, 그는 천창을 뚫어 안방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유도한다. 빛은 또하나의 장식이다.
<한폭의 추상화같은 안방문 앞 복도>
<안방으로 들어가는 문>
벽과 문의 색깔, 바닥의 패턴, 심지어 커텐의 디자인까지......모두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게 아니다. 모더니스트들은 장식이 사라져버린 곳에 가장 기능적이고, 구조재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 어휘를 개발해 사용해왔다.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라 믿었던 모더니스트들은 건축물을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건축가들은 심지어 커텐을 바꿀때에도 반드시 자신의 허락을 받으라는 조건을 건축주에게 달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완벽성때문에 양식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모더니스트들은 기꺼이 자신들을 하나의 양식으로 만들어버렸고, 중세의 절대자적인 시각에서 탈피했지만 자신들이 또 하나의 절대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 이율배반적인 경직성과 엘리트적인 성향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카리스마를 제공했지만, 곧 모더니즘의 한계로 드러나고 만다.
<안방의 모습, 붙박이장이 눈에 띈다>
<안방에 딸린 욕실의 모습......욕실이 개방형으로 방 한가운데 있는 것도 특이하다. 특히 저 의자처럼 누워있게 만든 것은 목욕 후 휴식을 취하라는 것인가?>
<욕실의 조명은 역시 천창이 맡고 있다>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거실 모습>
이제 옥상정원으로 나왔다. 햇빛을 하나 가득 담은 그릇같다. 근대건축의 5원칙 중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 역시 구조와 연계되어 있다. 기둥이 벽과 분리되면서 자유자재로 평면을 조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 파사드라 불리는 전통적인 입면을 벗어나 마음껏 창의적인 입면 구성이 가능해진 것도 새로운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
<옥상정원의 수평창에 기대어 거실을 바라본 모습...저기 놓여있는 식탁 역시 시각을 한 번 걸러주기 위한, 즉 공간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기 위한 장치이다.>
<옥상정원에서 램프와 3층 옥상정원을 바라본 모습>
<2층 램프 초입에서>
이제 다시 건축적 산책을 다시 이어간다. 아까 1층에서부터 타고 올라온 램프가 바깥으로 계속 이어져있는 것이다. 램프를 타고 서서히 오르면서 느껴지는 시각의 변화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건물엔 팔라디오의 건축물과 같은 중심이 없다. 흐름만 있을 뿐인 공간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건축물의 이미지와 모습이 결정된다. 상대적 관점, 입체파적인 느낌, 그리고 더 나아가 수 많은 시각들로 채워진 해체의 향기......모더니즘은 이 모든 것을 이미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램프를 오르며 바라본 옥상정원의 모습>
<램프의 중간참에서 바라본 거실쪽 모습>
<램프를 거의 다 올라가서 다시 2층 옥상정원을 바라본다>
<드디어 도착한 3층 옥상정원>
3층까지 올라온 방문자들의 시각은 다시 저 대자연으로 향하게 된다. 끝없는 순환, 안팎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험하게끔 만들어진 주택은 분명히 당시에는 색다른 공간을 제공했을 것이다.
<3층 옥상정원의 모습-이제 건축적 산책은 끝났다.>
모더니즘은 이렇게 단순하지만 많은 의미를 그 속에 담고 있으며, 그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꼬르뷔제는 휴먼스케일을 연구하고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양식, 그리고 그에 따른 건축적 어휘를 무수히 많이 만들어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사람들은 부족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모더니즘을 채용하면서 골조와 구조재, 기둥과 벽의 축조방식만을 가져간다. 대량생산에 적합한 이유로 장식없는 박스형의 단조로운 입방체들이 여기저기 세워졌다. 모더니즘은 당시 아방가르드들에겐 무한한 가능성의 건축이었지만, 자본의 눈에는 손쉬운 돈벌이의 수단으로 비춰진 것이다.
빌라 사보아가 2차 대전 이후에도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었다. 사보아 부부의 저택에서 독일군 군수창고로, 이제는 꼬르뷔제 재단의 기념물로 관리되는 건물의 구구절절한 역사만큼이나, 앞으로 인류의 건축역사를 뒤흔든 세기의 건축물로서 오래 기억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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