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건축이야기

건축이야기(30)-'건축', 우리 시대의 자화상

budsmile 2010. 12. 11. 18:00

프리메이슨(Free Mason)......아마 음모론을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말일 것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자유석공조합이라 할까? 당시의 건축재료가 주로 돌이었으니, 이는 요즘으로 치자면 건축가들의 친목협회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단체다. 그런데 왜 그들이 음모론의 표적이 되었을까?

 

<건축제도 용구인 컴퍼스와 자로 이루어진 프리메이슨의 상징 문양>

 

고대로부터 서양사회의 중심에는 항상 '신'이 있어 왔다. 그 신의 '말씀'이 최고의 가치이자 '진리'('진실(fact)'가 아니다)로 통하는 세상에서 다른 모든 시도 - 지동설, 연금술, 근친상간과 아비살해라는 인류의 원초적 욕구를 보여준 프로이트의 학설과 그리스의 비극, 진화론, 무의식, 히피, 그리고 입체파와 자유의지,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는 철저히 억압당해왔다. 표면적으로는 19세기 말까지......그러나 그 암울했던 시기에도 그들이 대놓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건축'이었던 것이다. 신의 '말씀'을 형상화하고 신이 살아갈 집을 짓는 것은 성직자 다음으로 신성을 부여받은 소수의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거룩한 ' 사업이었다. 선택받은 소수는 그것을 위해 신학은 물론, 기하학과 물리학, 천문학과 지리학 등 이단적인 학문영역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했다. 프리메이슨의 시발이 되는 것도 바로 예루살렘의 솔로몬신전에서부터다. 그들은 고대 이집트의 지혜를 전수받아 지상 최고의 궁전인 솔로몬신전을 완성한다. '건축'은 세상을 창조하는 신의 영역에 비유되는, 지상에 최고의 인간지식을 총합하여 펼쳐놓은 종합선물세트와 같았다. 그래서 건축을 architecture('으뜸가는, 최고의'라는 Archi + '기술, 지식'이라는 뜻의 'Tecture')라 부르지 않던가......

 

<솔로몬신전 상상도(좌, everydaysaholiday.org), 유일하게 남은 서측벽, '통곡의벽'(우, www.tzetel.com)>

 

솔로몬 신전의 건축가들은 자기들만의 지식이 대대로 전승되기를 바랬다. 아니, 최고의 건축물을 짓고 나면 더 훌륭한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거기에 참여한 건축가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타지마할의 샤자한이나 페르시아, 로마의 황제들처럼 욕심많은 지배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들의 비의는 엄격한 자격을 갖춘 소수의 입문자들에게만 전승되었고, 후일 십자군 전쟁의 와중에 솔로몬 신전에서 뭔가('성배'라고 알려진)를 발견한 템플기사단의 이야기까지 덮어 씌어지며 음모론의 한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템플기사단의 마지막 그랜드마스터 '자크 드 몰레'가 1314년 화형 당한 후 박해를 피해 스코틀랜드와 포르투갈로 달아난 기사단원들은 이후 공식적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프리메이슨과 그들간의 관계가 의심받기 시작됐던 것이다. 어찌됐든, 그 성배가 '예수의 혈통'이라 주장한 '다빈치코드'가 찾아낸 것도 결국은 루브르박물관의 유리피라밋이고,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며 갖가지 이교도적인 상징으로 12세기부터 놀랍고도 진일보한 건축기술을 선보인 고딕성당(말그대로 'Gothic'......'기괴한')이 템플기사단의 본거지, 파리를 중심으로 어느날 갑자기 생뚱맞게 등장한 것을 보면 프리메이슨의 본업인 '건축'의 혈통은 어떻게든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다.

 

(여담 한가지......흔히들 영국, 미국 등 개신교가 흥하는 나라들이 잘 살게 된다고 일부 크리스천들은 굳게 믿는 듯하다. 하지만 템플기사단이 박해를 받아 흘러들어간 순서를 보면 사실이 더 명확해진다. 처음엔 파리, 그리고 대항해시대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다음엔 대영제국 그리고 지금은 미국......미국에선 알다시피 프리메이슨 출신이 역대 대통령 중 1/3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정확한 추론은 프리메이슨이 가진 고급정보와 기술력이 그들 부흥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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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의 유피라밋(좌, 출처:listicles.theimagazine.com)과 고딕성당(우, 출처:www.ntxe-news.com>

 

서론이 길었다. 건축이야기를 하며 뜬금없이 음모론이며, 템플기사단이 등장했던 것은 바로 '건축' 그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저 레고블록 쌓듯이 만든 것은 '건축'이 아니라 단지 '건물'일 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건축에는 사연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 사연과 이야기가 디자인을 만들고 형태를 만든다. 같은 예술이라도 그저 감상의 대상이 되는 조각이나 회화와 달리, 건축에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고 그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엮어내는 역사가 만들어진다.

 

이제 건축은 개인, 개별국가를 넘어서 당시의 사회, 인류가 가진 시대정신과 인무문학적, 공학적 지식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다. 그래서 건축에는 그 시대정신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한 '선구자'가 있을지언정, '천재'는 없다. 어느날 나타난 천재 한 명이 새로운 양식을 창안하고 발명할 수는 없는 게 바로 건축이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나라는 틀려도 건축이 보여주는 시대적 합목적성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 사이에 공유될 수 있는 것이다. 유로화 도안에서 유럽 각국이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상징으로 '건축'이 선정된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건축'이 가진 이 거창한 의미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건축'이 곧 우리의 현재 의식수준을 보여준다는 말도 된다. 획일적인 아파트, 무질서한 간판, 쉴 곳도 없고 각종 장애물로 가득찬 보행자 거리,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개성도, 이야기도 없이 그저 '최신'의 재료로, 그저 유명세를 바라며 초청한 외국건축가의 자문을 받아 돈으로 바른 영혼없는 '건물'들이 늘어선 우리 도시의 현재 모습은 딱 그만큼의 우리 수준을 보여준다. 그저 시간되면 '재산증식'을 위해 재건축을 밥먹듯 하는, 그래서 재건축이 가능한 유효기간 25년짜리 건물들로 가득 채운 도시를 집단적으로 묵인할 바에야, 왜 우리는 유럽의 도시같은 고색창연함과 품격을 가질 수 없는 지 차라리 묻지나 말자. 서울이나 부산이나 광주나 어딜가도 특색없이 고만고만한 도시모습이 별 볼일 없다고 대한민국을 안내한 세계적인 여행가이드북 'Lonely Planet'의 기사에 괜히 애국심 들먹이며 흥분하는 것은 오히려 촌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미약하나지만 희망은 보인다. 한사람이 꾸는 꿈은 망상이지만, 모두가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이제 우리도 우리의 건축과 도시에 대해 바라는 게 늘고 있다. 한옥에 대한 관심도 늘고, 붕어빵 아파트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건설업자가 만들어놓은 기성품보다 내가 가지고 싶은 집을 맞춤형으로 가지길 바란다. 이제 우리 세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앞으로 100년 후 또는 200년 후 우리는 후손들에게 우리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일렬로 늘어선 아파트'를 선물할 것인지......아니면 그들이 사는 시대에 화폐속 도안으로 들어갈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과 도시를 남겨줄 것인지 말이다.

 

100년도 안된 빅터 오르타(벨기에 5000프랑 도안)의 자택과 르꼬르뷔지에(스위스 10프랑 도안) 등이 참여한 베를린의 연립주택단지, 바우하우스, 가우디의 공동주택,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멕시코의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물 등이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보며 그들이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만큼이나 현재도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보이는 것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빅터오르타 자택(좌, 출처:pixdaus.com)과 루이스바라간 자택(우, 출처:www.idesignproj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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