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동유럽

동유럽배낭여행(11)-자그레브에서 류블리아나까지

budsmile 2011. 3. 15. 17:17

 

 

스플리트에서 저녁 9시 40분에 탄 야간기차는 다음날 오전 8시 정각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에 도착했다. 자그레브......수도치고는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운 지방의 시골도시 느낌이다. 달마시안 해변 도시들의 번잡하고 화려한 맛은 없지만 수도로서의 기품은 곳곳에서 느껴진다.

 

 

자그렙 구시가는 걸어서 돌아나닐 만한 규모다. 역에서 북쪽으로 반듯이 올라가면 캐피탈언덕이 나오고 거기에 성스테판교회가 있다. 동유럽 특유의 타일로 장식된 교회였는데, 많은 성상들을 지상으로 내려 수리중이었다. 마침 안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누군가의 관이 놓여있었다. 장례식중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찾아와 끊임없이 헌화하고 기도하는데, 그 웅장함과 엄숙함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교회 부근의 꽤 큰 시장에서 신선한 과일과 갓 구워 맛있어 보이는 빵을 조금 샀다.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서쪽의 약간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본다. 여기선 자그레브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데, 바로 자그레브의 심장이라 불릴만하다. 국회의사당과 박물관, 고풍스런 교회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웅장한 캐서린 교회와 막스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도 마침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캐서린 교회에서는 결혼식이, 막스교회에서는 세례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짧은 시간동안 삶의 탄생과 결혼, 죽음까지 모두 맛본 하루였다. 암튼 시원한 실내에서 의식을 한참 지켜보다가 -내가 보는것인지, 그네들이 나를 보는 것인지 헷갈렸지만- 밖으로 나와 전망좋은 공원에 앉아 점심을 때운다. 삶의 일부인 교회, 삶 그 자체가 종교인 그네들의 모습 속에선 요란스런 설교도, 이웃과 이웃의 다른 신념에 대한 비방이나 폄하도, 면죄부로 변해버린 헌금도 없다. 그렇지만 교회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그들의 순수한 모습 그 자체에서 무신론자인 나까지도 감동시키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자그레브에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리아나(Ljubliana)까지는 기차로 2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류블리아나는 자그레브만큼 작지만 고풍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도시가 깔끔하고 깨끗한게 첫인상이 좋다. 방문한 날이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다.

 

 

역에서 나와 남쪽으로 내려가면 주요 볼거리들은 다 모여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류블리아나의 명물, 프란체스카 교회다. 핑크빛의 독특한 외관은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침 여기서도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덕분에 성당 안에서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 잘 찾아오지 않는 이방인에게 결혼 하객들의 이목이 쏠리면서 순간 신랑신부가 찬밥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찌나 민망하던지....아무래도 안될 것같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당 입구의 문에 새겨진 조각이 이채롭다. 예술가의 정성이 느껴지는 문이다.

 

 

프란체스카 성당 주변에도 몇 개의 성당이 있는데, 성당 구경은 그만 두고 류블리아나에서 제일 높은 류블리아나 성에 오르기로 했다.

 

 

먼저 프란체스카 성당 앞 류블리아나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헌데, 다리모양이 독특하다. 그리 크지 않은 강에 3개의 다리가 놓여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플레체닉의 작품이라 한다. (그는 슬로베니아 지폐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지금은 유로화를 써서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류블리아나 시내에는 대학과 기숙사가 많은데, 상당수 그의 작품이라 한다.

 

다리에 서서 프란체스카 교회를 배경으로 잡히는 프레임이 제법 그럴싸하다.

 

 

이제 저 곳을 올라가야 한다.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덜후덜.....경사는 급했지만, 열심히 등산했다. 멋진 도시전경을 기대하며......

 

 

성 자체는 그리 세련되거나 놀랄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공간을 활용해 조각작품도 전시하고 저렇게 민속의상을 입은 아낙네들과 희희낙낙할 수 있어 좋았다....ㅎㅎ

 

 

류블리아나 성에서 내려다본 류블리아나 시가지 전경......잘 정돈된 느낌......!

 

 

이번엔 구시가 쪽이다. 아까 봤던 프란체스카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아쉽지만 슬로베니아에서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우선은 세계문화유산을 테마로 여행하는 나에게 슬로베니아는 그리 마음을 끄는 여행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나라의 자랑은 뭐니뭐니해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과 포스토이나 동굴인데 이를 보지 못하고 온 게 못내 아쉽긴 하다. 하지만 남겨놔야 다음에 또 오고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두 번째는 내 일정상 여기서 프라하를 가야 하는데, 현지에 가서 보니 오로지 토요일에만 야간열차 1편이 운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울고 싶은데 뺨맞은 격으로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잠시 스쳐갔지만, 슬로베니아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역 안의 맥도널드 화장실을 무단점거(?)하고 따뜻한 공짜 물로 세수를 마쳤다. 지난 3일간 갈아입지 못한 속옷까지 갈아입고는 미안한 마음에 제일 큰 햄버거(그래봐야 빅맥이지만!!)를  주문해서 배까지 채운 후 새벽 0시 53분 프라하행 기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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