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동유럽

동유럽배낭여행(13)-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소금광산

budsmile 2011. 6. 6. 23:16

체코의 프라하에서 폴란드로 넘어왔다. 지리상으로는 폴란드의 옛수도, 크라코우(크라쿠프)가 체코에서 더 가까웠으나, 연결 기차편이 마땅치 않아 먼저 바르샤바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크라코우로 내려왔다. 시간순서상 바르샤바부터 여행기를 써야 하지만 여행가기 전에 원래 계획했던 일정대로 크라코우를 먼저 정리하기로 한다.

 

바르샤바에서 크라코우까지는 기차로 2시간 반이 걸렸다. 쉴새 없이 평원을 달리는데,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강한 햇볕에 잠을 들다 깨다 반복하길 몇 번......드디어 크라코우다. 바르샤바에 비하면 시골간이역같은 곳에 배낭족이 들끓는다. 그래도 역 앞에서 트램을 타고 쉽게 유스호스텔을 찾았고, 다행히 비어있는 침대가 있어 여장을 바로 풀 수 있었다. 간단히 봉지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노라니, 소나기가 시원스레 쏟아진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크라코우는 도시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주변의 관광지가 유명하다.  우리가 잘 아는 아우슈비츠 나찌수용소와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이 그것이다. 둘 다 모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일석삼조라...ㅎㅎㅎ

 

 

 

아우슈비츠-이것은 독일인들이 붙인 이름이고, 폴란드 이름으로는 오슈비엥침이다. 크라코우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40분, 다시 조그만 시골역에서 표지판을 따라 걷기를 30여분......시원한 바람과 상쾌한 공기가 마치 나들이가는 기분이었지만, 저멀리 수용소가 보이자 기분이 제법 엄숙해진다. 불과 70여년 전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왔던 유대인들, 집시들, 히피들에게 이 길은 극심한 고통의 길이었으리라...... 

 

수용소는 막사가 2열, 소각장, 그리고 두 겹의 전기 철조망과 높은 벽과 망루로 이루어져 있다. 피와 눈물과 신음소리로 어지러웠을 이 곳은 그러나 말끔히 정리되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중 네 곳의 막사가 개방되어 전시중이었다. 당시의 문서들과 사진, 연합군 점령 후 발견된 희생자들의 머리카락과 안경, 빗, 구두, 생활도구 등등......저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엄마, 아빠였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아들, 딸이었을 사람의 소지품들이었을텐데......

 

 

 

<수용소 안 전시된 안경들...처형된 유대인들이 유품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Death Wall'- 이름 그대로 수용자들을 처형하던 장소였다. 저 검은 색 벽을 향해 서게 한 다음 뒤에서 총질을 해댄 곳이다. 인간으로서 얼마나 극심한 공포와 자괴감과 굴욕을 느껴야했을까? 볼수록 소름이 끼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극단적인 폭력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단순히 자신과 신념이, 종교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의 부와 권력욕과 영겁의 세월 속에 한줌거리도 안돼는 인생의 쾌락을 위해 다른 이들을 아무 생각없이, 어떤 거리낌도 없이 죽이고, 도륙하고, 생명을 희롱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정의'로 모든 것을 덧씌우려는 어떠한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 '정의'가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더......오로지 역겨울 뿐이다. '정의'라고? ㅎㅎㅎ 하지만 오늘도 사람들은 열심히 속이고 속는다. 히틀러는 마치 유대인들을 죽여야 '정의'가 완성되는 것처럼 독일인 8,000만명을 속였다. 자그만치 8,000만명이다. 이들이 모두 멍충이 들이었나? 그들은 '정의'라는 이름에 단체로 홀렸을 뿐이다. 아직도 자신만이 '정의'인 것처럼 믿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들의 가면이,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가 오로지 역겨울 뿐이다. 

 

 

여기는 가스실 입구다. 도망갈 수 없도록, 일렬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입구를 좁게 만들어놨다. 내부는 샤워실처럼 되어 있다. 얘기를 들었던 대로 이 곳 샤워기에서는 물이 아닌 시안가스가 나왔다. 희생자들의 원통한 넋이 깃들어있을 내부에 사진기를 차마 들이내밀 수 없었다.

 

 

조금 옆에는 시체소각장이 있다. 그들은 시체를 운반하는 데 다시 유대인들을 썼다고 하니 그 만행에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신나찌주의자들은 나찌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조작되었다고 한다. 이 악명높은 시설물이 전후 폴란드 정부에 의해 철거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다. 만주땅을 잃자 고구려 역사가 중국의 지방역사로 둔갑되었듯이, 실체(증거)가 없어지면 역사도 왜곡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 곳은 앞으로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소중히 간직해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다시 크라코우로 돌아온 후 역앞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리니 이번엔 소금광산이다. 석탄광산도 아니고 소금을 캐는 광산이라......흥미로웠다. 날씨가 너무 더워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매표소에 갔다. 학생 9.5즐로티.....바르샤바의 쇼팽뮤지엄이 4즐로티였으니 좀 비싼 편이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티켓을 끊고 기다리면서 30명 정도 모이자 가이드가 우리를 인솔해 지하세계로 안내한다. 입구의 모습은 지하에서 소금을 끌어올리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저 평범한 공장같다. 저 곳에 그런 보물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먼저 지하 64m까지 계단으로 내려간다. 거기서 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곳곳에 소금 종유석과 소금 가루가 돌처럼 굳어서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이 광산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인형(말 그대로 '소금인형')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점점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간다. 하지만 지하라서 답답하거나 숨쉬기 어렵거나 폐쇄공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의 지하단면도, 출처 : stoneartblog.blogspot.com>

 

지하 130m, 조그만 광장, 호수, 낭떠러지, 레일깔린 터널 등이 계속 나타나며 흥미를 더해간다. 지하굴은 막장처럼 일정한 한 방향으로만 이어져 있는 게 아니다. 모든 통로는 마치 잘짜여진 건축물처럼 대공간 주위로 이어지는데, 전체 경관을 감상하며 오르내리기 때문에 여러 시각에서 공간을 즐길 수 있다. 마치 미래소년 코난의 인더스트리아 지하세계에 온 듯하다.    

 

<소금광산에 있는 지하호수, 출처 : world5000.blogspot.com>

 

그리고 2시간을 휘젓고 다닌 마지막에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지하성당'이다. 벽면에 새겨진 14처의 조각들과 제단이 모두 돌을 깎아 만든 것들이다. 노동자들이 모여서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했다는 이 곳에서 마침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규모가 상상 이상이다. 웬만한 고딕성당 저리가라다. 그리고 미사 중에 울리는 합창소리를 듣는 순간, 그냥 훅 갔다. 어떤 음악당보다도 경건하고 신성한 느낌이 나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십자가를 향해 무릎이라도 꿇어야 할 것같은 느낌이었다.

 

 

500년도 더 된 광산이지만, 참 멋진 곳이었다. 지하성당의 감흥을 뒤로 하고 지상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는데 수초도 걸리지 않았다.

 

크라코우로 다시 돌아오는 길......버스 운전사는 횡단보도도 없지만, 찻길을 건너려고 하는 누구라도 눈에 보이면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차를 세운다. 가만 보니 달리는 차들 모두가 그렇게 차분하다. 하긴 폴란드와서 경적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같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깨끗한 이 도시가 너무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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