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동유럽

동유럽 배낭여행(9)-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budsmile 2011. 1. 6. 17:16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에서 바라본 구시가 전경>

 

크로아티아(Croatia)는 정말 사랑스런 나라다. 따스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마을들, 친절하고 온화한 사람들, 그 속에 공기마저 감미롭고 향기나는 듯 조용하지만 은근히 매력있는 나라......이 나라를 여행하는 내내 마치 휴양지에 온 듯, 들뜨고 흥분되는 기분이 내내 가라앉질 않는다.

 

부다페스트에서 스플리트까지 기차로 온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두브로브니크(Dubrovnik)까지 간다. 크로아티아는 구 유고연방의 영토 중에서 아드리아해를 거의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지도상으로 볼 때 아드리아해에 맞닿은 지역이 바로 유명한 달마시안 지역이다. 점박이개로 유명한 달마시안종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는 91년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했다. 독립과정에서 세르비아의 연방해체 반대로 한차례 전쟁을 치르며 세르비아와는 앙숙의 관계가 되었다. 지금도 세르비아인들은 다민족, 다종교 사회인 유고연방을 무리없이 잘 이끌었던 티토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고 있는데, 그는 크로아티아 출신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란.....!  그런데 이 전쟁에서 주목받은 곳이 바로 크로아티아 최남단의 도시, 두브로브니크다. 지도에서보면 남쪽해안가로 길게 이어진 크로아티아 영토는 잠깐 보스니아 영토로 끊겼다가 다시 두브로브니크가 있는 영토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육지 속의 섬과 같다. 실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면 보스니아국경 검문소를 지나게 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암튼 이 도시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에 둘러싸여 있어 전쟁의 집중포화를 받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 도시는 철저히 파괴되었고, 이를 항의하기 위해 프랑스 학술원 학자들이 직접 배를 타고 두브로브니크 앞바다에서 해상시위를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크로아티아 지도, 출처: www.merriam-webster.com>

 

크로아티아라는 나라는 잘 모르는 사람도 그들의 축구복은 기억할 것이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유명한 체크무늬가 이 나라의 국장인데, 축구복은 물론 국기에도 그 문장이 박혀있다.

 

사실 론리플래닛에는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7시간 정도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여기에 맞춰 야간버스를 타려고 스플리트에서 제일 늦게 출발하는 22시행 버스를 예약했다. 헌데 잠이 막 들려는 새벽 2시 30분경, 버스가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고 알려준다. 론리플래닛이 틀릴 때도 있구나 싶었는데, 어쨌든 이제부터가 문제다.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주변이 암흑천지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순식간에 흩어져버렸고, 그 암흑속에 나만 홀로 버려졌다.  인적도 없다. 암흑속을 헤매며 유스호스텔을 찾아가기에는 정말이지 너무 어두웠다. 작은 사무실 정도인 터미널 대합실 문은 굳게 닫혀져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오히려 선택의 여지가 없는게 마음은 편한 법이다. 다행히 플랫폼에는 긴 의자가 2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 배낭을 깔고 누웠다. 본의아닌 노숙, 그런데 정말 잘 잤다. 

 

새벽에 어둠이 어느정도 걷히자 눈을 떴는데, 주변을 지나가던 떠돌이개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 개가 나에게 돌진하는 게 아닌가! 놀라서 번쩍 일어났는데, 그 바람에 개도 놀랬나보다. 내 눈 바로 앞에서 방향을 틀어 달아난다. 놀란 마음을 쓸어안고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기니, 이번엔 새벽 버스를 타러 온 사람들이 놀래 눈이 커진다. 웬 동양인 하나가 밤새 노숙을 한 게 신기한 모양이다.(그 때는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이 도시에서 동양인을 볼 수 없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입구, 저멀리 성벽이 보인다>

 

날이 밝으니 이 조그만 도시에서 유스호스텔 찾는 것은 식은죽먹기다. 터미널에서 도보 15분 정도 거리였는데 정말 조용한 도시다. 온갖 꽃들의 냄새로 천지가 진동한다. 호스텔은 꽤 현대식이다. 그런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카운터에 사람도 없다. 7시쯤 출근한다고 하여 로비에서 기다리며,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옷도 갈아입으니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나중에 온 직원은 그러나, 방이 다 찼단다. 그런데 참 친절한 것이 나를 위해 주변 민박집까지 소개해주는 것이다. 어쨋든 그렇게 방을 쉽게 구해 짐을 풀어놓고 구시가로 향한다.

 

터미널근처는 신시가지인데, 여기서 구시가까지는 버스를 타고 간다. 운전기사가 구시가 입구라 알려준 곳에 내리니 바로 옆 건물이 인상적이다. 아직 수리가 덜 끝난듯, 총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내전의 상처 가득한 건물이었다. 

 

 

구시가에 들어서면 여긴 완전한 중세모습 그대로다. 지난 내전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벽하게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중앙로라 할 수 있는 플라차거리가 구시가 입구와 항구를 연결해주고, 그 사이에 교회, 박물관 등 수많은 역사적 건물들이 즐비하다. 거리를 둘러보는 데에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플라차 거리의 끝, 항구로 나가기 전에 있는 이 건물은 스폰자 궁(Sponza Palace)이다. 현재는 미술관으로 쓰이지만, 과거 해상무역을 주름잡던 두브로브니크의 관세청건물이었다. 시원한 아케이드와 우아한 고딕식 창문이 돋보이는,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바로 맞은 편에는 블라이세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의 아름다운 전경은 성벽위에 올라가면 잘 볼 수 있다. 뙤약볕 밑에서 한시간 이상을 돌아다니는 것은 고역이었지만, 성벽위로 난 길을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은 정말 멋지다.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과 지중해 패권을 두고 다투던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의 위상이 느껴진다. 

 

 

성벽에 나있는 망루가 앙증맞다. 

 

 

시가지는 마치 베네치아를 보는 듯, 파란색 아드리아해와 어우러진 빨간색 지붕이 인상적이다.  

 

 

구시가 앞에 떠 있는 저 초록색 섬은 '로크룸 섬'이다. 누드비치로 유명한 섬인데, 사진에 보이는 항구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다. 섬에서 보는 두브로브니크도 훌륭하지만 물빛이 얼마나 투명한지......

 

 

 

 

 

두브로브니크......유럽에 숨어 있는 또하나의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다. 이 조용하고도 빛나는 도시의 골목길 노천카페와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며 보냈던 여유있는 시간은 아직도 꿈처럼 남아있다. 다시 한 번 여행하고픈 곳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다음에 다시 두브로브니크에 가보게 되면 반드시 저 위치에서 전체 전경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전경, 출처: www.croatia-vip-servic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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