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하면 생각나는 게 몇 있다. 슬라브영토에 동떨어진 라틴계 나라(나라이름 루마니아도 로마인의 나라라는 뜻), 독재자 차우세스쿠와 그의 낙태금지, 출산장려 정책으로 인해 태어난, 그러나 결국엔 버려진 수많은 고아와 에이즈환자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것은 뱀파이어 '드라큘라'다.
사실 드라큘라는 아일랜드 작가의 상상속에 탄생한 괴물이지만, 그 모델이 루마니아의 영웅 '블라드3세'였다는 사실에 루마니아는 졸지에 이야기속 실제 배경이 되어버렸다. 블라드 3세는 15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합스부르크왕가와 오스만투르크사이에서 루마니아의 정체성을 지켜낸 민족적 영웅이다. 그런 인물을 뱀파이어로 만들었으니 루마니아 사람들이 싫어할 만도 하건만, 이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빠르게 그를 루마니아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었다. 블라드3세가 태어난 생가를 박물관으로 만들고, 그가 잠시 머물렀던 브란성을 드라큘라성으로 만들어 동유럽 최고의 관광지로 상품화하였다. 아마 루마니아에 들른 사람치고 이 드라큘라성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언덕아래에서 브란성을 올려다본 모습>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22:20분 출발한 기차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 아침 9시 정각 도착한다. 새벽녘 기차가 국경에 도착할 즈음 통로건 컴파트건 불가리아에서 물건을 사서 돌아가는 보따리 장수들로 인산인해다. 그로부터 세시간 정도 잠을 설쳐가며 이들의 수다소리를 들어야했다.
부큐레슈티역은 꽤 현대적이다. 짐을 맡기고 거리로 나갔는데, 건물들이 높고 거리도 깨끗하다. 대학광장에서 혁명광장쪽으로 걸어가면서 크레출레스쿠 루마니아 정교교회와 예전 공산당본부, 인민회의장 등 근처의 기념물을 둘러보았다. 특히 차우세스쿠가 국가상징거리로 만들어 놓은 공화국 궁전거리는 정말 웅장한데, 독재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선전용 영화세트같은 가식이 느껴지는 거리였다.
<공화국 궁전거리 모습>
부쿠레슈티에서 브란성이 있는 브라쇼브까지는 약 세시간. 그런데 기차안에서 문제가 생겼다. 루마니아의 기차는 모두 예약제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몰라, 벌금으로 144,000 lei(약 18달러)를 내라는 것이다.(브란성 입장료가 15,000 lei 였으니 루마니아에선 꽤 비싼 돈이다!) 몰랐다며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이 차장아저씨 인심한 번 크게 쏜다......그냥 원래 예약비 10,000 lei만 내라는 것이다.(나중에 알고보니 벌금은 14,400 lei였다. 차장아저씨가 '0'하나를 실수로 더 적은 것이다. 덕분에 비싸다는 표정이 가능했지만서리....ㅎ)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곳은 어찌보면 불편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이런 융통성이 가능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브라쇼브에 가면 '마리아'를 찾으랜다. 배낭족들 사이에 유명한 '마리아'는 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녀의 민박집에 묵기로 하고 따라나섰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택시에 태우고는 택시값을 나에게 내라고 하질 않나, 관광지도를 준다더니 복사를 너무 많이 해서 알아보지도 못할 지도를 건네고, 숙소는 다른 배낭족들에게 들었던 거와 달리, 춥고 남의 방을 거쳐가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등 불편하기 짝이없다. 한때 가난한 배낭족들을 돕고 싼 값에 좋은 숙소를 제공하던 초심을 잃어버린, 지금은 배낭족을 등치는 기업형 장사아치가 되어 버린 것같아 씁쓸했다......
브라쇼브에서 브란성까지는 차로 1시간 거리다. 그런데 그 곳까지 가는 길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길이 예전에는 블라드3세가 적군 포로들을 꼬챙이에 꿰어놓아 길 양옆에 일렬로 세워놓은 탓에 피로 진동했다하니 적들이 얼마나 무서워했을지 상상이 간다. 그 무시무시한 흡혈귀 전설은 괜히 나온게 아니었다.
브란성은 정말 자그만하다. 독일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성이나 프랑스 루와르 지방의 성을 기대했다면 급실망할 정도다. 그런데 그런 멋드러진 성이었다면 오히려 드라큘라하고는 이미지가 맞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브란성 입구>
성은 미로처럼 얽혀있긴 하지만 워낙 규모가 작아 둘러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또한 문이나 복도 등 모든 치수가 작은데, 아마 드라큘라는 키가 좀 작았나보다....ㅎㅎ
원래 이곳은 요새였다고 한다. 그것을 성으로 개조한 것인데, 현재 소유권은 다시 합스부르크 왕가로 돌아왔다고 한다.
성 아래쪽에는 루마니아 전통양식의 민가 몇 채가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1층은 돌이나 회칠된 조적조로 헛간이나 창고로 쓰고, 목재로 된 2층에서 거주하는 형식의 단촐한 서민주택이 특이하다.
브란성에서 다시 브라쇼브로 돌아오는 길, 라즈노프란 작은 시골마을이 있다. 그 곳 치타델 요새에 오르면 스위스와 같은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고보니 이 곳은 트란실바니아 평원이다. 동유럽 제일의 곡창지대인데, 이탈리아와 흡사한 지형에 로마인들이 왜 여기에 정착을 했는지 알것같다....
브라쇼브 시내는 작은 중세풍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중앙 한켠에 보이는 고딕식의 블랙처치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광장은 단차를 이용해 나름대로 멋진 정취를 가지고 있는데, 나른한 오후를 조용한 이곳에서 보낸 후 주변 시장에서 과일과 감자를 좀 샀다. 사람들이 신기한 지 그냥 뭘 집어주고 물어보면서 자기네들끼리 웃고 난리다. 숙소에 돌아와 밥을 해먹고 나니 잠이 절로 쏟아진다. 오늘은 문단속 잘하고 자야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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