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에서 불가리아의 보물, 릴라수도원에 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숙소 아주머니 충고대로 옷을 단단히 껴입고 터미널에 갔다. 주변에는 수도원에 가려는 듯한 외국배낭족들이 하나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Lonely Planet에 나와있는 6시 30분이 되었는데, 버스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7시가 되어서야 문을 연 매표소에 문의하니, 오늘 버스가 없단다. 왜 없는지 설명도 해주지 않고 그저 'No Bus'란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나와 똑같은 처지의 배낭족들끼리 자연스레 인사를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나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정보를 수집한 결과, 8시에 스탄크디미스토프라는 수도원 근처 도시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 가면 연결편이 있지 않을까하는 예측치를 내놨고, 여기에 헝가리 청년, 멕시코와 일본 여성 배낭족이 의기투합했다.
그런데 8시가 되자 터미널로 버스가 많이 들어온다. 행선지가 영어로 써져있지 않아, 우리는 일일이 버스기사들에게 발음하기도 힘든 그 도시이름을 물어봤다. 그런데 한결같이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버스야? 그 때 문득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현지인들의 행태를 관찰해보니, 이들은 '예'와 '아니오'를 표현하는 방법이 우리와 정반대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 'Yes'였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그 많은 버스가 모두 그 곳에 가는 거였는데, 모두 놓친 거였다. 헐~
암튼 발음하기 힘든 그 도시까지 1시간, 연결버스는 있는데 오후에 1대 있다. 다시 의기투합, 더치페이하기로 하고 택시기사와 흥정해 택시를 대절해 다시 1시간을 달려 마침내 릴라수도원(Rila Monastery)
<릴라수도원 입구>
릴라수도원은 요새와 같다. 잦은 지진과 내란으로 굴곡진 역사를 가진 탓이리라. 14세기 탑이 아직도 남아 있긴 하지만 현재의 모습은 19세기 화재 이후 다시 재건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불가리아 정교회의 총본산으로서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도원 내부 중정의 모습, 오른쪽이 교회>
성과 같은 수도원 내부의 모습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부정형의 회랑과 벽이 중정을 형성하고 그 가운데 오묘한 자리에 교회가 섬처럼 위치하고 있다. 교회와 승방 사이의 비어있는 공간은 어디서 보더라도 긴장감있는 볼륨을 유지하며 교회 주변 사방을 흘러간다. 아치에 칠해진 얼룩말 모양의 무늬는 스페인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또는 아랍의 건축물에서 익숙하게 보아오던 것이다. 아마 오스만 투르크 지배시절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사방을 둘러가며 음미하는 공간>
<비어있음, 여백의 미를 잘 구현한 공간>
이곳에 오니 외국 관광객들이 상당하다. 하지만 산속인데다, 수도원이 주는 경건한 분위기 때문에 전혀 시끄럽지 않고 차분하다. 가만히 보면 교회회랑이 알록달록하다. 모두 이콘(성화)으로 빽빽히 가득차있기 때문이다.
<중정 내부에 자리한 교회 정면>
승방이 있는 회랑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갈 수 있다. 커다란 복도식 아파트라 생각하면 되는데, 방마다 이름이 써져있는 것이 수도승들이 아직도 수행중임을 알 수 있다. 승방은 모두 3층 또는 4층으로 이어지는데, 곳곳에 계단과 누정같은 곳을 돌출시켜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다. 또한 층 사이를 상하로 뚫어 변화를 주면서 작지만 경쾌한 맛을 더하고 있다. 이곳에 올라가 보는 수도원의 광경은 또다른 느낌이다.
<2층에서 바라본 교회>
교회는 그릭십자가 형태의 평면을 가지고 있는데, 비잔틴 양식의 펜던티브돔 3개가 올려져 있다. 펜던티브돔이란 이스탄불의 성소피아성당에서 기둥없는 대공간을 얻기 위해 사용한 구조양식이다. 어디서 보더라도 멋진 프레임의 풍경이 들어온다.
<교회에 붙어 있는 종루>
층을 구성하는 방식이 참 독특하다. 우리네 아파트와 같은 단순 모듈 반복처럼 보이지만, 자세히보면 2개층을 하나의 기둥으로 올리고 그 안에 별도의 옥외 진입계단을 두어 층 구성에 변화를 주는데(물론 내부 공간은 볼 수 없으므로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 형태는 얼마간 쭉 이어지다가 다시 2개층의 기둥으로 분리되는 등 미묘한 변화를 준다. 지붕에 튀어나온 돔구조물 하부는 아마도 내부 기도실(혹은 집회실)이 위치하고 있을 것이며, 굴뚝 하부에는 부엌이 있을 것이다. 층 높이의 변화도 일정하지 않은데 이런 자그만 파격과 변화가 건축물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교회 내부를 장식하는 이콘은 굉장히 다채롭다. 정교회 특성상 성상이 없는 대신 성화가 그 화려함으로 신성함을 메운다. 불교의 만다라를 연상케할 만큼 이를 그린 사람의 신심이 절로 느껴진다.
이제 다시 소피아로 향한다. 다행히 수도원 앞 주차장에는 소피아까지 직행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불가리아...조용하지만 참 은은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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