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의 스코피에에서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까지는 야간열차를 탔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타는 밤기차다. 22시에 출발한 기차는, 그러나 악몽 그대로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어수선을 피우더니, 내가 탄 컴파트먼트에는 목소리 큰 남매가 타서 시끄럽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담배냄새에, 이어지는 수다에 정신이 없다. 잠이 좀 들것 같으면 국경에서 여권검사, 차표검사가 계속 이어지고(도대체 몇 번을 하는 거야?) 한 번 씩 정차할 때면 사람들이 몰려와 시장통이 따로 없다.
한 번은 나이든 차장이 차표를 보여달래기에, 발칸패스를 보여줬다. 그랬더니 이 패스는 여기서 통용되지 않는 거라며 돈을 더 내라는 거다. 몇 번을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한 술 더 떠 같이 탄 세르비아 남매도 돈을 더 내야 한다고 성화다. 분명히 발칸패스에 유고슬라비아라고 찍혀 있다고 보여줘도, 여긴 유고슬라비아가 아니라 세르비아라는 것이다. 참 내 어이없어서리~
세르비아인들이 민족적 자긍심으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았지만, 이건 좀 생뚱맞잖아....그럼 세르비아와 유고슬라비아는 별개의 나라란 말인가?(물론 지금은 유고슬라비아란 국명조차 역사속에 사라졌지만......!) 암튼 배째라 대드니 그냥 간다...못된 것들.....ㅋ
<베오그라드 중앙역 앞에서>
그렇게 잠을 설치고는 새벽 4시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니 피곤해서 저절로 잠이 들었다. 아침 7시 도착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는 바람과 함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짐을 맡기고 환전한 다음, 시내로 향했다. 비오는 베오그라드는 한여름이지만 너무 추웠다.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추워지자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근처 맥도널드를 찾아 뜨거운 코코아차를 마시며 몸을 좀 녹이고는 다시 발길을 옮겼다. 도시는 동유럽치고 중세의 모습이 거의 없다. 현대적이지만 약간 정리가 덜 된 듯한 모습인데, 구릉지가 많은 탓에 걸어다니기도 힘들다.
<구시가를 향하며 다뉴브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다>
내가 건넌 저 다뉴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나중에 TV를 보니 코소보 내전때 유럽연합의 폭격을 받아 부서졌었다. 당시 흐린 날씨에 비오는 시내를 다녀와서인지, 아니면 전운이 감돌던 코소보 전쟁을 직전에 두고 있어서였는지 도시 자체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무거웠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는 참 신기한 나라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을 정도로 발칸의 화약고라 불리던 나라였는데, 6개의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국가가 연방을 구성한 것도 신기하고, 2차 대전 후 스스로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간 것도 그렇고, 암튼 티토(그는 크로아티아 출신이다.)의 지도력은 연구해볼 만한 대상 중 하나다.
세르비아 정교의 본산인 St. Mark's 성당이다. 바쁜 아침 출근길이었는데도 출근 도중 성당에 들러 뭔가를 간단히 기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문턱이 없는 종교......누구에게나 열린 종교......그런 종교라야만이 과학으로도, 예술로도, 스포츠로도 채워주지 못한 인간의 마음 한 구석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사교집단으로, 정치집단으로, 배타적인 이해집단으로 변해버린 우리의 종교행태는 이미 종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뿐일까?
유고슬라비아의 국회의사당이다. 이제는 세르비아만 남았겠지만, 한때는 제3세계 국가의 모범으로, 소련도 무시못할 사회주의 국가로 군림하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여기는 류비체 궁이다. 19세기 지어진 공주의 저택인데, 2층의 단촐하지만 확실히 서구와는 다른 독특한 멋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이다.
오후에도 비가 그치지 않아 근처 혁명박물관을 보며 상당시간 머물렀다. 베오그라드 북쪽의 치타델(중세의 성곽이 남아있는)과 남쪽의 티토무덤은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베오그라드역에서 22시 출발한 야간기차는 다음날 오전 9시가 되어서야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다다른다. 소피아의 하늘은 전날의 베오그라드하고는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산들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마음까지 포근해진다. 역 구내 환전소에서 마음 좋아 뵈는 아저씨가 자기집 선전 팜플렛을 나눠주면서 숙박을 권한다. 1박에 8달러.....사진을 보니 괜찮은 거 같아 따라 나선다. 오랫만에 손님을 잡았나보다. 기분 좋은 아저씨가 차를 끌고는 근처 환율이 좋은 환전소까지 소개해준다. 시내에서 조금 외곽에 있는 숙소는 허름하지만 깨끗하다. 주인아줌마는 시내에서 주의할 사항, 늦었을 때 택시비, 시내나가는 방법 등을 유창한 영어로 자세히 알려준다.
트램을 타고 시내를 나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금방 느껴진다. 그만큼 동양인의 방문이 뜸한 곳이다. 우선 배가 고파 근처 맥도널드를 찾았다. 음료수를 다 먹고 장난삼아 빨대로 젓가락을 만들어 얼음을 집어 먹고 있는데, 뒤에 앉은 애들사이에 난리가 났다. 서로 젓가락질을 흉내내며 자기들끼리 웃는데 아이들의 유쾌함은 세계 어딜가나 똑같다.
알렉산더 네프스키 교회는 소피아의 상징이기도 하다. 불가리아 독립의 도화선이 되었던 오스만투르크와 러시아간 전쟁에서의 러시아전사자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 앞 너른 공터에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옛 공산시절의 훈장이며, 오래된 지폐나 책 등이 팔리고 있었다. 한 때는 누군가의 자랑이었겠지만, 이제는 역사의 퇴물이 되어버린 물품들은 이 나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 끼어 역사를 흘낏 훔쳐본다.
교회는 이스탄불의 성소피아처럼 펜던티브 돔으로 만들어져 웅장한 맛이 더한다. 게다가 12개의 돔 모두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이 건물을 비롯해 소피아 시내 중심 곳곳에는 오래된 교회들이 많다.
이것은 근처에 있는 또다른 러시아교회다. 확실히 구별되는 러시아정교회 양식은 꼭대기의 양파모양 돔으로 알 수 있다.
그 한쪽에는 이 도시의 명칭이 유래된 성 소피아 교회가 있다. 소피아는 고대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한다. 확실히 오래되 보이는 이 성당은 수리중이었다. 외국인들의 헌금을 요구하는 입구의 쪽지가 이 나라의 경제현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시내 구경을 마칠 즈음 갑자기 찬바람이 불며 소나기가 쏟아졌다. 주변 재래시장에서 비를 피하며 불가리아 하면 '장미기름'과 함께 생각나는 '요쿠르트'를 찾아봤다. 과연 많이 먹긴 하나보다. 다양한 종류에 양도 많고 값도 쌌는데, 맛은 인도의 '라시'나 우리나라에서 파는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인공감미료에 길들여진 탓이리라.....
동유럽에서 만난 많은 외국인들이 나의 이동경로를 듣고는 대부분 한마디씩 한다. '흠..불가리아만 조심하면 되겠군...' 그러나 내가 만난 불가리아 사람들은 인심이 후하진 않았지만 수줍음을 잘 타고 정이 많았다. 오랜 식민지배와 독재정치를 거치며 많은 사람들이 소심해져버린 것같은 느낌이지만, 언젠가 이 축복받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행복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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