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Santorini)......생소한 이름이었지만 몇 년 전 포카리스웨라는 음료 선전에 배경으로 쓰이면서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됐다. 광고에 쓰인 음료수의 캔 포장처럼 산토리니는 온통 하얀색과 코발트블루로 뒤덮인 섬이다. 지금의 그리스 국기도 이 두 가지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는 국토면적의 20%가 섬일 정도로 에개해의 수많은 섬들을 지니고 있다. '300'이나 '트로이'처럼 그리스의 각종 신화나 역사가 영화의 소재로도 쓰이지만, '툼레이더'나 '맘마미아'처럼 멋진 그리스의 섬과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도 수없이 많을 정도로 그리스란 나라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모두 매혹적인 나라다. 그런 그리스의 섬 중 빛나는 보석은 아틀란티스 전설을 간직한 하얀섬, '산토리니(Santorini)'와 미노스문명의 발상지이자 에게해의 가장 큰 섬, '크레테(Crete)'다.
섬을 여행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테네에서 지하철을 타고 피레우스항으로 간 다음, 거기에서 출발하는 페리를 타면 된다. 유레일패스로 승선료는 무료다. 물론 승선등급은 '의자'에도 앉을 수 없는 'Deck Class'(갑판)이지만^^......하지만 이게 더 좋다. 배가 물살을 가르는 시원한 소리를 들으며 침낭을 깔고 갑판에 누워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단, 새벽엔 추울 수 있으므로 햇볕 따스한, 바람이 너무 세지 않은 곳을 찾아 다른 배낭객들보다 먼저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 잠자리는 그렇지만 샤워실과 식당, 내부의 다른 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야간페리를 탄 나는 동틀무렵,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깼다. 마치 신기루처럼 갑판너머로 화산과 지진으로 움푹 꺼져버린 섬의 중앙을 둘러싼 가파른 절벽이 나타났다. 배에서 내리자 민박집 주인들이 우르르 달려든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하자 아저씨는 모집한 숙박객들을 봉고차에 싣고 아찔한 절벽을 오르기 시작한다.(이 밖에도 항구를 탈출하는 방법은 케이블카를 타거나, 노새를 탈 수 있다.)
숙소는 외딴 곳에 있어 짐을 풀어놓고는, 바로 시내버스를 타고 하얀 마을 '이아(Oia)'시에 왔다. 절벽에 아슬아슬 길게 매달린 도시는 하얗게 회칠한 벽들로 햇빛을 씻어내며 눈부시게 반짝인다. 특유의 원통형 볼트지붕이 있는 주택과 돔이 있는 교회는 이 도시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는 철저하게 이 곳의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사람들은 강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 표면적이 제일 작은 원형의 지붕을 가지게 되었으며 여기에 흰색을 칠해 더위를 피했다. 이방인에겐 아름다움이지만, 이 광경은 그네들에겐 처절한 삶의 흔적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다. 하얀색은 에게해의 푸르디푸른 색과 어울려 사람들에게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이 곳은 또 아틀란티스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화산과 지진으로 순식간에 섬의 중앙이 가라앉은 것이 플라톤에 영감을 주어 전설이 탄생했다고들 한다. 그 바다가 보고 싶어 마을에서 절벽을 따라 바다까지 내려가봤다. 내려가는 건 쉬었지만, 더운 여름에 다시 올라오는 건 정말 힘들었다. 그늘 하나 없는 데 경사까지 급해 정말 운동 한 번 제대로 했다.
이런 경사급한 절벽에 집을 지을 생각도 대단하지만, 지은 품새를 보면 저절로 감탄이다. 집들은 서로 겹쳐져 윗집의 마당은 아랫집의 지붕이 되는 테라스하우스가 저절로 형성된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집들은 마치 하나인듯 통일성을 유지하며 이 환상적인 모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저녁에는 리처드 기어처럼 생긴 공처가(그리스 남자들이 그러하듯!!) 주인아저씨를 꼬셔 버너와 조미료를 얻어다가 밥과 라면을 끓였다. 후라이에, 상추에, 참치캔 하나 뜯으니 진수성찬이 따로없다. 너무 많이 먹은 배를 달래려 근처 해수욕장까지 산책을 다녀왔다. 가로등하나 없다. 정말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바다도 보이지 않고 파도소리만 들린다. 그런데 하늘엔 왠 별이 그리 많은지....생전 처음으로 은하수를 보았다......
다음날 또다른 하얀마을, 피라(Fira)와 근처 까마리 해변에서 천국같은 하루를 보냈다.
산토리니에서 크레테섬까지는 배로 3시간 30분이 걸린다. 해질 무렵 출발한 배는 저녁 11시가 넘어서야 크레테의 항구도시, 이라클리온(Iraklion)에 도착한다. 토요일 저녁, 쏟아져나온 그리스 젊은이들에게 물어물어 유스호스텔을 찾아 들어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음날 신화로 전해진 미노스문명이 역사적 사실로 밝혀낸 유명한 '크놋소스(Knosos) 궁전' 유적으로 향했다. 반은 인간, 반은 황소인 미노타우루스가 궁전의 지하미로에 갇혀 테세우스와 대결을 벌인 곳이다.
숙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네 호떡같이 생긴 음식으로 아침을 때우고 20분을 달려 유적지 입구에 도착했다. 일요일은 공짜라는 가이드북은 믿을 게 못됐다. 유적지는 거의 폐허에 가깝다. 돌무더기와 군데군데 빨간 기둥들, 항아리 등이 전부였지만, 온전히 남아있었다면 웅장했을 거란 느낌이 단번에 든다.
지진이 많은 탓일까......보와 기둥으로 얼개를 만들고 그 사이를 돌로 채운 것이 특이하다. 이걸 보니 갑자기 불국사 기단부가 뜬금없이 생각났다.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의도는 같지 않았을까?
크놋소스 궁전의 트레이드마크인 아래로 가늘어지는 빨간 기둥......일부 벽화도 남아 있다.
<벽화사진 출처 : www.dromeasclub.gr>
크놋소스 궁은 3500년전의 궁궐치고는 선명한 벽화가 인상적이다. 가운데 널따란 중정을 두고 남쪽에 신전, 북쪽에 객실, 서쪽에 창고를 두었다. 정체불명의 미노아 문명은 이후 본토의 미케네 문명에 흡수되면서 종말을 고하는데, 이집트 문명을 유럽에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유적지 동쪽 경사면으로는 미궁이 있다. 층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높이의 방들이 계단을 통해 지하부터 3층까지 이어져있는데 미노타우루스의 전설이 괜한 게 아니었다. 신화에 따르면 이 미궁은 다이달로스가 만드는데 아테네의 영웅인 테세우스를 사랑하게 된 크레테왕의 공주, 아드아드네에게 실타래를 주어 미궁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주게 된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루스를 죽이고 탈출에 성공하는데, 여기에 화가 난 왕은 다이달로스를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가둬버린다. 다이달로스는 밀랍과 꿀, 깃털 등으로 날개를 만들어 탈옥에 성공하나, 아들은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태양이 더 가까이 가려다 그만 밀랍이 녹아 바다에 추락, 죽고 만다.
궁전은 기둥과 보로 구성된 소위 '라멘구조'로 이루어진 덕에 층을 자유롭게 구성하는 '라움 플랜(Raum Plan)'이 가능했으리라......
실내에서 기둥을 통해 바라본 하늘......저 푸르고 빛나는 에게해의 하늘은 그 속에 빨려들고 싶을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카루스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는 허황된 꿈을 가진 게 아니라, 어쩌면 아름다움을 진실로 느낄 줄 아는 낭만을 가지고 있었을 지 모른다. 아름다움에 만취해 제 몸이 떨어져나가는 것도 잊어버린......그래서 누구나 죽기 전 단 한 번이라도 에게해를 여행할 수 있다면 그건 지독한 행운이라 하는 게 아닐까?(이건 내 말이 아니라,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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