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동유럽

동유럽 배낭여행(1)-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budsmile 2010. 8. 13. 17:05

그리스(Greece)......! 신들과 인간이 공존하는 신화의 땅, 인류의 지혜가 시작되고 민주주의가 꽃피운 문명의  땅......그러나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고 1822년 오스만투르크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400여년간 그리스는 서구인에게 잊혀진 땅이었다. 기실 중세 르네상스의 모토가 '다시 그리스와 로마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그리스에 다녀온 적도, 다녀갈 수도 없었다. 그저 그들이 상상하는 완벽한 세상의 표본으로 '그리스'를 차용했을 뿐이었다. 이 사이 헤라와 아프로디테같은 금발의 여신이 탄생한 그리스에서는 더이상 금발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투르크계와의 혼혈도 늘어났다.

 

립 후 극심한 좌우대립과 내전, 왕정과 공화정이 반복되는 정정불안이 끝난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사람들은 그리스의 아름다운 자연과 인류의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첫 배낭여행 루트를 짜면서 가장 중심에 두었던 곳이 바로 그리스와 이집트였던 것이다. 그 열망이었을까? 나는 그리스땅을 지금까지 세번 밟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첫번째는 이탈리아 브린디시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파트라스를 거쳐 아테네와 델포이를 보고 다시 그리스 국토를 가로질러 터키 이스탄불에 이르는 여정을, 두 번째는 역시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로 건너와 그리스의 섬들을 둘러보고 이스라엘과 중동지역으로 건너가는 여정을, 세번째는 방콕을 경유해 직접 그리스로 건너와 데살로니키를 거쳐 동유럽을 여행하는 관문으로 삼았다.

 

특히 세 번째 여정은 당시 매우 용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보스니아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되었고, 코소보 전쟁의 위험이 증가되고 있던 시기였다. 또한 당시 체코나 헝가리를 제외하고 이 지역을 배낭여행하는 한국인이 많지 않아 비자는 물론이고 치안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리스에서부터 발칸반도를 지나 불가리아, 루마니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를 거쳐 발트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과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갈 수 없었던 소비에트연방의 심장, 모스크바까지 육로로 입성하겠다는 꿈은 한 번 마음먹은 순간 내가 제일 먼저 정복해야 할 루트가 되어 있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서유럽과 같은 번쩍거림은 없지만 유럽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던 황홀한 여정이었다.

 

그리스 아테네(Athens)는 세 번째라 그런지 도착하자마자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지도도 보지 않고 시내로 찾아들어갔다. 여름의 아테네는 정말 건조한 불볕더위 그 자체다. 섭씨 40도를 넘는 날씨에 낮에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들도 별로 없다. 유스호스텔에는 여자건 남자건 속옷만 걸치고 다들 침대에 널부러져 있다.

 

그래도 아테네의 중심, 신타그마 광장의 에어컨이 빵빵한 맥도널드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 뒤, 플라카지구의 미로 속을 헤치고 아크로폴리스에 오른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과거 그리스 도시국가의 중심지에 솟아오른 언덕을 이른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이곳에 수호여신 아테나(Athena, 전쟁의 여신이기도 한)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을 중심으로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하는 걸작 건물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배치도를 보면 서쪽에 '프로필레이아(Propylaia)'라는 거대한 출입구가 있다. 출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에 파르테논신전(Parthenon), 왼쪽에 에렉테이온 신전(Erechtheion)이 각각 배치되어 있는 구조다. 나머지 건축물들은 모두 파괴되거나 흔적만 남아 있다. 

 

 

 

플라카지구에서 아크로폴리스까지 20여분을 올라가야 한다. 드디어 서측의 정문(프로필레이아)이 눈앞에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과거에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는 길은 사진에서처럼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대신 별도의 순례길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리스 정부는 이 특별한 길의 디자인을 위해 유례없는 국제현상공모를 추진한다. 곳곳에 솟아있는 바위를 놔두고 그 사이사이 마치 예전부터 그렇게 있어왔던 것처럼 박석을 깔아 오래된 자연스러움을 부각시키고 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아크로폴리스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열주랑이 있는 입구, 프로필레이아는 그 규모와 형태에 있어 그리스 건축에서도 독특한 예다. 이런 대규모의 입구를 둔 것은 아크로폴리스라는 성소의 격을 높이고 속세와의 강력한 구분을 의도하기 위함이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가 델로스동맹의 주축으로서 다른 도시국가로부터 받은 세금과 헌납품으로 그 어떤 도시국가보다도 웅장하고 멋진 장소를 원했던 증거다. 오른쪽으로 살짝 파르테논신전이 비친다.

 

 

프로필레이아에 접근하는 방법은 순례객들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요한다. 입구를 향해 길이 직선으로 난 것이 아니라 아래 사진의 사람들처럼 측면으로 비스듬히 난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접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옷매무새라도 고친 다음 경건하게 들어오라는 무언의 요구다. 

 

 

 

프로필레이아는 또한 공간의 깊이를 더해준다. 열주를 통해 형성된 두 세겹의 켜는 이 곳을 통해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에 원근감을 부여한다.

 

 

 

프로필레이아 바로 오른쪽에는 조그만 니케신전이 있다. 승리의 여신, 니케(Nike, 혹은 나이키)를 모신 신전은 이오닉 양식의 열주로 구성되어 있다. 작지만 기품있는, 그리고 비교적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는 신전이다.

 

 

아마 건축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리스 건축의 양식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봤음직 하다. 크게 도릭식(Doric Order), 이오니아식(Ionic Order), 코린트식(Corinthian Order)의 세가지로 분류하는데, 쉽게는 기둥의 제일 윗부분, 천장과 맞닿은 부분의 장식적 형태로 구분한다. 도릭식은 도리아인들의 구조방식인데 별도 장식없이 단순한 구조다. 기둥 기초가 없어 높이가 낮으나 남성적인 직선미가 특징이다. 이오니아식은 양뿔처럼 둘둘 말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도릭식보다는 높이가 높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코린트식은 아칸서스 나뭇잎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마치 이집트의 파피루스 형태 기둥을 보는 듯하다.

 

 

드디어 파르테논신전이다. 17세기 말까지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던 신전은 오스만투르크가 폭약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중해패권을 다투던 베네치아 공국의 공격을 받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그 때 잘려나간 신전의 여러 조각품들을 영국의 수집가 '엘긴'이 구매해 대영박물관으로 가져다 놓았다. 지금도 엘긴마블이라는 이름으로 대영박물관의 한 방을 가득채우고 있는데, 이에 대한 문화재 약탈 논란은 진행중이다. 얼마 남지 않은 조각 부조들이 신전 박공지붕에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은 입구에 들어선 직후 오른쪽 약간 경사진 언덕 위에 '비스듬히' 자리잡고 있다. 신전을 가장 아름다고 가장 많은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소위 '얼짱' 각도로 틀어놓은 것이다. 더구나 이 신전의 정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반대편이다.(즉 입구에서 보이는 부분은 후면이다.) 순례객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신전의 자태를 한껏 감상하도록 천천히 열주를 따라 반바퀴를 돌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동측으로 난 입구에 다다라 아침 햇살을 받고 발그레한 아테나 여신상을 마주하게 되면서 한없는 경외감에 순례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완벽한 황금비율과 함께 시각적인 교정을 고려해 설계되었다. 우리나라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도 볼 수 있는 배흘림기둥(엔타시스 방식)이 사용되었고, 같은 간격으로 기둥이 배치되면 모서리 부분이 좁아보이는 거라든지, 열주가 서 있으면 가운데를 기준으로 오목하게 휘어보이는 왜곡현상이 없도록 미리 보정하여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파르테논 신전의 구조양식은 목구조(목재를 못없이 짜맞추는 가구식구조)를 그대로 번안한 것이다. 마치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돌'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예전부터 해오던 목구조 형태를 그대로 흉내낸 것처럼 파르테논 신전도 자세히 보면 굳이 석조 구조물에서는 필요없는 목구조의 디테일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 복원작업 중인 지붕구조들......지붕을 덮었던 기와의 형태와 처마장식을 볼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 옆, 그러니까 입구에 들어서서 왼쪽 부분에는 아테네 창시자인 에렉테우스를 모신 에렉테이온 신전이 있다. 단순하고 우직한 형태의 파르테논과 달리 이 신전은 경사지에 세워져 구조 자체가 복잡하다. 정면이 어느 쪽인지 헷갈릴 정도로 입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입구에서 보면 마치 세개의 건축물이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데, 가운데 부분에 아직 세 개의 창이 남아 있고, 오른쪽에는 그 유명한 카리아티드(caryatid, 소녀모습의 기둥)가 있다.  

 

 

이 소녀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곳이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확인된 바는 없다. 하지만 바로 마주보고 있는 파르테논의 추상성, 정형성과 대비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추상화와 구상화의 공존이라고나 할까?

 

 

실은 여기 있는 6개의 소녀상은 모두 모조품이다. 진품 5개는 파르테논신전 옆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나머지 1개는 영국인들이 약탈해가서 지금 대영박물관에 외로이 전시되어 있다.

 

 

아까 입구에서 보았던 세 개의 창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세 개의 창'에 무슨 상징이 있었을까? 갑자기 마추픽추의 역시 '세개의 창'이 있는 성소지역 건물이 생각난다.

 


 

아크로폴리스 기단부는 이렇듯 석재를 반듯하게 잘라 기존의 언덕에 쌓아올려 조성되었다. 그 외벽으로 치장석재를 다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남측에 두 개의 야외극장이 보인다. 그 중 입구쪽에 가까이 있는 것이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세계 최초의 극장이자 축제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에 헌정된 극장이다. 현재는 간신히 원형만 남아 있다.

 

 

니체(F. Nietzsche)는 그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격식과 이성, 규율과 맹목적 도덕을 따르는 아폴론(Apollon)에 상대적인 개념으로 인간 본성에 충실한 불확실성, 창조성, 감성을 따르는 디오니소스를 찬미한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인간 욕망의 해방구,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 인간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던 기회였고, 이 극장에서는 희극과 함께 그리스의 유명한 비극들이 올려졌을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인근에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중심지인 아고라(Agora)가 있다. 스모그로 사진은 뿌옇게 나왔지만 그리스 신전 중 가장 원형대로 남아있는 헤파이스토스(Hephaistos, 제우스의 아들로서 대장장이의 신이자, 날아다니는 신발을 신은 절룩발이, 가장 못생긴 전령의 신으로 부인은 가장 아름다운 아프로디테 여신) 신전이 눈에 들어온다. 아고라에는 저택, 광장 그리고 복원된 스토아(stoa)가 남아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모두 모여 토론을 하고, 철학을 논했을 것이다.

 

 

인근에는 신들의 왕, 제우스(Zeus)를 모신 신전이 있다. 코린티안 양식으로 지어진 신전은 극히 일부분의 흔적만을 남기고 있을 뿐이지만, 규모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밤에 보는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빛나는 보석처럼 윤이 난다. 아크로폴리스는 독창성, 건축술, 종교와 철학의 집대성으로 인류의 문화유산 가운데 분명 독특한 성취물 중 하나로 평가받을 만 할 것이다.

 

 

 

 

free coun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