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건축이야기

건축이야기(13)-그리스+이집트=로마...그리고?

budsmile 2008. 7. 4. 10:28

1. 2004년 올림픽 개최지인 그리스는 인류의 정신적 고향이다. 모든 철학적 원류가 형성되었으며, 예술의 가치와 정치제도의 실험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스가 서로 경쟁하는 도시국가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각각의 국가들은 올림푸스의 여러 신들중에서 자신의 도시를 지켜줄 주신(主神)을 하나씩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을 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모셨다. 그것이 바로 '아크로폴리스'이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수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이다. 제우스의 딸이자, 아폴론의 동생으로서 일찍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물리치고 아테네의 수호신이 된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봉헌된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는 교통의 요충지인데 나 역시 아테네를 세 번이나 들렀다. 한번은 서유럽 여행중에, 또 나머지 두 번은 동유럽과 중동여행의 시발점으로 아테네를 선택하였다. 그만큼 그리스는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되는 지점에 있었으며, 이러한 지리적 환경으로부터 그리스는 솔론과 헤로도투스가 동방여행에서 얻은 지혜를 발전시키고, 페르시아와 투르크와의 분쟁도 피할 수 없었다. 덕분에 여신 헤라가 가진 아름다운 금발을 피가 섞인 그리스의 여인들에게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인간의 육체를 미(美)의 기준으로 받아들인 것은 이후 벌어지는 서양의 모든 예술적 가치를 지배한다.

 

인간의 육체로부터 나오는 시각적 아름다움, 철저한 휴먼스케일의 척도는 아크로폴리스의 건축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아테네 시가지의 야트막한 야산에 인공성벽을 쌓고 그 위에 성역을 조성한 아크로폴리스로 가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거주지인 '아고라'로부터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저 멀리 정면에서 볼록 튀어나온 성벽 상부의 작지만 강한 느낌의 니케신전이 보일 즈음부터 본격적인 입구진입이 시작된다. '프로필레이아'라 불리는 기념비적인 입구의 열주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입구를 향해 쭉 곧게 뻗은 계단이 아닌, 입구를 옆에 끼고 설치된 경사로를 통해 아크로폴리스의 위용을 훑어보며 스치듯 완급을 조절해서 올라야 한다. 일단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정교한 여섯명의 여신을 기둥삼아 건설된 에렉테이온 신전이 있고, 오른쪽에는 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이 나타난다. 에렉테이온 신전의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은 단순하면서도 우직한 파르테논신전과 극적으로 대비되며, 입구쪽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자리잡은 파르테논신전은 정면이나 측면이 아닌 건축물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각도로 틀어져 눈에 들어온다.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프로필레이아와 니케신전, 오른 위쪽이 파르테논 신전, 왼 위쪽은 에렉테이온>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파르테논신전으로 다가가 전체를 관조하듯 신전 정면에서부터 건축물을 반바퀴 돌고 나서야 신전의 후면에 위치한 성소(Sanctuary)에 다다르게 된다. 결국 순례자는 아크로폴리스를 오르는 그 순간부터 아테나가 모셔진 성소까지 아크로폴리스의 아름다움을 구석구석 모두 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파르테논 신전 자체는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시각적 착시현상을 교정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엔타시스(배흘림)기둥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시각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존하기 위하여 그리스 정부는 폐허가된 유적을 복구하면서 아고라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길의 바닥포장방법과 디자인까지 국제현상공모를 했을 정도이다.

 

<입구에서 보는 파르테논 신전, 에렉테이온의 여신상 열주>

 

2. 이에 비해 이집트 신전건축은 황량한 사막에 건설된 탓에 입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담으로 감싸져있다. 상·하이집트를 통일한 중왕국시대 테베(지금의 룩소르)에 건설된 룩소르신전은 상(上) 이집트의 최고신 '아몬(Amon)'을 위한 것이다.('아몬'은 지금도 기독교의 '아멘(amen)'이나 불교의 '옴(om 또는 산스크리트어로 아움(aum))'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8왕조 시기 인류역사상 최초로 유일신교를 확립한 아멘호텝4세(후에 이크나톤으로 개명)의 시도는 다신교 제사장들에 의하여 실패하고 말았지만, 프로이트에 따르면 그의 대제사장 '모세'에 의해 가나안땅에서 유일신교는 다시 한 번 부활한다. 동일한 18왕조의 투탕카멘(Tut-ank-amen) 역시 '아멘'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어쨌든, 스핑크스가 열을 지어 있는 길을 지나 입구에 다다르면 한 쌍의 오벨리스크와 람세스 거상이 지키고 있는 입구에 들어서게 된다. 전실을 지나 기둥이 무수히 배열되어 있는 다주실을 지나게 되면 일직선상에 배치된 다음 방으로 차례차례 인도된다. 방의 크기가 점차 작아지는 것은 물론, 천장도 점차 낮아지면서 가장 깊숙한 곳에서 성소와 대면한다. 신전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매우 복잡한 내부구조와 빛의 오묘한 조화는 이집트 건축을 그리스 건축과 구별짓게 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이집트 신전의 전형적 모식도>

 

그리스 건축이 갖는 외부공간과 이집트 건축이 발달시킨 내부공간은 로마에서야 비로소 하나가 된다. 로마건축의 외관은 솔직담백한 구조미와 내부공간을 충분히 암시하도록 군더더기 없이 짜여져 있으며, 내부는 기능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건축의 외부와 내부는 이후 서로 경쟁적인 관계에 놓이면서 서로에 대한 발전을 견인한다. 그러나 로마의 비트루비우스가 건축을 용(用), 강(强), 미(美)로 정의한 이후, 건축의 외부는 도시와 관계를 맺는 美의 가장 기본단위로서 인식되고, 내부는 用, 즉 기능만이 전부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외부공간에 대한 집착은 르네상스와 아르누보, 이태리 표현주의와 러시아 구성주의를 거쳐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고, 내부공간에 대한 고민은 바로크와 모더니즘을 거쳐 유럽의 해체주의로 명맥을 이어나간다. 한편에선 외부와 내부, 기능과 아름다움을 통합하려는 시도도 계속되어 렘콜하스(최근 유행하는 의류상표 KOOLHAAS는 이 파격적인 건축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서울대미술관, 리움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MVRDV, 벤 반 버클, 베르나르 츄미 등의 건축가들이 등장한다.

 

3. 내부=기능, 외부=미 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가면 '투슬랭'이란 곳이 있다. 폴포트의 크메르루즈가 갖은 이유로 잡아들인 무고한 사람들에게 온갖 고문을 자행하던 정말 역겨운 곳이다.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버린 이 건물의 각 방에는 고문도구, 희생자의 유품, 사진, 감방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건축물이 예전엔 여학교 건물이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다시 보니 이 평범한 건축물은 우리네 학교와 그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교와 수용소...별로 공통점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동일한 내부공간을 서로 공유하며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기능만이 내부공간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일까? 정해진 용도에 완벽하게 기능적인 건축물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투슬랭>

 

건축물의 외부공간은 어떠할까? 도시와 관계를 맺기는 하는 걸까? 타워팰리스처럼 고급자재에 채색, 장식, 디자인까지 세심히 배려가 된 외관은 서울 강남의 랜드마크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그러나 전망좋은 커다란 붙박이 유리창은 거주자로 하여금 바깥의 공기를 들이마실 기회조차 빼앗고, 철저한 보안시스템과 내부의 완벽한 생활지원시설은 이방인을 거부하고 거주자를 밀실화시킨다. 외부공간이 하는 것은 도시를 위한 시각적 즐거움이 전부인가? 아니면 주변의 다른 건축물과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관계를 맺는 것일까? 우리가 외부공간을 만들기 위해 공간을 나누는(Dividing) 것은 곧 공간을 나누기(Sharing)위함이 아닐까? 그렇다면 외부공간은 필연적으로 내부공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외관이 아름다운 건축물로 가득찼다 하여 도시가 반드시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4.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