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건축이야기

건축이야기(15)-건축공간의 비밀(2) : 건축과 상징

budsmile 2008. 7. 4. 11:39

2005년은 닭의 해이다. 12지신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12'라는 숫자의 굴레 속에서 살고 있다. 하루는 12×2(=24)시간이며 일년은 12달이다. 2만6천년 주기로 지구의 회전축이 바뀌면서 태양은 총 12개의 별자리를 지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황도12궁이다. 동양에서 옥황상제는 12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있으며, 부처님의 설법에 감복한 12명의 왕 이야기도 나온다. 이슬람 시아파에서는 마호멧에서 마지막 이맘('최고 지도자'라는 뜻)까지 모두 12명의 지도자를 숭배하고 대부분의 이슬람 문학은 12장(Chapter)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양문명을 일군 그리스에서는 올림푸스의 12신을 섬겼으며, 12지파로 구성된 유대교는 12개의 빵으로 제사를 올렸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두었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가면서 시련을 겪은 장소가 12처소이다. 계시록에는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12개요, 12×12(=144,000)천명만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야문명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숫자는 ‘박툰(Baktun)’으로 역시 144,000이다. 또한 유럽연합의 국기는 12개의 별로 되어 있는데, 이는 성모마리아 머리 위에 빛나는 후광을 상징하기도 한다.

 

12란 숫자는 항상 마지막 또는 최고를 의미하면서 변화를 상징한다. 종이 12번 치자 마법이 사라져버린 신데렐라처럼 변화는 과거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일년의 마지막인 12월이 되어 낮이 점점 짧아지면 고대 마야사람들은 태양이 꺼져버릴 것을 두려워하며 매년 동짓날 제사를 지냈다. 제사장들은 전국 각지에서 뽑은 건장한 남자들로 하여금 ‘펠로타’라는 경기를 시켰다. 지금도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차(Chichen-Itza)에는 경기장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축구와 농구가 결합된 형태의 놀이를 통하여 최고의 선수로 뽑힌 자는 영예로운 제물이 되어 경기장 바깥쪽 ‘재규어 신전’에서 자신의 살아있는 심장을 ‘케찰코아틀(깃털달린 뱀)’에게 바쳐야 했다. 허물을 벗으며 부활하는 뱀은 곧 태양을 상징하는 신이었다. 경기장과 신전사이에 ‘카스티요’라 불리는 피라밋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 신에게 바쳐진 것이다. 사면에 365개의 가파른 계단을 만들고 계단하부엔 뱀머리를 조각해 놓았는데, 매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추분날 오후 4시가 되면 이 건축물에 놀라운 현상이 일어난다. 계단난간에 그림자가 지며 마치 살아 있는 뱀이 꿈틀거리듯 하부의 뱀머리에서부터 뱀의 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희생제사를 통하여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면 이들은 태양의 부활을 축하하는 축제를 벌였는데 그러한 의식은 세계 도처에 남아있다. 로마시대 동지절인 크리스마스도 그 중의 하나다.(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탄생일이 된 것은 4세기경. 성서에는 탄생일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으나, 양을 치는 목동들이 예수님 탄생시 별을 봤다는 내용에 따르면 탄생일은 4월부터 10월사이 이스라엘에서 방목이 가능한 시기였을 것이다.) 
 

<치첸이차의 카스티요, 춘/추분에 계단에 나타나는 뱀의 형상>

 

이렇듯 건축공간을 구성하기 위하여 동원되는 것 중에는 인간의 관념에 대한 상징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집트 기자에 있는 대피라밋은 놀랍게도 오리온 자리에 있는 세 개의 별과 놓인 위치가 정확히 일치한다. 더구나 그 크기는 각 별들의 빛의 세기와 같은데 그 별들이 피라밋 꼭대기의 정확히 상부에 놓인 때는 지금으로부터 1만 2천년전의 사자자리(공교롭게도 피라밋 앞 스핑크스는 사자의 모습이다.)에서 태양이 떠오르던 때였다. 건축물이 건축주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그 자체가 상징적 표현으로 각색되는 것은 물리적 구조물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획득하며 건축이 되는 과정이다.
 

<피라밋 위치와 오리온 별자리의 비교>

 

사람들이 뭔가를 만들고 세우는 것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는 곧 그 건축물만의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이유를 가장 쉽고 단순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형태에 기능을 담아 보여주려 한다. 쥬스를 파는 가게는 오렌지 모양으로 만들어야 한다거나 서점은 책 모양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그러나 그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의 생각을 상징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도, 상징도 갖지 못하는 건축물을 만들고 만다.

 

<오렌지 모양의 쥬스가게>

 

경주의 양동마을은 개별 건축물뿐만 아니라 배경이 되는 풍수적 특성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전통마을이다. 월성 손씨(손중돈)와 여주 이씨(이언적)의 두 가문이 서로 경쟁하며 살고 있는 이 마을은 건축물까지도 대조적이다. 손씨 종가였던 ‘관가정’은 겉모습은 바깥에 드러내지 않지만 내부는 상당히 개방적이다. 기능적이면서 일정한 모듈로 구성된 실배치와 마을 전체를 굽어보며 시원스레 펼쳐져 있는 넓은 대청마루의 모습은 오랫동안 관직에서 평탄한 삶을 살았던 손중돈의 합리적인 사고와 풍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개방적인 관가정(좌)과 폐쇄적인 향단(우) 외관>

 
이에 반해 이씨 문중의 ‘향단’은 겉모습은 표현주의적이며 대담하고 장식적이나 내부는 아찔할 정도로 폐쇄적이다. 며느리가 사용하는 방은 시어머니의 감시를 항상 받도록 되어 있으며 안채의 마루는 행랑채의 지붕으로 가려져 바깥의 나무 한 그루 볼 수가 없다. 평생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이 답답한 집내부는 고단한 삶을 살았던 이언적의 성리학적 관념이 반영된 공간인 셈이다. 분명 같은 재료, 동일한 색,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이 두 집에는 분명한 개성과 집주인의 생각이 읽혀진다. 상징의 도구는 형태가 아니라 '공간'인 셈이다. 아직도 아파트 단지에 설계개념을 표현한다며 바닥에 커다랗게 용이나 구름같은 것을 그리고 있는 현세대의 우리들에게는 상징을 어떻게 공간적으로 표현할지 알고 있었던 조상들의 유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2004.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