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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17)-건축공간의 비밀(4) : 건축과 기술

budsmile 2008. 7. 5. 14:55

비잔틴의 건축가 필론이 작성한 세계7대 불가사의에는 파로스등대, 아르테미스 신전, 제우스신상, 바벨탑과 공중정원, 로도스의 거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모두들 당시 최고의 건설기술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물들이었지만, 아쉽게도 현존하는 것은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밋이 유일하다. 나머지 여섯 개의 기념비적 작품들을 역사속에서 앗아가버린 것은 다름아닌 지진이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피라밋이라고 하는 구조가 얼마나 지진에 안정한 구조인지를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밋>

 

이 피라밋이라는 형태와 구조는 그래서 역사상 수많은 리바이벌을 거쳐왔다. 미국의 대표적 지진지역인 샌프란시스코에 건축된 트랜스아메리카빌딩(Trans-America Building)은 아예 피라미드를 그대로 복제해놓았다. 피라밋은 벽식구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지만 미국의 중국계 건축가 페이(I.M.Pei)는 이 안전한 피라밋형식을 새로운 디자인 개념으로 응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70층짜리(369m) 초고층건축물에 기둥이라고는 전혀 없는 대공간을 만들기 위해 피라밋을 사용하였다. 지금은 그 유명한 기하학적 외관으로 홍콩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버린 차이나뱅크 건축물이 그것이다. 그는 피라밋을 정확하게 4등분한 다음 각 부분의 높이를 조절해가며 하늘로 길게 뽑아올렸다. 그래서 마치 서로다른 높이의 삼각형 모양의 매스 4개가 한 다발로 붙어있는 형상처럼 보이나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내려보면 완벽한 피라밋이 나타나는 것이다. 좀 더 완벽한 피라밋을 구사하기 위해 그는 외벽에 브레이싱을 설치하여 내부의 기둥을 모두 없애버렸다. 덕분에 태풍이 잦은 홍콩의 다운타운에 구조적으로 안전한 마천루가 탄생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트랜스아메리카빌딩(좌) 및 홍콩의 중국은행(우)>

  

 

그의 두 번째 피라미드 변형은 바로 미테랑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유리피라밋이다. 그는 피라밋이 갖는 강한 중심성과 대칭성을 끌어들이되 벽식구조가 갖는 폐쇄적인 성격을 제거하고자 사면에 유리를 설치하였다. 'ㄷ‘자형 루브르 중정에 놓인 이 건축물은 피라밋의 현대적 해석이라 불릴만한 작품으로 루브르일대의 재개발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루브르궁이 갖는 칙칙한 고전풍 스타일은 외관에 손 하나 대지 않은 채 산뜻한 리모델링에 성공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피라미드>

 

우리는 흔히 이집트 기자의 피라밋에 가서 눈이 휘둥그래지는 경험을 하고 온다. 정말 주변을 압도하는 엄청난 스케일의 외관은 과연 그 옛날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저걸 만들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닐 수도 있다. 규모가 좀 비정상적일 정도로 커서 그렇지 몇 십년 동안 몇 천명이 달라붙어 일일이 돌을 쪼개고 운반하여 힘들게 쌓으면 된다. 현재의 피라밋형태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그 때와 비교해보면 효율적인 장비와 공법과 전문인력이 같은 규모의 건축물을 단 3개월만에 완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러한 엄청난 작업이 얼마나 걸려서 완성된 것이냐 하는 것보다는 바로 그 장소에 자신들이 원하는 건축개념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피라밋이라는 형태’를 고안해내고 이를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로 창조해낸 능력이 아닐까? 피라밋이란 구조는 5000년전부터 있어왔지만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응용은 아직도 진행중인 것처럼 말이다.


네덜란드의 해체주의 건축가그룹 MVRDV는 암스텔담 인근에 WoZoCo Housing이라는 유명한 공동주택을 설계했다. 모두 100가구의 노인공동주택을 의뢰받은 설계자는 네덜란드 건축법에 따라 협소한 대지에 높이제한과 일조권을 만족시키는 규정을 모두 만족시키려면 최대 87가구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나머지 13가구를 추가하기 위하여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조해내었다. 그것은 기존의 사각형 건물외관에 캔틸레버처럼 돌출한 주호를 공중에 매단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특이한 외관, 합목적적인 기능, 법규만족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어떻게 저런 캔틸레버가 구조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컨셉을 완성하기 위해 사용한 구조는 200년전부터 사용된 트러스이다. 실제로 캔틸레버로 처리된 주호의 실내 거실부분에는 커다란 트러스가 가로지르고 있다. 세계적인 디자인은 기존의 구조기술을 잘 응용해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또 다른 홍콩의 명물, 상하이뱅크 건축물은 영국의 유명한 하이테크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작품이다. 그도 페이와 마찬가지로 48층의 건축물 내부에 기둥을 없애기 위해 건축물 전체를 수직으로 4개의 조닝을 한 뒤 각각의 조닝된 부분 위에 트러스와 인장 케이블을 설치하여 아래의 슬래브들을 들어올리고 있다. 마치 현수교량과 같은 원리로서 각 층의 바닥들은 지면에 떠 있으며 오로지 트러스를 지탱하기 위한 코아부분만이 땅과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새로운 디자인이 하루아침에 몇몇 천재 건축가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법은 없다. 사실 지면에 떠 있는 건물이란 주제는 19세기 이래로 계속 진행된 실험의 일부였다. 아키그램(archigram)의 ‘움직이는 건축(Moving Architecture)', 거너(Gunner Birkerts)의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의 일리노이공과대학 건축학부강의동 등 여러 형태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시도는 자신의 디자인개념을 충족시켜줄 구조적 실험으로 이어져왔다.

 

<홍콩의 HSBC 건물>

 

국내의 건축물들은 어떨까? 쿠알라룸푸르의 쌍둥이빌딩에서부터 두바이의 초고층빌딩에까지 우리의 시공회사들은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기술능력의 노하우를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 비록 그 모든 것이 외국의 건축가들이 설계한 것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국내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슬래브에 기둥을 가진 고전적인 틀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고 있다. 초고층을 세운다며 너도나도 계획안을 발표하지만 기존 저층건물에서 층수만 높여놨을 뿐 특이할 만한 디자인은 하나도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개발되는 공법과 세계적인 시공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지만 디자인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턱없이 모자란다. 우리는 과연 새로운 디자인을 향한 파격적인 실험의 기회를 가져본 적이 있기나 했을까?

 

분명 앞선 건설기술의 발달은 더 많은 창조적인 건축디자인을 이끌어내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더 높은 성당을 만들고자 했던 건축가들의 노력이 비내력벽으로 상징되는 고딕양식의 구조를 만들어낸 것처럼, 디자인적 필요는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내고 여기에는 끊임없는 디자인적 실험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공기를 하루 단축시킬 수 있는 기술도 분명 필요하지만, 정작 시급한 것은 그 발달하는 기술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창조적인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을 현실화하게끔 도와줄 여유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적 뒷받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톡톡튀는 아이디어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은 경제적 가치보다 공공적 가치를 우선하는 공공건축물에서 가능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200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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