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연 모양의 지붕에 황포돛대를 연상시키는 독창적디자인(연합뉴스, 2001.10.31)
이 지역 전통민속놀이인 고싸움의 `고'를 형상화했고 지붕의 곡선은 무등산의 스카이라인을 그대로 옮겨왔다.(동아일보, 2001.11.13)
전통 공예품인 합죽선의 이미지를 따온 지붕구조물은......지붕을 받쳐주는 기둥은 옛부터 마을입구에 세워두었던 솟대의 모습에서 따왔으며, 철골구조물을 받쳐주는 와이어는 가야금의 12현을 상징화했다. (스포츠투데이, 2001.10.18)
이들은 모두 서울, 광주, 전주 월드컵경기장을 설명한 신문기사 일부이다. 이 거대한 규모의 현대건축물이 하나같이 우리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며 애써 강변하는 모습이다. 말을 듣고보니 아~그렇구나 생각되지만 이 건축을 처음 본 사람이 이러한 것을 느끼기는 솔직히 어렵다. 이러한 모습은 도자기의 부드러운 곡선을 차용했다는 88올림픽스타디움부터 한옥의 처마선을 상징한다는 고속철광명역사까지 전후 50년간 이 땅에서 이루어진 모든 공공건축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과거의 '전통'만이 우리 현대 건축을 설명해줄 수 있 는 유일한 모티브일까?
그렇다면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파리의 에펠탑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역시 우리의 전통을 이어받은 현대건축 아닌가? 상암구장이 방패연을 상징한다면 검은구월단으로 유명한 뮌헨올림픽 스타디움은 가오리연을 상징하는가? 방패연은 인도나 중동에서도 흔한데 굳이 우리 전통이라는 것은 또 뭔가?
<뮌헨 올림픽 경기장>
우리가 '전통'에 유별나게 집착하는 것에 대해선 많은 사회학자들의 분석이 있었다. 그 중에는 일제시대와 겹쳐버린 근대시기를 해방이후 현대의 근원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민족적 정서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의 모든 가치기준의 근거는 중간과정이 생략된 먼 과거가 되버렸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전통'이란 게 지금은 한결 낫다. 과거를 보면 당혹스럽기까지 한다. 콘크리트로 똑같이 만들어진 불국사 청운교, 법주사 팔상전, 화엄사 각황전 등을 합성시킨 국립민속박물관이나 세계최대 규모의 기와지붕을 얹혔다는 콘크리트 한옥인 독립기념관은 전통의 계승이라기 보단 차라리 맹목적추종에 가깝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머리엔 족두리를 쓰고 있는 듯한 어색함은 낯뜨겁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이게 전통을 계승했다는 말한마디에 모든 게 용서되므로. 이렇게 된 원인을 여러 군데서 찾을 수 있겠지만 실제 설계현상지침을 관리한 발주처인 공공기관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경복궁내 국립민속박물관>
건축가의 창조적 자유대신 '전통', 그것도 기와지붕이나 전통문양같은 '형식적 전통'을 반드시 따르도록 한 설계지침은 우리의 현대건축을 충분히 왜곡시켰다. 건축가들은 자신의 설계를 설명하기 위해 되지도 않은 얘기를 가져다 붙여야했고, 공공기관과 언론은 이를 건축의 전부인양 일반인들을 '교육'시켰다. 그러니 위에서처럼 월드컵경기장의 지붕을 이루는 막구조, 쉘구조, 현수구조 등은 당연히 구조적 특성상 그러한 형태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방패연, 고싸움, 가야금줄을 표현하는 전통건축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전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일본에서는 벌써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세 명이나 배출해 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전통건축은 물론 현대건축을 보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일본건축가들은 세계적인 지명현상설계에 초청받는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도 일본의 전통을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단지 우리와 다른 점은 '전통'의 개념이다. 전통을 '형식모방'으로 보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공간적 내용'으로 보는 일본인들은 콘크리트를 사용해 목조에서나 사용하는 공포나 기와지붕을 흉내내지 않고도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전통적 도시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유럽의 도시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바르셀로나는 전체도시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건축가들에게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보장한다. 서양의 이름난 건축가치고 바르셀로나에 자신의 작품을 남기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바르셀로나는 현대건축의 표본이 되었고, 그들은 이를 도시재정비의 기회로 삼는다. 온통 중세시대건물로 가득찬 구시가 한가운데에 들어선 현대건축물에 의아해하는 나에게 바르셀로나시청 공무원이 던진 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에겐 과거의 전통뿐 아니라 미래의 후손에게 물려줄 전통을 새롭게 창조해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바르셀로나의 붉은색 구시가지 내 건설된 하얀색 현대미술관 - 리처드 마이어 作>
몇 년 전 국회의사당이 전혀 전통적이지 못하다며 기와지붕을 올리자는 얘기가 나왔다. 아직도 문화적인 후진성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200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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