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가면 고생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이다.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느끼한 음식에 지쳐 얼큰한 김치찌개와 따뜻한 밥이 생각나기 마련인데 그럴 때 반가운 것이 한국식당이다. 하지만 웬만한 대도시가 아니고선 한국식당을 발견하기 어려워 차선책으로 찾는 곳이 그래도 우리와 입맛을 공유하는 중국집이나 일식집일 것이다.
외국의 일식집에 들어서면 마치 한국의 일식집을 방문한 것과 같은 편안한(?) 느낌마저 들면서 익숙한 환경에 능숙한 솜씨로 요리를 즐기게 된다. 왠지 모를 이 편안함은 어디서부터 올까 곰곰이 생각하다 혹 이게 전세계 일식집이 가진 공통된 분위기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검은색 한자가 눈에 띄는 입구의 빨간 등, 진한 갈색 테이블과 그 위에 올려져 있는 하얀 일본식 도자기 반찬그릇, 격자형 창살이 돋보이는 미닫이문과 일본냄새 물씬 풍기는 소품들, 툇마루가 딸린 다다미 별실, 동일한 색조로 깔끔하게 처리된 벽에 포인트를 주는 일본식 꽂꽂이 그리고 일본식 전통복장을 입고 손님을 맞이하는 주방장과 종업원까지 마치 짜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세계 어딜 가도 동일한 이미지를 주는 일식집은 전세계 사람 모두에게 동일한 코드로 일식집을 인식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외국인들에게 생소한 식사만큼이나 이색적인 느낌을, 그리고 더 나아가 일본건축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음은 너무도 명약관화하다. 이런 문화적 이미지가 창출했을 부가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또한 그 문화적 이미지를 구성하기 위한 건축의 역할은 무얼까?
사실 일식집의 구성을 보면 전통적인 일본의 지배계층 '쇼군'의 주택 내부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우리의 사대부집 사랑방과는 달리 일본 전통주택 특히 쇼군이 거처하는 곳의 방내부는 오랜 세월 정형화되어 몇 가지 필수불가결한 구조요소와 장식들로 이루어져 있다.(이 재미있는 구조에 대해선 기회가 있으면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일본에서 전통 '료캉(旅館)'에 묵어 보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일본건축의 전통은 식당뿐만 아니라 호텔방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 정형화된 다실(茶室)이나 정원(庭園)의 전통양식 역시 다양한 시설에 현대화된 방식으로 응용되며 전 세계에 '일본'이란 나라의 이미지를 형성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 료캉 내부모습>
외국에서 아무런 정보없이 한식집을 찾아본 적이 있는가? 길거리에서 일식집과 중국집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만 한식집은 누군가의 안내없이는 찾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힘들게 찾았더라도 이게 한식집인지 서양식 레스토랑인지 구분이 안간다. 메뉴를 보고서야 비로소 한식당임을 알게 되고, 주변의 손님들이 모두 한국사람들인 것에 놀라게 된다. 우리가 기와지붕과 아름다운 처마선만을 전통으로 강조하는 동안(그러나 기와지붕과 아름다운 처마선은 일본에도, 중국에도 있다!)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내세울만한 우리의 이미지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이 혹 한국식당에 왔더라도 그들이 한국에 대해 무얼 느끼고 돌아갔을까? 아니, 굳이 외국의 예를 들것도 없다. 한국에서 한국의 전통을 느끼며 불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그 수많은 음식점 가운데 몇 개나 있을까? 하지만 한국의 일식집에서는 너무나 쉽게 일본전통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자의든, 타의든......! (200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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