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우리는 TV에서 '러브하우스'라는 무료 집고쳐주기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이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꿈도 꾸지 못했을 자선을 베풀어주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이다. 오락프로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건축관련 프로가 이렇게라도 있는 게 반가워 가끔 보게된다.
프로그램은 먼저 기존의 낙후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구멍뚫린 지붕, 습기찬 바닥, 낡은 욕실과 푸세식 화장실......그리고 몇 분 후 이것이 건축가(실제로는 인테리어업자에 가까운)의 손을 거쳐 어떻게 마법처럼 달라졌는가를 과거와 대비시키며 보여 준다. 실제로 공사과정에 일어났을 수요자(선택된 가족)의 요구나 설계자의 설계컨셉과 이를 현실화하려는 노력 등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시청률이 목적인 TV가 보여주는 관심은 건축이 갖는 진지한 사회적 고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곧바로 집을 소개하는 화면에서 드러난다. 자세히 보면 집은 마치 모델하우스같다. 원래 그들이 쓰던 물건들은 하나도 들여놓지 않은 깨끗한(?) 상태에서 넓고 여유롭게 보이는 내부는 시스템키친, 붙박이 대형 냉장고와 드럼세탁기 등 비싼 고급 가구들로 가득차 있다. 출연자들의 관심도 온통 그곳에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촬영후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과연 수도세 많이 나오는 월풀욕조와 드럼세탁기를, 전기세 많이 나오는 가스오븐과 할로겐램프 등을 사용하며 분위기잡고 여유를 부리며 향상된 주거의 질을 만끽하게 될까? 결국 우리는 이 프로를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줄 수 있는 주거문화로서 건축을 생각해보는 게 아니라 한 편의 마술쇼와 간접광고만 잔뜩 관람하게 된다.
1. 고급인테리어와 가구가 가족의 행복을 지어드린다는 이 해괴망측한 논리 앞에서 우리는 10평 조금 넘는 좁은 집에 일가족 대여섯명이 모여 사는 현실을 잊는다. 저소득층의 주거문제가 단순한 시설낙후 때문일까? 의식주는 인간의 필수 생존요건이다. 가난하니까 밥은 한끼만 먹고 옷은 바지만 입어라 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집 역시 모든 사람들이 균등한 가치를 갖도록 해야한다. 衣와 食에 대해선 공공이 적극 개입하면서 유독 住에 대해선 시장으로서의 가치, 재산으로서의 가치만 강조하고 있는 것은 혹 아닐까?
분양하는 아파트 평수를 보면 예를 들어 32평은 3인가족, 46평은 4인가족 식의 일률적 기준으로 설계가 된다. 가족수에 따라 사는 평수가 정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그러나 현실이 아니다. 부부만 살아도 돈이 많으면 70평에서 살고 아이가 넷이어도 가난하면 24평에서 산다. 이 모순이 TV가 보여주지 못한 저소득층의 진짜 주거문제 아닐까?
2. 건축은 단지 인테리어나 바꾸고 가구를 배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건축이 창조하는 空間의 개념은 단순한 허공이 아니라 물리적 실체로부터 담을 수 있게 비어져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노자의 공간론과 맞닿아있다. 건축의 근원이 공간이면 그 발전의 척도 역시 공간개념으로 설명되어져야 한다. 다양한 공간적 실험......그것은 그 발전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고 한 사회가 갖는 창조력의 바탕이다.
그러나 우리의 건축문화는 어떠한가? 그러한 공간적 실험을 진지하게 의식하지도 고민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공간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사각형 박스건물과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평면을 숙명처럼 당연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얼마나 놀라운가?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덩달아 미적 가치기준 역시 높아진다. 부자들이 저마다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 집을 뜯어고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자본력이 충분히 뒷받침된 그 질적 욕구는 안타깝게도 건축공간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기껏해야 수입대리석과 치장된 고급외제 가구들로 왜곡되고 있다. 시공회사들은 덩달아 이것을 고급주택의 표본인양 광고하며 한 몫 챙긴다. '건축=인테리어'라는 이런 인식은 결국 시간이 지나도, 다른 지역에 가도 변하지 않는 똑같이 카피된 평면과 공간을 만들어내며 오늘도 멀쩡한 아파트들의 그 속내를 헐어낸다.
서양에서 시작된 아파트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 잘 정착하여 대표적 주거문화가 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많은 실험을 할 기회가 있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주거의 질적 욕구가 증대되고 있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건축공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발전을 공공적 측면에서 생각해야 될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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