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중동

이란배낭여행(13) 야즈드-조로아스터교의 심장, 침묵의 탑과 불의 신전

budsmile 2014. 9. 24. 16:40

어느 여행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항상 좋은 기억만 있는 여행은 없다. 어딜가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있기 마련......

 

이스파한에서 야즈드가는 길이 나에겐 그러했다. 내가 타고 갈 오후 3시30분 출발 VIP버스(이란에서는 그냥 일반버스와 VIP버스로 등급이 나뉜다. 우리나라의 우등버스 정도의 개념인데 물론, 가격은 더 비싸다.)는 15분이나 늦게 플랫포옴에 들어서더니 출발하면서도 여기저기 멈추며 빈 좌석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안내원은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를 스스럼없이 피는 것은 물론이고, 운전사는 에어컨을 꺼버리는 만행에다가 끊임없이 핸드펀질을 해대며 나의 신경을 거슬렸다. 게다가 어찌나 음악은 크게 트는지......나는 크게 육두문자를 한바가지 시원하게 날려줬다. 물론, 마음속으로 ㅎ.....소심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게 그렇지 뭐......그래도 다들 여행을 오래하면 느는 건 'No Problem'이요, 저다마 참을 인자 3개 이상 새기고 득도를 한다고 하지 않는가......이쯤이야...하며 눈을 감았지만 뙤약볕이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 정말 자폭하기 일보 직전, 버스는 야즈드 터미널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반전의 연속......

 

이스파한이 대도시의 쌀쌀함에 쩔었다면, 여기 야즈드는 완연한 시골인심이 확 느껴진다. 버스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는 언제 그랬냐는듯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눈녹듯 사라졌다. 미리 쉬라즈행 티켓을 예매하려는데 왕 친절, 택시타는 곳 물어봤더니 직접 데려다주질 않나, 여기저기서 나를 향해 미소짓는 예쁜 아낙들까지(물론, 히잡 밑에서 일어난 일이니 알 수는 없다!! ㅎ).......하지만 그만큼 첫인상이 좋았다.

 

한밤중......나는 택시를 타고 배낭족들의 안식처, 실크로드 호스텔로 가자고 했다. 시내까지는 거리가 꽤 되는데, 꼴랑 6만리알을 부른다. 여긴 물가가 싸나? 반쯤 의심하며 간 호스텔은 그러나 완전 Full!!!......역시 인기가 좋아....하며 나오는데, 그 택시기가 아직 떠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혹시 내가 방을 못구할 경우를 대비해 기다렸던 것이다.(물론, 기사는 직업적 눈치에 따른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걸 나에 대한 친절로 과잉해석하여 야즈드의 첫인상에 포함하기까지 했다. ㅎ)

 

어디로 갈까? 나는 버스타고 야즈드에 올때 배낭족의 자존심에 이끌려 가장 싼 호스텔인 실크로드 호스텔로 먼저 가야만 한다라고 주문을 걸었지만, 내심 그 호스텔이 꽉 차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는 그럴 경우를 확실하게(?) 대비해 Malek-o Tojjar 호텔을 차순위로 점찍어놨다. 이 호텔은 상당히 비싸다. 싱글룸 54달러......우리나라에 비하면 장급 정도의 요금이겠지만, 물가 싼 이란에서는 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호텔에 머물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호텔이 옛날 카라반사라이를 개조한 정통 페르시안식 호텔이었기 때문이었다. 가격때문에 처음엔 망설였지만, 대안이 확실이 없어져준 덕분에 마음놓고 내질렀다. 방값이 비싸도 비어있는 방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내 한 몸 뉘일 곳은 있었다. 나는 체크인을 한 후,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기사양반에게 내일 나를 침묵의 탑까지 왕복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당연 OK! 그리고 가격을 물어보니 10만리얄을 달란다. 엥? 론리플래닛에는 왕복 10달러가 넘을 거라고 했는데(게다가 여기와서 보니 론리 가격의 1.5배 정도가 적당한 현지가격이었다.) 꼴랑 3달러? 가만보니 이 기사아저씨 너무 순박하다. 주변 이란인들이 너도나도 할 것없이 너 미쳤냐며 자기들끼리 논쟁이 벌어진다. 어쨋든 이 아저씨는 자기때문에 치열하게 논쟁중인 주변 이란인들이 무색하게도 내일 오겠다며 휘리릭 사라졌다. 고마운 사람같으니라구.....당신같은 사람은 내가 먼저 더 준다......(아니, 어쩌면 그걸 노리고 순박한 척 하는건가? 내일 보면 알겠지!!)

 

벌써 밤 10시가 가까운 시간......역시 친절한 카운터 여직원에게 주문한 가벼운 샐러드를 먹으며 중정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으니 한 청년이 다가와 잠깐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알리'라는 스무살 청년이다. 낼 입대한단다. 그러고보니 버스 안에서도 군인들을 많이 봤는데, 야즈드에는 우리의 논산훈련소같은 곳이 있나보다. 이 청년의 첫 질문이 'Are you free?'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이란 청년들로부터 받게 되는 똑같은 질문이었다. 이란 젊은이들의 복잡한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물음이었다. 갑자기 군대가기 전날 밤이 생각났다.

 

다음날 아침......약속한 8시 30분에 정확히 기사아저씨는 나와있었다. 이름이 '압바스'......여기는 죄다 황제(압바스) 아니면 종교지도자(알리) 이름을 가진 모양이다 ㅎ......차를 타러 갔더니, 차 안에 부인으로 보이는 여인과 5살 아들, 2살 딸이 있다. 나랑 조금 같이 타고 가다가 그들을 내려줬는데, 아마 부인이 출근하는 모양이다. 모두들 수줍어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다. 압바스는 내가 말을 걸긴 하지만, 나의 짧은 영어도 거의 통하지 않아 서로 말도 없이 조용히 운전만 한다. 운전도 얌전히 한다. 사실 이란에 와서 놀란 건 교통질서다. 신호등이나 차선은 무용지물. 아무데서나 멈추고, 유턴에 좌회전은 기본. 깜빡이는 본 적 없고, 보행자들과 오토바이도 도로를 무단으로 끼어들기 다반사다. 그런데 압바스는 정말 편안히 운전을 해줬다.

 

한 20분쯤 갔을까? 어느 순간 도시는 황량한 사막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바위산 2개......사진에서 많이 봤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붉은 바위산......그리고 그 위에 쌓아 올린 원형의 성벽같은 구조물......바로 조로아스터교의 조장터였다. 차에서 내려 조장터를 둘러싼 긴 담벼락에 난 자그마한 입구로 들어서니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저만치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어느덧 그 풍경에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조로아스터교는 말 그대로 조로아스터(짜라투스트라)의 교리를 신봉하는 종교다. 조로아스터는 기원전 1000년 혹은 1500년경에 태어났다고 전해지는데, 출생지를 포함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조로아스터교는 전지전능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는 최초의 종교 중 하나다. 그 신의 이름은 '아후라 마즈다'로서 어떠한 상징이나 아이콘도 없다. 조로아스터는 신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는데 애로를 느끼고 기도의 방향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빛'을 향하라고만 했다 한다.(마치 이슬람교인들이 메카를 향하듯,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향해 기도를 하듯 말이다) 고대인들이 제어할 수 있는 빛은 바로 '불'이었기 때문에 불을 향해 기도를 하게 되었고(불은 비정형을 지니고, 존재가 느껴지지만 만질수도 없는 특징을 아마 신의 특성과 비유한 것이리라) 이때부터 배화교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그러나 '불'을 숭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 알려진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이크나톤 시대 태양신 '라' 이후, 유일신교의 명맥을 이으며,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 종교의 특징은 여느 유일신교처럼 선과 악으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신'이 모든 걸 운명처럼 결정해놓치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해석했는데, 니체는 이 점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며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이 종교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바위산 밑에 있는 구조물들은 장시시설인 셈이다. 시신을 안치하고 제사를 지낸 후 바위산으로 가지고 올라가 조장을 행했던 것이다. 지금은 조장이 불법이 되었고, 아무도 찾지도, 관리하지도 않게 되면서 많은 시설들이 훼손되고 있다.

 

 

 

 

 

 

 

 

 

 

나는 바위산 중 왼쪽에 보이는 남성용 조장터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여성용에 비해 크기도 했지만, 나와 거의 함께 몰려온 떼거리 관광객들이 모두 오른쪽 여성용 조장터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난 좀 더 호젓한 기운을 느끼고 싶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높지는 않았지만 그늘 하나 없는 바위산까지는 더위와 싸워가며 올라야했다.

 

 

중턱에는 이런 구조물도 있고......

 

 

마침내 다다른 조장터의 입구......

 

 

조장터 내부는 둥그런 구덩이만 있을 뿐이다. 바로 저기에 시신이 안치되었을 것이다. 신자들은 원소의 순수성을 믿었기 때문에 땅을 오염시키는 매장과, 공기를 오염시키는 화장을 기피했다고 한다. 조장이 금지된 지금도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은 땅을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무덤에 묻힌다고 한다.

 

조장으로 유명한 또 하나의 지역은 아마 티벳일 것이다. 허나, 티벳은 뼈까지 독수리에게 주어 완전히 처리하는 데 비해, 페르시아는 살점만 뜯기고 뼈는 구덩이에 모아놓았다고 하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남성용 조장터에서 바라본 야즈드 시내와 산아래 장사시설들......

 

 

 

반대편 여성용 조장터를 내려 보다......바위산 근처로 이미 도시는 확장되고 있었다. 이 곳의 경관을 망칠게 뻔한 공사들이 주변에서 진행되는 것을 보며 아쉽기도 하고, 한 때 자신들의 정체성이었던 신념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같기도 해 조금 씁쓸하다. 하루 빨리 이 관련 유적들이 세계유산에 오를 수 있도록 기원해본다.(야즈드는 현재 잠정목록에는 올라가있다.)

 

 

여성용 조장터를 올려다본 모습......

 

 

현재 전세계에 15만명의 조로아스터교도가 있다고 한다. 그 중 2만명(그 중 1만명이 테헤란, 4천명이 야즈드에 산다고 한다.)이 이란에 산다고 한다. 이들은 차도르를 쓰지도 않고, 하얀색, 크림색 또는 빨간색의 수를 놓은 드레스를 입고 다녀 눈에 확 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동방박사의 경배로 잘 알고 있는 성서의 인물은 Magi(마기)를 번역한 것인데, 이 Magi가 조로아스터교의 성직자를 부르는 이름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인도로 건너가 '파르시교'가 되는데, 교리는 일맥상통하다. 다만, 조로아스터교는 누구나 믿을 수있는 반면, 파르시교는 민족종교화하여 그 민족이나 가족에서 출생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바로 이 인도의 파르시교도 출신이다. 즉, 그는 조로아스터교도 중에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유명인사인 셈이다.

 

 

 

 

이제 침묵의 탑을 나와 조로아스터교 신전의 총본산, 불의 신전으로 향한다. 아테슈카데 사원에는 기원후 470년경부터 타오르고 있는 불이 있다. 이 불이 야즈드에 온 것은 1474년, 다시 이 자리에 온 것은 1940년이라고 한다. 사원은 비교적 최근에 지은 것이라 특이할 만한 것은 없다. 웅장하지도, 고풍스럽지도 않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을 보러 오는 것인데, 사실 '불'은 인간이 만든 표상이다. 이름도 없고,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신을 대신에 경배대상이 필요했던 일반인들이 모셨던 '신'이다. 일종의 우상인 셈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 인간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원 정면 천장에는 파르바쉬(또는 파르바하)라는 상징이 새겨져있다. 이는 '아후라 마즈다'라는 신을 상징하는 게 아니며, 죽음 이후 신에게 접근하는 정신을 상징화한 것이다. 파르바쉬의 머리는 경험과 지혜를, 오른손은 신에 대한 경배를 위해 위를 향하고, 왼손의 고리는 통일을 상징한다. 가운데 더 큰 고리는 영원불멸과 자기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반향을 상징한다. 날개에 있는 깃털의 세겹은 생각과 말, 행동의 순수성을 상징하며, 꼬리는 떨쳐내야 할 나쁜 생각과 말, 행동을 의미한다. 양쪽으로 빼져나온 2개의 끝은 각각 선함과 악함을 상징한다.

 

 

영원한 불은 유리창 너머로만 구경이 가능하다. 유리창에 운전기사 '압바스'의 모습도 비친다......ㅎ

 

 

조로아스터의 모습...물론 후대의 상상화이다.

 

 

불의 신전 옆에는 조그마한 박물관이 있다. 그 중 영원한 불과, 아후라 마즈다, 조로아스터와 파르바쉬가 같이 그려진 그림이다.

 

 

 

이제 야즈드 시내로 들어가본다......

 

Flag Cou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