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중동

이란배낭여행(1) - 테헤란 도착, 시작은 호메이니 묘소부터

budsmile 2013. 9. 6. 18:02

11번째 배낭여행이자 63번째 국가로 이란을 택했다. 그것도 나홀로 배낭여행으로. 오랫만이었다. 2006년 튀니지 이후 7년만의 나홀로 배낭여행. 설레였다. 하지만 올초 이란을 점찍어두고서도 갈등이 많았다. 첫번째는 이란을 바라보는 시각때문이었다. 위험하지 않아? 전쟁중이지 않아? 등등...대개 첫반응은 비슷했다. 하지만 조금만 이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반응에 괘념치 않게 된다. 이란만큼 안전하고 여행객에 호의적인 나라는 없다고 lonely planet에도 나와있지 않은가? 두번째는 처자식딸린 몸으로 꼭 혼자 여행을 가야하느냐는 것이다. 이건 스스로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와이프가 오히려 먼저 흔쾌히 정리해주었다. 쳇바퀴같은 일상에선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인생을 정리하고 반추해볼 기회를 갖기 어려운게 사실, 내가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이기도 했는데 내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었다.(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그래도 왜 이란이냐고 물어보면...글쎄! 유홍준선생님 말마따나 그곳이 거기에 있어 간다라고나 할까.......그렇게 어렵게 결정한 이란행.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천에서 테헤란까지 이란항공의 직항편이 있었지만, 현재는 제재 등으로 모두 끊긴 상태. 가려면 북경, 두바이, 도하 또는 이스탄불을 거쳐서 가야만 하는 긴 여정. 나는 당연 제일 싼 가격의 항공권을 선택했다. 에미레이트항공! 더구나 일정도 금요일 밤에 출발해 토요일 오전 도착, 귀국할 때도 토요일 밤에 출발 일요일 낮에 도착으로 10일 중 9일을 짜투리 시간 낭비없이 온전히 여행으로 보낼 수 있으니 좋았다.

 

금요일 직장근무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공항버스를 탔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30분. 체크인카운터는 벌써 열려있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보딩패스를 받아든 나는 선명히 찍힌 'business class'를 보고 놀랐다. 프로모션인지, 오버부킹인지 항공사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최신기종 A-380의 비즈니스석이라......출발부터 기분이 좋다.

 

CIQ에 들어가기 앞서, 여행자보험을 가입하려 했으나 모두 클로즈된 상태......할 수 없이 이번 여행은 보험없이 가기로 빨리 마음을 정리하고 입국심사대를 거쳐 면세구역으로 들어섰다. 더 늦기 전에 무료샤워를 하고 -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4층에 있는데, 수건과 샴푸 등 일체와 드라이기까지 빌려준다- 탑승동으로 이동해 PP카드 라운지에 들러 간단히 요기를 했다. 이빨까지 닦고 나니 잠잘 준비 완료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탑승구로 이동했다.

 

창밖으로 내가 타고 갈 A-380 두바이행 항공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복층구조로 되어 있는데, 비즈니스석은 2층이다.

 

 

내 좌석......메뉴판과 상시적으로 갖춰진 음료대, 그리고 대형 화면의 스크린과 완전히 누울 수 있는 좌석....흠! 맘에 든다. 실제 잠을 잘 때는 푹신한 휴대용 매트리스까지 깔아준다. 세면도구백도 나눠주는데 꽤 쓸만하다. 안대와 수면양말도 있는데 요건 여행내내 요긴하게 썼다. 비즈니스석 뒤에는 칵테일바까지 있다. 수면이 필요한 관계로 이용하진 않았지만, 비행기안의 바도 제법 근사하다.

 

다만, 야간비행시 비즈니스석에도 조금 애로는 있다. 식사여부 접수부터 주문, 배식(그것도 에피타이저부터 차례대로 그릇에 담아 나온다.), 수거까지 1시간 30여분은 걸린 듯하다.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꽤 많이 줄어드는 건 각오해야 한다.

 

참고로 저 밑에 보이는 배낭이 내 짐의 전부다. 언제부턴가 한달 안팎의 여행까지는 저 조그만 배낭 하나면 충분했다. 그렇지만 손톱깎기부터 이불까지 필요한 모든 것은 다 들어있다. 이번엔 처음으로 DSLR을 들고 나가는 통에 부피가 조금 커졌다.

 

 

9시간의 비행 후 두바이 도착시간은 새벽 4시 5분......PP라운지에서 4시간 가량을 뭉그적 거리다가 - 라운지에서는 무료 샤워가 된다고 들었는데, 1.6달러를 받는다. 아마 너무 많이 알려진듯 - 오전 8시 40분 다시 테헤란행 비행기에 오른다.

 

사진은 조금 흔들렸지만, 역시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관문을 바라볼 때의 그 짜릿함은 중독성이 강하다.

 

 

다시 2시간을 날아 테헤란에 오전 10시 35분 도착했다. 비행기는 이륙 후 곧바로 호르무즈 해협을 건너 이란땅에 들어섰다. 마치 우주선에서 바라본 화성이라 해도 믿을 듯, 황톳빛 계곡와 사막이 온 천지에 펼쳐지고 예전에 강이 흘렀던 자리는 지렁이가 꿈틀거린 흔적처럼 그 과거의 기억을 대지에 남겨놓았다. 어디에서도 인간이나 문명의 흔적은 없었다. 손닿지 않은 태초를 보는 듯, 맨살의 지구를 보는 듯한 경이로움이었다. 그러나 테헤란에 가까워질수록 더 이상 계곡이나 산은 없었고, 널따란 평지에 광활한 밭이 펼쳐져 있었다. 건조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도대체 어디서 물을 끌어오는 건지(의문은 나중에 풀린다)......그리고 비행기는 곧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에 안착했다.

 

공항은 조금 단촐했다. 하지만 꽤 현대적이었다. 별도의 세관검사는 없는 대신, 모든 짐은 엑스레이를 다시 한 번 통과해야 했다. 이란이 엄격한 이슬람 율법국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술, 야한 잡지, 돼지고기 등의 반입을 막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풍경......

 

커다란 이란 국기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생각보다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는 느낌이고, 차들도 제재국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것들이 많다. 특히 푸조가 많았고, 우리나라 차들도 많이 보이는데 특히 노란색의 택시는 모두 프라이드다. 예전에 우리가 공장을 지어서 생산도 했다는데, 그 공장은 요새 이란회사로 넘어가 브랜드명만 달리 생산되고 있다.('SAIPA'이던가?) 암튼 리오나 소나타 등도 많이 보인다.

 

 

이란의 국기는 호메이니 혁명 이후에 새로 제정된 것이다. 가운데 엠블렘은 '알라'를 아랍어로 형상화한 것이고, 빨강, 초록, 하양의 3가지 색깔의 경계에는 '신은 위대하다'라는 글귀가 22번 반복되고 있다.

 

 

테헤란 시내로 들어서기 직전, 오른편에 이맘 호메이니의 묘소가 나타난다. 입구에 있는 호메이니옹의 차남이 등장하는 대형 광고판....무슨 내용인지는 당연히 알 수 없음....ㅋ

 

호메이니라 이름 앞에 항상 붙는 '이맘'이란 단어는 최고 종교지도자를 뜻한다. 시아파의 용어이기 때문에 수니파에서는 쓰지 않는다. 시아파와 수니파는 알다시피 마호멧 사후 이슬람 적통을 따지는 과정에서 갈려나왔다. 주로 칼리프와 귀족계급이 종교적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랍인들의 수니파라면, 마호멧의 혈통으로 이어지는 이맘들을 내세우는 것이 시아파다. 그래서 시아파는 주로 헤즈볼라와 같은 기층민의 신앙으로 나타난다. 페르시아 민족인 이란인들은 아랍의 지배를 받으며 무슬림으로 대부분 개종되었고, 자신들을 아랍인들과 구분하기 위해 몽골지배가 끝난 16세기 다시 페르시아 사파비왕조를 열면서 시아파를 전격 채택했다. 현재도 시아파를 채택한 국가는 이라크와 시리아 정도이다.(이라크는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가 몰락하면서 다수파인 시아파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고, 시리아는 대통령 아사드가 시아파의 일파인 알라위파 소속이긴 하지만 베두인 소수민족이고 시리아 내에서도 시아파는 소수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시아파 국가는 이란밖에는 없다)

 

 

호메이니 묘소는 25년째 공사중이란다...제재로 인해 공사자재가 부족한 것같지는 않고....왜냐하면 시내 곳곳에 저런 크레인이 수도 없이 많은 건물을 올리고 있었다...하물며 국부인 호메이니옹의 묘소일진데......내가 보기엔 정말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섬세한 디테일을 완성해가는 듯 보인다......사진 왼쪽 천장에 천막이 쳐진 곳이 바로 입구다......입장료는 무료.....입구 근처엔 자원봉사 청년들이 뜨거운 차를 순례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사진촬영은 물론 절대금지...반드시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신발도 벗고......

 

 

입구부터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는데......걔중에는 눈만 내놓은 차도르를 두른 수니파 여인들, 하얀 옷을 입은 아랍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호메이니는 시아파의 지도자라는 인식보다는 중동지방의 영웅같은 대접을 받는다고나 할까......

 

 

묘소 벽면에 그려진 호메이니의 초상......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이란은 신정일치 국가이다....국명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지 않은가......대통령은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지만,(최근에 예상을 깨고 온건개혁파의 지지를 받은 로하니가 당선되면서 강경보수파인 아마디네자드의 8년 통치권력을 교체하기도 하였다) 외교나 국방 등 중요정책은 최고종교지도자의 몫이다. 호메이니가 살아 생전 해왔던 그 역할을 지금은 하메네이가 하고 있는데, 국민들에게 별 인기가 없는 것같다.(적어도 내가 만난 이란 젊은이들의 생각은 그러했다)

 

내가 이란을 여행하는 동안 만난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물어본 질문이 있다. '너희 나라는 자유가 얼마나 있느냐?'......희한했다. 인도인들이 '너 행복하냐?'고 묻는 것처럼 일상이 되어버린 질문같았다. 이란이 다 좋은데, 사적인 자유가 별로 없다는 게 불만이라는 것이다.(사실, 이들의 사적 자유는 사복을 입고 곳곳에 퍼져있는 종교경찰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예를 들어, 결혼안한 여자친구를 남자가 집에 데리고 가는 것은 불법이다. 맨살을 노출하는 것도 불법, 여자들이 차도르를 둘러쓰지 않거나 엉덩이부분을 옷으로 덮지 않아도 불법. 자유연애도 불법. 웬 규율이 이렇게도 많은지......) 하지만, 그 자유를 위해 혁명을 이룬 거 아닌가? 세상은 변한다. 혁명 당시 그들이 원하던 자유와 지금 젊은이들이 원하는 자유는 그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 변화된 욕구가 여론이고, 시대정신이라면, 그것을 채워줘야 하는 것은 지도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그것에 무엇보다 목말라하고 있는 것같았다.

 

 

공사중이라서 그런지 주변은 어수선하다. 여기에는 묘소 뿐만 아니라 모스크, 병원, 학교 등이 복합시설로 들어서 있다. 묘소 주변에는 텐트를 치며 며칠씩 여기에 머무는 순례객들도 종종 눈에 띈다.

 

 

미나렛 첨탑 하나만 봐도 얼마나 이들이 이 묘소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라 다른 곳에서 퍼왔다. 안에도 역시 공사중이라 어수선한데, 예의 중동지역 모스크처럼 내부엔 페르시아 카펫이 깔려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잠을 자고,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어떤 이는 잡담을 나누고, 아이들은 뛰어논다. 모스크가 종교시설이라 엄격하고 삼엄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난 그런 점이 좋다. 모스크는 그냥 이들에게 일상이고, 쉼터이고, 안식처이다. 종교시설은 무릇 그래야 하지 않을까?

 

묘소는 호메이니의 평소 성품답게 수수하다. 전반적으로 초록색의 조명이 은은히 비치는 가운데, 사각형으로 된 별도 방에 관이 모셔져 있다. 사람들은 그 방의 창살을 붙잡고 소원을 빌며 돈을 바친다. 바깥부터 남녀의 입장이 구분되어 있어, 안에서도 남녀가 서로 만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구조다.

 

(출처: www.flickriver.com)

 

이 묘소가 완공되면 어떤 모습일까? 난 지금 이대로의 수수한 모습이 좋다. 호메이니의 뜻을 받든다면 말이다. 후에 난 쉬라즈에서 시아파 3대 성소라는 샤에체그라 영묘에 간 적이 있다. 외부의 완벽한 비례와 디테일에 놀랐고, 내부로 들어가자 온통 거울로 뒤덮인 화려한 조각과 문양에 다시 한 번 놀란적이 있다. 아마 이 묘소도 그 예를 따르지 않을까? 위인을 종교로 만들어, 본래 그 위인이 가지고 있던 사상과 깨달음을 교조와 규율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권력을 탐하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흔한 사례다. 예수님과 부처님을 기독교와 불교가 얼마나 왜곡시켰는가......하지만 평범한 인간들은 원래 그런것에 환장한다......번쩍번쩍한 건물과 화려한 의식, 선택의 여지없는 절대주의적 지시와 몇개의 감투, 언제부턴가 그것 자체가 종교가 되어버렸다. 그건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가장한 권력인데도 말이다......

 

호메이니 무덤 옆은 그의 큰아들의 무덤이다(출처: www.flickr.com)

 

호메이니 영묘를 나와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이제 테헤란 시내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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