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Petra)- 이 유적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이 고개를 갸우뚱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인디아나존스3-최후의 성배'와 '트랜스포머2'에 나온 요르단의 고대 유적지라 하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지 모르겠다.(실제로 유적지 근방 호스텔에서는 투숙객을 위해 로비에서 하루종일 이들 영화를 무료로 틀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나 생소할 뿐, 서양에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유명한 유적지다. 최근엔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됐으며, 2008년 성악가 파바로티 추모공연이 열렸고, BBC에서는 '죽기전 가봐야할 50곳'을 선정하면서 16위로 랭크해놨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오지여행가였던 한비야씨도 이 곳만큼은 그냥 못 지나갔을까?
실제 가서 보면 이 유적지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를 저절로 알게 된다. 어떤 설명도 필요없다. 세상의 많은 유적지에 가 보았지만 이 곳만큼 독특하고 특별한 감동을 주는 곳은 찾기 힘들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버스터미널에서 페트라(와디무사)행 버스를 타고 3시간 30분. 숙소를 잡자마자 바로 페트라로 달려간다. 이틀짜리 티켓을 끊고 매표소에서 조금 들어가자 갑자기 큰 절벽이 가로막는다. 그리고 그 절벽가운데로 좁은 길이 신비하게 나타난다. 높이 100m가 넘는 절벽사이로 난 그 계곡의 이름은 시크(Siq), 길의 폭은 2, 3명이 걸을 정도로 좁은 2-4m, 길이는 1.2km에 달한다.
1.2km......걷는데 지루하지 않냐고? Never!!!!! 일단 Siq에 들어서면 갑자기 딴 세상이 펼쳐진다. 계곡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는 주변의 모 든 소음을 삼키고 마치 접근해서는 안되는 금단의 땅에 들어가는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들어갈수록 높아지는 절벽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햇빛은 성스런 신비스러움마저 감돌게 한다. 굉장한 적막감과 엄숙함 위로 지나가는 정체모를 새의 울음소리는 시공간감을 잊게 하며 모든 감각을 초현실화시킨다.
<Siq의 시작지점>
Siq를 구성하는 바위는 온통 붉은빛 사암이다. 정말 극적이지 않는가? 내 주변의 바위는 그늘져 어두운데, 바로 앞의 바위는 해가 비쳐 밝은 붉은빛을 낸다. 마치 나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유도하는 듯한 광경이 걷는 내내 펼쳐진다. 자세히 보면 바위는 물결치듯 무늬가 있어 더욱더 신비롭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고고학자의 심경이 이런 것이겠구나 하면서 자연스레 탐험가가 된다.
<Siq의 풍경>
Siq의 하늘을 바라본 모습......절벽의 높이는 최고 100m가까이 달한다고 한다.
시간도 잊어버린 채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갈라진 바위틈으로 뭔가가 안개에 싸여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바로 페트라의 중심건물인 '알 카즈네(Al Khazneh)'다. 인디아나 존스3에서는 성배를 지키는 십자군 기사가 은거하는 곳으로 나왔는데, 실상 내부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단순한 방만 덩그러이 있는 곳이다. '알 카즈네'는 보물창고란 뜻인데 후세 사람들은 이 곳에 보물이 묻혀있었을 거라 생각해서 붙인 이름이다. 물론 '보물'은 아직도 전설이다.
알 카즈네는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위의 사진은 아침에 찍은 것이지만, 저녁무렵 찍은 아래 사진에는 어두운 Siq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같은 '알 카즈네'를 만날 수 있다. 얼마나 극적인 효과인가? 고대의 건축가들은 교묘하게 Siq가 끝나는 곳의 맞은 편, 남측 벽에 건물을 '세웠다.' 아니 '새겼다'
알 카즈네는 사실 '건축'이 아니라 '조각'이다. 높이 43미터, 너비 30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유산은 기둥을 세워 지은 게 아니라, 커다란 절벽을 파고들어가면서 새긴 것이다.
의도적인 명암효과를 통해 단순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감동을 주는 이 장면에 나는 한동안 Siq사이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얼어버린 듯 그 자리에 서서 고대문명의 지혜를, 건축가의 치밀함을 찬양했다. 죽음의 순례길을 벗어나 '빛'을 찾아 부활을 경험했던 아크나톤 시대의 고대 이집트 의식이, 프리메이슨의 신성한 교리가 문득 떠오른다. 시공을 뛰어넘어 말로도, 사진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 신성한 경험을 고대인들과 순간 공유하게 된 느낌이랄까~
'알카즈네'의 2층 원통형 부분이 바로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 부분이다. 페트라는 기원전 7세기부터 살기 시작한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도시다. 베두윈 족의 선조라 믿어지는 나바테아인들은 대상로 교차점의 교통 요지인 이 곳에 페트라를 건설하고 로마와 동방을 연결하며 중개무역의 이익으로 번성했다. 알 카즈네의 건축양식은 그런 그들의 다양한 문명 섭취의 증거이다.
후에 페트라는 로마인들에게 점령당한다. 도시는 더 커지고 수많은 무덤과 주거동굴이 형성되었다. 알 카즈네를 좌측에 끼고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면 널따란 바위산 곳곳에 도시유적이 나타난다. 아래의 로마식 극장은 정복자 로마인들이 기존의 나바테아인들의 무덤을 헐어내고 만든 것이다.
로마시대의 열주......로마는 중심가로에 열주를 세웠다. 처음으로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고 가로수의 개념이 도입된 사례라 할 것이다. 로마시대를 끝으로 페트라는 지진과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으로 황폐화됐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졌다. 유적이 다시 발견된 것은 1812년. 스위스 탐험가인 부르크하르트가 다마스커스에서 카이로로 가던 도중 주변에 잊혀진 도시가 있다는 주민들의 소문을 따라 현지인으로 분장하고 우여곡절끝에 이 곳을 다시 찾아냈다. 이후 그의 여행기가 출간되면서 페트라는 다시 서양인들에게 알려졌다. 그 이후 아직 유적지의 절반도 발굴이 되지 않았지만 이 넓은 곳을 여행하려면 최소 이틀 이상이 걸릴 정도로 넓다.
바위산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물론 이는 후세인들의 추측에 불과하다)이 존재한다. 여기는 정원무덤(Garden Tomb)이라 이름붙여진 곳이다.
여기는 비잔틴교회라는 이름이 붙은 곳......규모가 알카즈네 못지 않다.
여기는 오벨리스크 무덤이라 알려진 곳인데 2층 부분이 오벨리스크가 열주 형태로 서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장식과 문양이 화려한 또 다른 무덤......이런 귀족 무덤들은 바위산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한낮이 되면서 그늘 하나 없는 유적지를 돌아다니는 것은 고행과 같은 일이었지만, 산을 타고 계곡을 가로질러 지도에 표시된 다양한 유적을 구경하는 것은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하나하나 찾을 때의 즐거움에 비견될만 하다.
요건 서민들의 무덤이라 한다.
알 카즈네 뒤편의 도시유적을 구경하고 나면 등산을 해야 한다. 1시간 정도 뙤약볕 밑에서 헉헉거리며 올라가면 고생을 보상해줄만큼 멋진 유적이 짠~하고 나타난다. 일명 수도원(Manastery)......양식은 '알 카즈네'와 유사한데 섬세한 알카즈네에 비해 묵직한 기품이 서려있다.
이 유적 역시 바위산을 깎아 만든 걸작이다. 트랜스포머2에서는 피라밋 바로 옆에 있는 유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이집트 피라밋이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여기 갈 때만해도 관광객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동양인들은 거의 없었다. 198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그 어디에도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을 정도로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같다. 덕분에 일부 유적은 아직도 베두윈족이 거주를 하고 있고(심지어 그 안에서 당나귀나 낙타도 키운다), 일부 산 속에 숨은 유적지는 접근로가 다듬어지지 않아 고생고생 올라가야 했다. 때론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덕분에 관광지화가 덜 된 유적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으니 그건 행운이었다.
수도원 유적에서 만난 외국배낭객 한 명이 자기들 가이드북에 나온대로(?) 유적지 옆 바위산을 타고 올라가며, 나에게 같이 갈 것을 제안했다. 나는 유적을 가까이서 볼 겸 그와 같이 동행키로 했다. 생각보다 가팔랐지만 바위산 정상을 올라가며 보는 유적지는 색다른 맛이 있다. 아마 지금은 이러한 행동 자체가 통제될 뿐더러 세계유산 보호를 위해 자제해야 하겠지만, 그 때는 무슨 탐험가나 된 듯이 휘젓고 다니던 치기어린 시절이었다.
그런데 바위산 정상에 올라가니 유적지 꼭대기로 건너갈 수 있었다. 수도원 유적 꼭대기에서 느끼는 페트라는 또다른 감동이다.
숙소로 돌아온 후 호스텔 주인이 반강제로 틀어주는 인디아나존스3를 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첫 날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다시 새벽 일찍 '알 카즈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페트라를 느끼고 싶어서였다. 아침대용으로 싸간 토마토 2개를 먹으며 알카즈네 앞에 앉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유적을 온전히 내 가슴속에 넣었다. 두 번째 날은 미처 보지 못한 산 속의 작은 유적들을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는데, 더운 곳에서 이틀을 휘젓고 다니다보니 다리에 알까지 배긴다. 그래도 페트라......나중에 다시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꼭 한 번 다시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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