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에는 워낙 페트라의 포스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가 많다. 제라쉬(Jerash)도 그 중의 하나다. 수도 암만 북쪽으로 약 50Km, 아부달리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로 1시간이면 '동양의 폼페이', '리틀 팔미라' 제라쉬에 도착한다. 터미널은 바로 유적지 옆에 있다.
원형극장이 있는 언덕에서 바라본 제라쉬는 로마의 도로구조를 잘 보존하고 있는 듯했다. 로마는 도시를 동-서 대로인 데쿠마누스(Decumanus)와 남-북 대로인 카르도(Cardo)로 구분하고 이들이 만나는 곳에 대규모 교차로를 만들었다. 로마의 고대도시들은 이 기본바탕위에 격자형 도로를 구성하는 정형적인 틀을 가진다. 보이는 곳은 원형 교차로(흔히 포럼이라 불리는)에서 열주랑으로 만들어진 카르도이다.
유적지는 포럼과 열주가 서있는 카르도를 중심으로 욕장, 전차경기장, 신전, 원형극장 등이 모여있다. 내가 갔을 때는 발굴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나중에 다녀온 분들의 블로그를 보니 지금은 발굴도 많이 되고 유적지가 깔끔해진 것같다.
아침인데도 날씨는 무지하게 더웠다. 많지 않은 그늘 중 하나에 앉아 빵으로 아침을 때웠다. 관광객들은 그닥 많지는 않아서 고즈넉히 유적지를 감상할 수 있었다. 전성기 때는 2만명 정도를 수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유적은 그간 지진과 전쟁 등으로 폐허가 되었으며, 지금 보이는 열주 등은 1960년대에 복원된 것이라 한다.
가까이서 걸어보는 열주랑의 느낌은 색다르다. 아마 전체가 복원되어 있었다면 정말 멋진, 장대한 길이었으리라....바닥에는 아직도 마차자국이 선명하고, 예의 그 하수도 시설도 눈에 띈다.
열주랑으로 된 가로는 현대의 가로수길의 원형이 되었다.
남쪽 한 켠에는 극장이 제법 온전하게 남아있다. 아직도 공연이 가능할 정도이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조그만 아르테미스 신전이 나타난다. 천장은 사라졌지만 입구에 우뚝선 2열의 기둥이 장대한 신전이다. 이 곳에서는 현지인들이 기둥과 기둥밑받침 사이에 숟가락을 끼워놓고 관광객들에게 신기한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흔들바위처럼 기둥이 기둥받침 위에서 이리저리 바람따라 흔들리고 있다는 것인데 지진에도 견딜 수 있었던 나름의 구조방식이다.
요르단은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초창기에 방문한 회교국가다. 모로코가 첫번째 방문한 회교국가이긴 했지만, 여기선 주로 야간버스와 기차를 타고 다녀서 숙소에 들어갈 일은 없었다. 그런데 요르단에서 숙박을 한 첫 날(유스호스텔이 꽉 차서, 인근에 역시 도미토리로 된 조그만 여관), 나는 잠을 무지하게 설쳐야 했다. 처음엔 침대 4개 있는 방에 나 홀로 있었는데, 새벽녘이 되자 모두 현지인들로 방이 찼다. 덩치도 산만한 넘들이 한밤중에 차례로 들어오는데, 처음엔 무슬림에 대한 막연한 편견으로 침대에서 가방을 꼭 붙들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경계하며 잠든 척 해야했다. 그러다 새벽녘 선잠이 막 들었는데, 이번엔 방에서 뭔가 꿈지럭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 일어나보니 모두들 침대사이 바닥에 천을 깔아놓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아무런 느낌도 없는 익숙해진 광경이 되었지만, 그 때는 왜 그리 두렵고 낯설었는지......편견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이던가? 이래서 교류가 중요한 것일까? 서로를 이해하려면 직접 가서 부딪히며 느껴보는 배낭여행이 최고라는 생각을 다시끔 들게 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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