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나만의 문화일기

뮤지컬 '오페라의유령'(2012.12.19)

budsmile 2013. 2. 22. 11:45

놀라웠다....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 그리고 끝나고 나서도 머릿속에는 노래가 계속 흥얼거려지며 한동안 앓아야했다......25주년 기념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내한공연을 본 소감이다.

 

정말 훌륭했다. 군더더기없는 극의 구성과 전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무대세트와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력과 가창력까지......왜 오페라의 유령이 4대 뮤지컬 중 하나였는지 알게 되었다.

 

 

파리의 오페라극장이 주 무대인 뮤지컬의 줄거리는 이렇다.

새로운 오페라 리허설 도중 무대장치가 무너지고 모두들 오페라의 유령이 나타났다며 혼란스러워한다. 프리마돈나 칼롯타가 안전을 이유로 극장을 떠나자, 새롭게 발레무용수 중에서 크리스틴이 발탁된다. 발레감독인 마담 지리는 월급과 5번 박스석을 비워둘 것을 요구하는 유령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연은 성공을 거두었는데, 객석에 앉아있던 라울이라는 청년은 어릴 적 친구인 크리스틴을 한 눈에 알아보고 사랑에 빠진다. 분장실에서 이들은 재회를 하는데, 잠시 라울이 자리를 비운 사이 크리스틴은 거울뒤에서 나타난 유령에 이끌려 오페라하우스의 지하 하수구로 내려간다.(크리스틴이 앉은 검은 돛단배를 유령이 노를 저어 자신의 은신처로 안내하는데, 이 때 나오는 음악이 유명한 주제곡이다)

 

지하세계에서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자신의 음악을 가르치겠다고 선언한다. 며칠 후 새로운 오페라에 크리스틴을 여주인공으로 선발하라는 유령의 메모를 극장 매니저들이 거절하자 무대직원이 살해를 당하고 공연은 엉망이 된다. 이를 피해 지붕으로 피신한 라울과 크리스틴은 사랑을 속삭이는데, 유령이 이를 엿듣고 질투에 샹들리에를 무대로 떨어뜨린다.

  

소동이 있은 후 한동안 유령은 나타나지 않았고, 크리스틴과 라울은 비밀 약혼을 한다. 그러나 무도회 중에 유령이 나타나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를 공연하라고 협박하는데, 라울은 이번 기회에 유령을 사로잡을 계획을 꾸민다. 삼엄한 경비속에 공연이 시작되고, 진행도중 크리스틴은 얼굴을 감춘 남자주인공의 망토를 벗긴다. 남자주인공은 이미 살해되었고, 유령이 그를 대신해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크리스틴은 유령의 가면까지 벗기는데, 격노한 유령은 크리스틴을 납치해 지하로 달아난다. 유령의 만행에 분노한 군중들이 지하세계로 쳐들어간다. 라울이 먼저 은신처에 도착했는데, 그는 유령의 포로가 되고만다.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자신과 라울 중에서 선택하라 강요하고, 유령에 연민을 느낀 크리스틴은 키스로 답한다. 이에 유령은 감동을 받아 라울을 풀어주고 하얀 가면만 남긴채 자취를 감춘다.

 

1910년 가스통 루르의 동명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흉칙한 외모로 인해 비뚫어진 방향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괴물을 묘사하고 있다. 오페라를 보면 누구나 유령에 대한 감정이 복잡해질거라 믿는다. 사람을 죽인 그를 선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워할만큼 악하다고 감히 단정지을 수도 없는 묘한 캐릭터다.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흉직한 외모를 꺼리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인의 자세로 살았기를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를 괴물이라 부르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냉대한 사회를 방어했을 뿐이다. 그가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자신의 천재성 대신, 그저 사람들로부터 동정받는 불쌍한 '병신'으로 남아있었어야 했다. 사람들이란 원래 자신보다 약한 것들에 한없이 관대한 경향이 있으니......그 관대함은, 그러나 약한 것이 자신의 권위를 넘볼 경우 가차없는 응징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바꿔말해, 언제라도 짓밟을 수 없는 놈이라면 그가 아무리 가난하고 신체적 결함이 있다하더라도 관대해질 수 없는 게 바로 인간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 용인할 수 있는 '보통'의 수준을 정해놓고 집단을 구성해 그 익명성에 자신을 숨기고 서로에 대한 관대함을 약속한다.(다수결? 민주주의 혹은 사회계약론?) 그 집단에 끼지 못한 바깥에서 끊임없이 괴물이 잉태되고, 베토벤이나 고흐같은 괴물의 천재성이 항상 죽은 뒤에나 빛을 보는 이유일 수 있다.

 

근대를 거치며 소수의 귀족에서 다수의 시민들로 '보통집단'의 영역은 크게 확장되었다. 선천적 '신분'에서 해방된 보통집단의 경계는, 그러나 더 이상의 확대를 경계하며 끊임없이 진입장벽을 높여만 간다. '전공'을 만들어 비전공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폄훼하고,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고유영역이라 가르친다.(이는 애초부터 근대 혁명이 만들어낸 '보통집단'이 신흥자산계층과 그들이 혁명을 위해 '자유'를 미끼로 참여시킨 농노와 천민들이라는 이질적 구성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신흥자산계층은 어떻게든 자신을 그들과 구분지어야만 했다.)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제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보통집단에 소속되려 안간힘을 쓴다. 특정 대학과 특정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사교육과 스펙쌓기에 열을 올리고, 자신의 모든 인생을 저당잡힌 채 야근과 인맥관리를 위한 회식 등에 시간을 쏟아붇는다.(그것은 진입장벽을 높임으로써 신흥자산계층이 얻은 덤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안심하고 행복해졌다고 자위하지만, 그 사이 그들의 가족은 해체되고 그러한 가족에서 자란 메마른 아이들은 다시 '보통'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의미없는 경쟁에 내몰려야 한다. 결국 소외된 사람들은 스스로 괴물이 되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자신이 괴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용납못하는 이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그렇다고 나머지 사람들이 진짜 보통집단에 들어간 것같지도 않다......들여보내줄리도 없지만......)

 

또 한 번 잔인한 짓을 하려던 유령은 크리스틴의 진심어린 키스를 받고는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한다. 누군가의 관심, 누군가의 사랑이 그가 갈구하던 전부였다. 우리 모두 괴물이 되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지 모른다. 하지만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보통집단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버린, 사회가 걸어놓은 최면에 빠진 상황에서 누군가가 그 망상을 깨뜨려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신의 가면을 내려놓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그래서 그는 '인간'이 아닌 '유령'으로 불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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