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상력을 더 많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최근 신문지상에서 '정조독살설은 사실무근'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는 정조가 정치적 정적이었던 당시 노론벽파의 우두머리 '심환지'와 정치현안에 대해 주고받은 서신이 공개되면서 일부에서 제기된 독살설이 사실무근이라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 당시 그 기사를 보면서 품었던 의문은,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어떻게 독살설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것인지였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성급한 논리적 비약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의하면 그러한 비약이 서슴치 않고 자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주류를 아직도 잡고 있는 '노론의 후예들' 때문이다. 그들에게 역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으로 오용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실제 정조가 갑자기 서거한 후 정권을 잡은 정순황후는 정조가 서거한 바로 그 날 심환지를 영의정에 앉히고 남인과 노론시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독살설의 한가운데 있어 삼사가 처벌을 주장했던 정조의 어의 '심인'(그는 역시 친척뻘인 심환지가 추천한 자이다)을 보호하고, 왕권강화의 상징인 친위부대 '장용영'을 혁파해버린다. 약해진 왕권하에서 노론벽파의 일당독재가 이어지고,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세도가문이 등장하면서 결국, 그들은 일제에 나라를 팔아 넘긴다.
실제 한일병합 이후 일제로부터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은 76명의 매국노 가운데 57명이 노론출신이다. 황실인사들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두가 노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식민사학을 만든 일제에 동조하고, 해방 이후 식민사학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실증사학'을 내세운 이병기를 앞세워 우리나라 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면서 300년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책의 요지다.
노론벽파는 송시열을 따르던 성리학계의 한 분파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죽음을 전후로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세상의 선악을 나누는 절대적 도그마로 변질시키며 피의 권력을 유지한다. 주자만이 공자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는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논리로 성리학을 다르게 해석하려는 윤휴나 박세당을 숙청하고 왕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자신들의 그런 업보를 감추기 위해 노론벽파의 후예들은 후기 조선왕조가 노론과 함께 개혁을 시도했지만 당쟁으로 망해갔고(사실은 노론벽파가 일당독재하면서 개혁을 후퇴시켰지만) 이에 대해 의심을 품으면 식민사학의 잔재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쳐대기에 이른다. 그러기에 사도세자가 당쟁(더 정확히는 노론벽파)의 희생양이 되었다던가, 정조가 노론벽파에 의한 독살가능성이 있었다고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은 그들만의 역사에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이 때 사용한 논리가 바로 '한중록'을 앞세운 실증사학이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권력을 잃은 말년에 궁색한 처지에서 지은 책인데, 저자는 이를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홍봉한(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자 사도세자의 장인)과 친정을 옹호하기 위해 쓴 변명서라 해석한다. 따라서 저자는 가해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도세자가 미쳤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나, 주류사학계는 이것밖에 증거가 없으므로 사도세자는 '당연히' 미쳤다고 기정 사실화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학계의 고질적인 편협성은 일반인들이 자세히 알고 나면 정말 이런 개그가 또 없다. 가령 이집트 기자의 피라밋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문헌은 하나도 없다. 내부엔 실내벽화도 없다. 헌데 발굴과정에서 돌 하나에 '쿠푸'라는 고왕국시대 왕의 이름이 쓰여진 것을 발견하자, 곧바로 이 피라밋은 '쿠푸왕의 피라밋'이 되었다. 그걸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믿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오늘 누가 첨성대에 '이승만'이라 낙서하면, 몇 백년 후에 첨성대가 이승만시대에 건립된 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인 융릉, 출처 : www.oneclick.or.kr>
실증사학이란 또 무엇인가? 증거가 없으면 못 믿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단군을 신화로 소개하지 역사로 가르치지 않는다.(중고등학교 교과서가 그렇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허황된 얘기들이 많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한반도로 국한시키고, 5000년 역사를 반토막냈다.(놀랍지 않은가? 식민사학도 한반도의 역사는 남부의 임나일본부와 북부의 한사군 또는 낙랑군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가르친다.) 말이 실증사학이지, 이걸 방해하는 경우에는 역시 날조를 서슴치 않는다. 옛 중국 고전(삼국지 위지동이전, 수경)에 중국과 고조선은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패수)을 경계로 하고 있다고 적혀있어도, 이들은 이를 대동강이나 압록강으로 미리 정해놓고 오히려 그 역사서가 틀렸다고 주장한다. 이율곡(노론의 시조)이 어떤 저서에서도 언급하지 않은 십만양병설을 버젓이 거짓으로 만들어 놓고, 임진왜란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한다. 모든 게 이런 식이다. 여기에 반기를 드는 재야학자는 매장해버리고, 역사학계 일부 원로들의 반론에는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역사는 기본적으로는 팩트의 조합이지만, 상황의 재구성을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가지 해석을 만들어갈 수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특정 정치적 상황에 대해 얼마나 많은 다양한 논조의 해석들을 접하고 있는가? 하물며 이것을 하나의 논리, 하나의 사상으로 해석하기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죽은 역사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에 길들여져 있다. 역사를 독점하는 소수의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특히 심한 편이다. 아무래도 그 소수 세력들의 원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요사이 이런 책들이 나오는 것이 너무나 반갑다. 특히 이덕일 소장의 고대사 책들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초라해 부끄럽기까지 했던 나의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또 그간 배운 역사에서 상식적인 판단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들이 명쾌하게 정리되었다. 단순히 민족감정만 앞세운 소설이 아니라, 구체적인 근거와 논리로 무장된 그의 책들이 언젠가 더 연구되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우리나라의 주류 역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조지 오웰의 말이 여전히 나의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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