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나만의 문화일기

뮤지컬 '광화문연가'(2012.2.8)

budsmile 2012. 2. 14. 12:00

 

광화문연가는 나에게는 여전히 아름다운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로 가슴 한 구석 추억으로 남아있는 고 이영훈 작곡가의 주옥같은 곡들(우리에게는 이문세의 히트곡들로 알려진)로 이루어진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을 배경으로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이야기를 기존의 히트곡들과 매칭시키며 극을 전개해나간다. 거의 모든 노래들이 다 잘 아는 노래여서 흥얼거리거나, 발로 박자를 맞추며 따라 부를 수 있어 좋았다.

 

극은 과거와 현실을 동시에 보여주는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다. 지용이라는 청년이 노 작곡가(한상훈)에게 찾아와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콘서트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조언을 구한다. 그 시나리오는 바로 한상훈의 과거이야기이며, 한상훈의 곡들로 채워져있었고, 한상훈은 그걸 들으며 추억에 잠긴다. 운동권 학생이었던 상훈과 후배 현우......그러나 상훈은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고 현우는 상훈의 도움을 받아 쓴 민중가요를 유행시킨다. 이들간의 관계는 그들의 아지트인 카페에서 최여주를 만나면서부터 엇갈리기 시작한다. 먼저 사랑에 빠진 것은 한상훈이었다. 여주에게 곡을 줘 부르게 하고 그녀를 데뷔시킨다. 현우도 마음 속에 여주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지만 상훈에 대한 존경과 의리로 괴로워한다. 고문을 받고 풀려난 현우에게 이끌린 여주도 곧 자신이 현우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현우는 군대에 강제징집이 되고 그 헤어진 3년동안 여주는 상훈과 함께 하며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제대 후 현우는 여주와 처음 만났을 무렵 함께 만들었던 노래를 완성해 여주에게 전해주고, 여주의 마음을 눈치챈 한상훈은 흐느끼며 그녀를 떠나보낸다. 지용은 한상훈에게 콘서트에 꼭 와주기를 부탁하며 마지막으로 죽은 엄마의 편지를 전한다. 바로 여주의 편지였다. 지용은 현우가 군대 가기전 여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이 죽은 여주의 편지를 상훈이 읽으며 끝나는데, 그것은 상훈에 대한 여주의 미안함과 그리움이었다.

 

추억을 따라 온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관객석에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퇴근을 마치고 단체로 온 듯한 넥타이부대 중장년의 손님들이 더 많아 보였다.

 

극의 시대적 배경이나 신파적 내용은 관객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시간을 느끼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추억이야말로 시간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양념같은 것이 아닐까한다. 단조로운 생활을 하게 되면 흘러가는 시간의 체감속도는 그렇치 않을 때보다 더 빠르게 느껴진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쳇바퀴같은 일상에서는 기억해야 할 것도 별로 없어지기 때문에 그 시간은 설령 열심히 살고 있다 하더라도 지나고보면 나에게 잃어버린 시간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결과가 그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해줄 거라 위로하지만,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다시 옛친구를 만나고, 옛사진을 들춰보는 것이리라......더불어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동시대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있는 추억을 이렇게 만들어 파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요새 유난히 추억을 파는 문화상품들이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써니'같은 영화가 히트를 치고, 옛 가요를 리메이크해 아이돌가수들이 부르기도 한다. 추억을 만들기 어려울 정도로 바삐 돌아가는 한국사회에서 반작용으로 나온 사회현상이라는 소리도 있고, 양극화의 영향으로 문화향유층이 그나마 사정이 나은 40대에 집중되면서 이들을 위한 콘텐츠로 개발됐다는 분석도 있다. 어찌됐건 이런 현상들이 나에게 반갑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나도 이제 영락없는 '아저씨'가 되었구나 깨닫게 된다.

 

뮤지컬에서는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또 극의 내용상 불가피하게 민주화운동이 양념으로 살짝 들어가긴 했지만, 시대적 고민보다는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와 무관해 보이는 당시 민주화 운동권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깊은 밤을 날아서'가 민중가요이고 금지곡이었다는 설정이 약간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 땐 그랬어, 가사가 맘에 안들면 금지곡이 되는 세상이었어'라며 이를 간단히 팩트에서 풍자로 치환해버린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그 노래를 통해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면 그건 노래가 충분히 제 역할을 완수한 것이리라.......

 

대학시절, 나는 '메아리'라는 학내 노래동아리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공연을 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수업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동아리방에서 보낸 것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때 동아리의 모토는 '고뇌하는 마음으로 노래를'이었다. 노래에는 부르는 사람의 혼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학생회관 옆을 지나면서 흘려들었던 노래들이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결국 나를 3층 동아리방으로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그 때 부르고, 만들었던 노래들은 내 마음의 일부가 되어 여전히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하지만 그 노래들이 아무런 고민없이, 그저 테이프 틀듯, 목적도 의미도 불분명한 장소에서 불려지는 것을 보면 가끔 실소가 날 때도 있다. 저들은 저 음악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 아니, 제대로 저 음악을 느끼기나 하고 있는 것인가?

 

노래가 가진 힘......그것은 철학책 백권의, 소설책 천권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노래를 통해 시대적 고민을 공유할 수 있다면, 사랑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면, 사는 데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기에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라마르세에즈'가 불려지고 고 김광석의 노래가 시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권력자들은 그게 두려워 그렇게 무수히 많은 금지곡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의미없는 노래, 고뇌하는 마음이 없는 노래는 그저 춤곡이나 배경음악에 불과할 것이다.

 

광화문연가가 추억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름답고 익숙한 고 이영훈의 노래들 덕분이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잔잔한 가사에서는 사람의 심성을 건드는 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사실 비슷한 주크박스 뮤지컬인 맘마미아와 비교해보자면, 시나리오 구성이나 극의 전개가 단조롭긴 하지만, 고 이영훈의 곡들앞에서는 그 모든 게 의미없게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기에 윤도현의 연기력과 리사의 가창력이 더해지며 극에 몰입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익히 알고 있는 노래지만, 다시 한번 가사 한 구절, 한구절을 곱씹으며 오랫만에 추억에 빠져들 수 있었던 뮤지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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