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나만의 문화일기

뮤지컬 '캣츠'(2011.11.19)

budsmile 2011. 11. 29. 12:38

드디어 브로드웨이 4대 뮤지컬 중 하나를 봤다. 캣츠는 이제까지 봐왔던 뮤지컬 중 단연 독특한 분위기를 가졌다. 우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고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기승전결의 잘 짜여진 스토리라인도 없는데 중간중간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어찌보면 말도 안되게 유치할 정도다. 그런데 왜 이 뮤지컬이 유독 인기가 많은 걸까? 4대 뮤지컬 중 하나라니? 도대체 왜?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본 결론은 이렇다. 이 뮤지컬의 성공 배후엔 '고령화'가 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구? 설명하자면, 이 뮤지컬이 먹혀들 수 있었던 것은 다음의 세 가지 키워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추억'이다. 극은 막이 오르자마자 무대를 고양이들이 떼로 나와 점령한다. 수많은 고양이들이 집단안무를 하는데, 그 중 한 고양이씩 자신을 소개하듯 노래 하나하나를 이어나간다. 가만보면 여기에 나온 고양이들은 모두 젊다. '듀터로노미'라는 지도자와 '그리자벨라' 등 몇몇만 빼고 말이다. 이 고양이들은 '젤리클(jellicle)' 말 그대로 '밝고 경쾌한' 모습의 젊은 날을 만끽하고 사는데, 이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가장 화려했고 가장 멋있었던 날들을 상징한다. 그들을 몰래 지켜보는 그리자벨라는 늙고 추한 모습의 고양이인데, 그들을 보며 저 유명한 노래 '메모리'를 부른다. 말 그대로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메모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회상하는 노래이며, 이는 사람들에게 당신에게도 저런 아름다운 날이 있었어....당신의 인생도 참 아름다웠어라는 추억을 선사한다. 사람들은 절로 그리자벨라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동일화하며 감정이입을 느끼게 된다.

 

캣츠는 엔드루 웨버가 T.S. 엘리엇의 우화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 14편의 시를 보고 영감이 떠올라 작곡한 뮤지컬이다.(실제 원작 제목은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로서 직역하자면 '늙은 주머니쥐의 고양에 관한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늙은 주머니쥐가 엘리엇의 별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엘리엇이 고양이를 바라보는 자신의 상상력 풍부한 시선을 손자들에게 재밌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줄거리가 있지 않다.) 그가 고민했던 것은 시집만큼이나 줄거리가 없었던 것을 뮤지컬에서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엘리엇의 미망인이 그에게 건네준 엘리엇의 미발표 유작이었던 '그리자벨라'에 관한 시를 보며 단숨에 '메모리'를 만들었고, 이 곡은 이 뮤지컬에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메모리는 여러번 응용되며 1막의 끝에서부터 여러번 나오다 클라이막스에서 가장 화려하게 불리어진다. '메모리'는 전체 극을 꿰뚫는 키워드인 셈이다....

 

둘째, '관조'다. 아까 말했지만, 젊고 화려했던 날의 고양이들은 인간의 여러 속성을 반영한다. 바람둥이도 있고, 마법사도 있고, 영화배우도 있고, 심지어 도둑고양이도 있다. 저마다 개성과 끼를 발산하며 한때의 젊음을 마음껏 누린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떠한 '가치'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어떤게 착한 건지, 어떤게 진실한 건지, 어떤게 인생을 잘 사는 건지......고양이들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젤리클'이란 말이 함축하듯, 경쾌하고 밝고 쾌활한 현재를 즐길 뿐이고, 그것이 그냥 인생이다. 여러 고양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냥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을 부분적으로 나타내는 것같기도 하고, 인간사의 희로애락 자체를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다.

 

가치판단의 기준은 인간이 만들기 전까지 원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과 편향된 부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도덕 혹은 종교란 이름으로 무수한 준거를 만들어냈다. 그 준거는 권력이 바뀔 때마다, 기득세력이 바뀔 때마다 시대정신이란 이름으로 진화를 거듭해오면서 현재의 권력과 기득권을 지켜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예를 들자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서의 말씀에 따라 최고의 덕목이었던 '청빈'은 산업화된 19세기 영국에서는 큰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시대정신을 일거에 바꿔버렸다. 귀족을 대신해 새롭게 기득권을 잡은 신흥 산업세력들은 자신들의 부유함이 기독교윤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준거를 얻었고, 자본주의는 개신교와 함께 근대를 열수 있었다.   

 

이렇듯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사회가 요구하는 현재의 준거를 따라하기를 강요받으며 교육받고 감시되며, 이를 어기면 처벌도 감수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인간의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원초적 본성이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캣츠'가 고양이를 등장시킨 우화라는 점은 그러한 상상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설정이 아닐까 싶다.

 

셋째, '부활'이다. 젊은 시절의 화려했던 날들에 푹 빠져있었던 관객들은 다시 마지막에 나타난 '그리자벨라'를 보며 자신의 늙어버린 모습을 현실속에서 확인하게 된다. 불안한 미래...얼마남지 않은 생......모두에게서 환영받지 못하는 늙은이의 모습에서 절망을 느껴야 하는 비애를 이제껏 감추려 노력해왔지만, 뮤지컬은 그들에게 다시 희망을 준다. 날이 새기 전, '듀터러노미'에게 선택받은 단 하나의 고양이가 하늘로 올라가 새 삶을 얻는다는 설정은 마치 기독교의 휴거를 닮았다.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후회없이 살았던 당신, 바로 당신에게 영생의 삶, 새로운 젊음이 내생에 기다리고 있다는 암시를 통해 극은 죽음을 영광으로, 담담한 또 하나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일 것을 요청한다. 극 중 그리자벨라가 결국 모든 고양이들과 화해하고 듀터러노미의 선택을 받아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그래서 제일 화려하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이제 이 뮤지컬을 본 관객들은 장난스런 우화를 보면서도 진지해지고, 스토리도 없지만 감동을 받으며 극장을 떠날 수 있게 된다. 과연 대작이라 부를 만하다. 나도 10년쯤 뒤, 다시 한 번 볼까......그 땐 감동이 지금보다 배가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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