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공연을 보고 난 나의 소감이었다. 기대 이상이었고, 전율을 느끼며 한 편의 멋진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았다. 김광석의 노래라면 꿈뻑 죽는, 그의 광팬인 나로서도 원곡에 가해진 재해석에 전혀 불만이 없다.
줄거리는 미스테리 멜로물이라고나 할까?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행사를 앞두고 행사에서 연주할 예정이었던 대통령의 딸 '하나'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청와대 경호부장인 무영은 실종된 영애와 그의 경호관 '대식'을 찾기 위해 주변을 수색하는데......수색하는 곳마다 20년전 청와대 내에서 발생한 또다른 실종사건의 단서들이 드러나게 된다.
20년전, 무영은 정학이라는 친구와 함께 청와대 경호처에 입사하게 된다. 성적 1, 2위였던 그들은 한중수교를 앞두고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게 청와대 사저에 갇힌 '그녀'('그녀'가 왜 갇혔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라^^)를 경호하라는 비밀지시가 떨어진다. 경호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게 된 두 사람은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그러던 중 그들은 우연히 기자들이 말하는 얘기를 전해듣게 된다. 그것은 그녀의 사망일시가 한중수교 다음날로 미리 적혀서 그녀의 친척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직감적으로 그녀가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상부에 보고해 일을 원만히 처리하자는 무영을 뿌리치며 정학은 그녀와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산속에서 쫓기던 정학은 그녀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죽음을 택한다.
이후 무영은 전방부대로 전출되고, 정학은 간첩의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된다. 다시 청와대로 복귀한 무영은 청와대 도서관 사서와 결혼하여 '수지'란 딸을 두었는데......수지는 영애와 같은 예술고 학생이고 그들은 또한 1, 2등을 다투는 라이벌이자 절친이다. 수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촉망받는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콩쿠르에서 영애가 석연치않은 1등을 하게 되고 수지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자유분방한 영애는 그러한 상황이 자신때문이라며 자책하고 가출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지가 컴컴한 산 속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길을 잃어버린 영애를 무사히 구출해낸다. 영애와 대식은 바로 직전, 길을 잃어버렸던 그곳에서 과거 정학이 자신의 와이셔츠를 찢어 무영에게 남긴 마지막 메세지를 발견하고, 이를 본 무영은 완전히 오해를 풀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 아는대로 '그날들'은 김광석의 노래로만 이루어진 쥬크박스 뮤지컬이다. 김광석의 노래를 24곡이나 들을 수 있다니......처음에는 그렇게 뮤지컬 좌석을 예매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지 않아 후회하고 있는 게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김광석 살아 생전에 그의 대학로 소극장 콘서트를 가보지 못한 거다. 물론 학교 축제 행사장에서, 초청 공연장에서 그를 수없이 봐왔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단독 콘서트에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그렇게 대학 초년 시절을 보내고, 군대 제대하기 정확히 2주전, 그는 나의 곁을 떠나갔다. 이제 다시는 그의 목소리를 소극장에서 들을 수는 없겠지만, 뮤지컬로 부활한 그의 노래들에서 나는 그의 노래가 가진 강력한 힘을 다시 재발견한다. 감정이 풍만한 그의 노래들은 리듬과 박자를 달리해가며 때론 사랑의 달콤한 속삭임으로(무영과 정학, '그녀'가 도서관에서 함께 부르는 '너에게'), 때론 단호한 결심의 비장함으로(임관식에서 부르는 '나무'와 '이등병의 편지' 후렴구의 절묘한 조화, 1막 마지막에 사랑과 친구를 자신의 미래와 함께 잃어버린 정학이 절망하며 부르는 '그날들'), 때론 익살스럽고 장난끼 가득한 가벼움으로(무영과 정학이 함께 부르는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때론 경쾌하게 삶을 노래하는 희망으로(정학이 샤워실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 하나가 연주하는 G선상의 아리아와 오버랩되는 '맑고 향기롭게')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어도 다 만족스러웠다......그냥 김광석의 노래였으니까......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두 부류가 있는 것같다. '노래' 그 자체가 좋은 게 그 중 하나라면, 그 '노래'를 누가 부르냐를 따지며 감상하는 게 또 하나이다. 전자가 노래의 히스토리와 감성적 가치를 중시한다면, 후자는 테크닉과 평론의 영역이다. 어느 것이 맞는지 혹은 옳바른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후자가 훨씬 유식해보이는 건 사실이다. 어느 곡을 어느 필하모닉이, 어느 협연자나 프리마돈나가 맡았냐가 중요한 이들과는 달리, 내 감상법은 전자에 가깝다. 노래가 좋으면 누가 불러도(심지어는 가수가 아니라 노래방 어디선가 술취해 불러도!), 어디서 불러도, 어떻게 편곡을 해도 그냥 좋다......
'스탕달 신드롬'이라 했던가? 나 역시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거나, 달리나 뭉크의 작품을 감상할 때, 피라밋이나 앙코르왓, 마추픽추같은 고대유적이나 르꼬르뷔지에가 설계한 건축물을 거닐때면 술이라도 마신 듯 어김없이 빨라진 심장 박동과 현기증 비슷한 전율을 느끼곤 했다. 헌데, 김광석의 노래도 그러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아련해지고 노래를 부를라치면 목이 메이고 눈까지 촉촉해졌다. 그의 노래가사와 선율에는 그러한 매력이 있다. 그러하니 통기타 하나에 실린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아니면 온갖 치장을 해 뮤지컬에 내놓아도 마력이 있다.......그냥 김광석의 노래이니까......
부디 이 뮤지컬이 회를 거듭하면서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나' 김광석의 노래가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의 모든 영혼들에게 '애닯은 양식'이 되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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