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문명과 이성을 부르짖지만, 속물근성과 무지와 야만을 사치와 허영과 편견으로 가리고 있는 사회를 향한 비꼬기의 통렬함......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무능한 오즈의 왕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하루아침에 동물들을 오즈의 공적으로 규정하고 동물들이 말하는 것을 금지시킨다.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로 인해 왕따를 당하지만, 마술을 부릴 줄 아는 능력이 있어 오즈의 왕에게 스카웃당한다. 물론 권력의 도구로 쓰기 위해서.......하지만 엘파바는 동물들과의 공존을 주장하며 오즈의 왕과 대결한다. 오즈의 왕은 오즈의 안정을 위해 주민들의 동요를 막는게 바로 '선'이라며 글린다를 끌어들인다. 나서기 좋아하고 공주병 환자인 글린다가 싫어할 이유가 없다. 결국 엘파바는 주민들에게 쫓김을 당하다가, 도로시가 뿌린 물에 녹아버리는 쇼맨쉽을 통해 잠적한다. 오즈엔 다시 안정이 찾아오고 주민들은 기뻐한다. 헌데, 알고보니 엘파바의 아버지가 바로 오즈의 왕이었다는 반전을 통해 천륜마저 부정하는 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준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넘나들며 감정의 기복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완벽한 목소리의 옥주현이나 톡톡튀는 글린다를 완벽하게 소화한 김보경의 노래와 연기는 정말 놀라웠다. 오즈의 왕을 연기한 남경주의 농익은 카리스마도 여전했다. 수준급의 출연진들과 화려한 무대는 역시 명성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화려함에 비해 던져주는 메세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내가 본 위키드는 반기득권적이고, 음흉한 반란과 패러디와 신랄한 풍자로 가득찬 상징적 서사시와 같았다.
안정과 복종을 강요하는, 그래서 그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세력은 불순하고 선동세력이라는 이미지를 덮어 씌어 가차없이 탄압해버리고 싶은 권력에 대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만 같은 그들의 권위와 권력도 까고보면 그저 이미지에 불과한 허상이라 폭로하는 이 발칙한 뮤지컬은 한편의 포장된 잔혹한 동화다.
사실 위키드는 원작 오즈의 마법사를 바탕으로 그 후속편같은 이야기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서쪽의 나쁜마녀(엘파바)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녀가 진정 나쁜 본성을 지녔는지, 아니면 그녀를 거부하고 싶은 사람들과 사회(기득권)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에 대한 통찰력이다. 따라서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원작보다 훨씬 진지하며, 사회를 향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성찰이 묻어난다.
원작 오즈의 마법사도 사실 권력의 부조리를 문제삼긴 했다. 하지만 도로시가 자기 집을 찾아가지 못한 건 순전히 자기가 신고있던 구두의 힘을 몰라서 였던 거였고, 사자나 허수아비나 양철인간이 가짜약이나 지푸라기로 만든 뇌나, 비단으로 만든 허접한 심장으로 용기와 이성, 감성을 되찾게 된 것은 결국 모든 문제는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회의 부조리 문제를 순전히 개인적 차원으로 만들어버리는, '아프니까 청춘인거야'라는 류의 허망한 마지막으로 결론지었다.
이에 비해 위키드는 그 문제를 당당히 제기한다. 회유와 설득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엘파바는 결국 권력(오즈의 왕)에 의해 나쁜 마녀, 선동세력으로 낙인찍히고, 그러한 이미지 조작에 우매한 주민들은 결국 능력도, 자비도 없는 껍데기뿐인 오즈의 왕에게 농락당하며 엘파바를 몰아내는 데 일조한다. 물론 기득권 세력의 보호에 안주하고 있는 우매한 대중들은 자신에게 직접 피해가 오기 전까지 그 진실을 마주할 용기나 자신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권력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개인이 있더라도, 이는 개인의 어리석음때문이거나 권력에 대항하는 사악한 세력 때문에 입은 피해로 조작하는 권력의 냉혹함을 볼 수 있다.(허수아비는 엘파바를 도우려던 왕자 '피에로'가, 양철인간은 엘파바의 동생인 괴팍한 성격의 '네사로즈'로부터 벗어나려던 '보크'라는 동급생이 변한 것이고, 겁쟁이 사자는 동물들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말을 못하게 만들어버린 오즈에 대항해 엘파바가 자유를 찾도록 탈출시킨 사자인데 엘파바의 과잉보호로 겁쟁이가 되었다는, 이 모든 것이 모두 엘파바때문이라는 적반하장격 조작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 권력은 철저히 자신을 가리고, 선량하고 착한, 혹은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듯이 행동하는 선전도구를 내세운다.(예쁘고 화려한 그럴듯한 '착한 마녀' 글린다) 모두가 속아 넘어가는 이 거대한 사기극은 결국에 집단적인 광기로 분출되며 특정집단에 린치를 가하도록 유도한다. 이제 권력(오즈의 왕)은 자신의 정적(엘파바)을 대중의 힘으로 손쉽게 제거하면서도, 착한 마녀를 반대하는 것은 곧 나쁜 마녀의 편을 드는 것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감히 권력에 반대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 여기지만, 과연 그게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진다. 괴벨스의 유태인 학살 선동이나 매카시즘도 불과 100여년도 안된, 지성의 시대라 불리던 20세기에 전 독일인과 미국인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자신이 이성적인 인간이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은 정말로 위험한 일인 것같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정말 양심과 상식에 기초한 것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가는 것이 나도 모르게 나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불순한 의도로부터 나 자신을 이성적 인간이 되게끔 지켜주는 길이라 믿고 싶다.......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은 아니다......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을 진실이라 생각한다"
뮤지컬 속 나오는 대사가 가슴에 와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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