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연휴......과감히 회사에 연가를 내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겠다며 짰던 일정이 오전에는 수원화성, 오후에는 정조와 사도세자의 융건릉과 용주사였다. 아침에 배낭을 메고 나가려는데 큰놈과 둘쨋놈이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린다.......이 좋은 가을날, 집에서만 쳐박혀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그래 좋다! 나만의 시간은 무슨 얼어죽을! 난 아이들을 차에 태웠다. 마냥 신나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보니 내 마음도 기분이 좋다......(그래도 셋째까지는 무리다 싶어 데려가질 못했다..미안타...막둥군!)
큰놈이 어딜가냐고 묻는다....'화성!'.....우주선 타러 가는 거냐고 묻는다.....또 웃었다.....ㅎㅎ
화성에 마침 행사가 있어 화성행궁 주차장이 임시 폐쇄됐다고 하길래, 방향을 돌려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으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창룡문으로 들어가니 저 멀리 연무대가 보인다. 연무대 앞에서 화성열차라는 순환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렸다. 버스 승차장에서 산 정상으로 나 있는 가파른 계단을 헉헉 거리며 올라가니 '서장대'가 파란하늘에 웅장한 기세로 솟아있다.
장대는 여기 주둔하던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며,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2개가 있다. 정조도 융릉참배 후 여기서 직접 군사훈련을 지휘했다는 기록도 있다는데, 화성장대라는 편액도 정조의 친필이다.
<서장대의 위용, 여기 올라오느라 힘들었는데 사진찍자하니 표정이 쫌~ㅋㅋ>
노대는 적의 동향을 높은 곳에서 관측하고 지휘소에 정보를 전달해주는 한편, 쇠뇌를 높은 위치에서 쏠 수 있도록 하는 진지역할도 한다. 화성에는 2개가 있는데 서장대 뒤에 있는 서노대와 창룡문 인근의 동북노대가 그것이다. 모양은 2개가 서로 상이한데, 서노대는 팔각형 모양이며 동북노대는 반달모양으로 각이 없는 형태이다.
<서장대 뒤편에 자리한 서노대의 모습>
서장대에서는 화성(수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사이트에 건설된 화성은 여러모로 조선초기 건설된 한양(서울)과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비교된다. 한양이 북악산 아래 남향의 경복궁을 중심으로 그 아래 '정(丁)'자형 가로(종로와 태평로로 이루어짐, 세종로와 율곡로는 일제시대 넓혀진 신작로이다)를 설치해 엄격한 위계를 보이고 있다면, 화성은 장안문과 팔달문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로를 내고 동서가로가 여기에 접속되는 '십(十)'자형 가로를 설치한 다음 행궁을 남북대로의 한편에 치우치게 동향으로 설치했다. 이는 화성이 중상주의(실학)로 대표되는 새로운 신진세력과 시대정신에 맞게 사통팔달 소통되는 도시구조를 가지게 한 것이며, 왕보다는 백성이 먼저인 애민주의를 표방한 것이라 하겠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적어도 화성 성곽 안의 구도심에서는 한옥들이 꽉 차 있었으면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서장대에서 보이는 화성행궁의 모습>
<화성 구도심의 모습, 저 멀리 연무대가 있는 창룡문과 화홍문이 어렴풋이 보인다>
서장대에서 화서문까지 성곽을 따라가다보면, 서노대, 서이치와 서일치(성벽을 돌출시켜 적의 성벽접근을 방하는 시설), 서포루(포대진지)를 거쳐 서북각루에 다다른다.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곳에 누각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건축물이다. 화성에는 서북각루 외에도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동남각루, 서남각루(화양루)가 있다.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라 비교하면서 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북각루는 2층 누각인데, 1층은 온돌로 만들어져 숙직하는 병사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서북각루의 모습>
<화서문쪽에서 서북각루를 바라보다>
드디어 화성의 서문격인 화서문이다. 화서문은 다른 대문과 마찬가지로 옹성을 가지고 있다. 화서문과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건물은 서북공심돈이다. 공심돈은 내부가 비어있는 '돈'이라는 것인데, '돈'은 적의 동태도 살피면서 공격도 할 수 있는, 화성에만 있는 독특한 성채구조물이다. 서북공심돈의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에는 모두 터져 있어 사다리로 오르내렸다고 한다. 화성에는 총 3개의 공심돈이 있었다는데 서북공심돈 외에 창룡문 인근의 동북공심돈만 남아 있고, 남공심돈은 현재 미복원상태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성곽과 접속되는 서북공심돈의 모습>
<화서문에서 장안문 가다 만난 북서포루의 모습, 지붕 모습이 안쪽(맞배)과 바깥쪽(팔작)이 다르다>
드디어 장안문에 도착했다. 마치 서울의 숭례문과 같은 위용이다. 6.25때 불에 탄 누각은 70년대 다시 복원한 것이다. 아이들이 더위에 지쳐하길래 여기서 잠시 쉬며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더니, 다시 힘이 펄펄 나는 모양이다. 역시 아이들이란~
<장안문의 위용>
<장안문의 측면>
장안문을 지나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곽길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동북각루(일명 방화수류정)이고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동북공심돈이다. 마치 일부러 맞춘 것처럼 적당한 스케일과 다양한 형태적 요소를 지닌 건축물들이 성곽으로 연결되면서 변화무쌍한 랜드스케이프를 창출해낸다.
<동북각루(방화수류정)와 동북공심돈>
여기는 화홍문이다. 북측의 장안문과 남측의 팔달문을 잇는 남북대로와 병행하여 수원천이 흘러간다. 이 수원천의 북측 수문이 화홍문이고, 남측수문이 남수문이다. 화홍문은 7개의 아치를 가지고 있는데, 최근 복원된 남수문은 9개의 아치를 가지고 있다. 화홍문 아래로 단차를 만들어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극대화하였는데, 이 모두는 정조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공사를 지휘했던 체제공이 기능에 맞게만 만들면 되지 않냐고 하자, 정조는 무엇보다 아름답게 해야 한다며 체제공을 설득했다고 한다. 역시 한 수 위다~!
<화홍문의 위용, 물소리가 참 시원하다>
화홍문을 지나 창룡문쪽으로 가다보면, 북암문이 나온다. 암문이란 적 몰래 사람이나 군수품이 드나들 수 있도록 설치한 문으로, 화성에는 총 5개의 암문이 있다.(5개중 남암문은 미복원상태다) 기능에 맞도록 지세를 활용해 들어가는 곳은 높고, 나오는 곳은 낮게 만들어져 있다.
<북암문의 모습>
연무대를 향해 가다가 뒤를 돌아 동북각루(방화수류정)를 바라본다. '꽃을 찾고 버들을 쫓는 정자'라는 멋진 이름에 어울리게 성바깥 '용연'과 어울리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같다. CNN이 최근 선정한 한국의 절경 50선에 과연 이름을 올릴만했다.
<방화수류정과 용연의 모습>
이제 연무대와 동북공심돈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연무대(앞쪽에 보이는 지붕)와 동북공심돈(저 멀리 보이는 높은 건축물)>
연무대라 불리는 동장대는 군사훈련을 하던 곳이다.
<동장대(연무대)의 모습>
<연무대에서 바라본 동북공심돈>
<원통형의 동북공심돈의 위용>
<동북공심돈 쪽에서 연무대 쪽을 바라보다>
<동북공심돈의 모습, 일본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았다.>
<동북공심돈 옆 동북노대의 모습>
<창룡문에서 바라본 연무대의 모습>
<창룡문의 위용(바깥쪽 모습)>
<창룡문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지금 보고 있는 화성은 사실 오리지널이 아니다. 6.25 등을 거치며 심하게 훼손된 것을 복원한 복제품이다. 헌데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수 있었을까? 유네스코 심사위원들도 처음엔 당황했으나, 화성성역의궤를 보고, 그 복원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었으며 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성은 겉으로 보기에 조적식 구조를 사용하고, 성곽 곳곳에 루나 대를 설치하는 등 중국의 그것을 많이 모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 반복적인 중국의 그것에 비해, 화성은 같은 공심돈이나 각대라도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지형에 맞는 최적의 공간을 창출해 내면서, 서양은 물론, 인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시설과 풍경을 가지게 됐다. 또한 5.4km에 이르는 성곽을 2년반만에 모두 완공했다 하니, 정약용과 체제공의 치밀한 계획과 동서양의 기술을 접목시킨 '거중기' 개발같은 시대적 창의성을 보여주기 충분한 유산이다. 이제 이 유산을 우리 자손 대대 물려주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치밀한 고증을 통해 복원하고 이를 잘 보전해야 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화성내 구도심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이다. 서장대에서 창룡문까지 산책하듯 약 2시간 정도 걸었던 것같다. 나중에 다시 와서 이번엔 서장대에서 팔달문을 거쳐 창룡문까지 남측구간을 돌아야겠다.....암튼 날씨도 끝내주고, 아이들과 함께 한 산책이라서 그런지 알차고 재미있게 보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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