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기간 단양에 머무면서 첫날 영월에 갔다왔다. 그 중에서도 단종유배지(청령포)와 단종릉(장릉)이 오늘의 목적지다. 단종유배지인 청령포는 남한강상류인 서강이 말굽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울창한 송림과 깍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인해 마치 섬처럼 고립된 곳이다. 바로 이 곳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된 1457년 작은아버지인 세조에 의해 유폐되었다. 그의 나이 불과 17세 때였다.
<청령포 전경, 강너머로 울창한 송림이 보이고, 그 안에 어소가 있다>
<여기는 배를 타야만 빠져나올 수 있는 육지속의 작은 섬이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청령포의 모습>
<청령포의 송림사이로 보이는 단종어소의 모습>
단종어소는 단종 승하 이후 소실된 것을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다시 복원한 것이다. 실제 단종은 사육신의 단종복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이 곳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하였지만, 그 해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면서 두 달만에 영월 동헌 객사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사약을 받은 것도 그 곳이라 한다.)
<어소내 있는 단묘재본부시유지, 영조대왕의 친필로 이 곳이 단종유배지임을 알려주는 비석이다>
<어소 입구>
<어소 내 모습>
<어소의 모습, 이날 연휴라 사람들이 많았다>
<소나무 가지 하나가 담장을 너머 어소를 향해 문안을 드리듯 뻗어있다.>
<두 갈래로 갈라진 관음송, 천연기념물 349호로 단종이 이 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고 한다. 유배당시 모습을 보았으며,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여 관음송이라 불린다. 수명은 600년으로 추정된다>
어소를 뒤로 하고 송림사이로 난 길을 따라 뒷산 절벽(육육봉이라 한다)을 올라서면 서강 너머로 멀리 한양 땅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단종은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그리워했다고 한다.(왕비는 단종 사후에도 중종대까지 60여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망향탑에서 바라본 한양쪽 방향>
<단종이 쌓았다는 망향탑,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절벽가운데 솟아있는 노산대의 모습>
<금표비의 모습, 영조가 이 곳의 일반인 출입을 금지한다는 뜻을 새긴 비석이다>
<다시 관음송 곁을 지나며 바라본 어소>
<청령포를 떠나며>
모든 것이 인과응보이며 자연의 섭리일까? 세종은 천수를 누리며 오랜 재위기간 동안 많은 자식들을 낳았고, 그 중 병약하나 총명해 자신의 뜻을 잘 이어가리라 믿었던 장남 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결국 할아버지(태종)를 닮아 권력욕이 많았던 세조는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즉위하기 무섭게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등 라이벌을 모조리 숙청해버렸다. 단종이 폐위된 이후에도 세조는 사육신 등에 반역의 죄를 뒤집어 씌어 조선의 참신한 인재들을 모조리 잃어버렸고 집현전 마저 폐지하면서 왕의 씽크탱크마저 잃어버렸다. 세조가 태조나 세종에 버금가는 명민함과 통치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들에 비견되는 정책실적이 빈약했던 것은 그러한 인과에 따른 것이리라.....그 뿐이랴....세조가 일으켰던 무리한 피바람은 결국 조선왕실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는데, 한명회니 홍윤성, 후에 유자광, 임사홍 같은 간신들이 창궐하면서 왕의 권위는 약화되었는데, 이는 훗날 연산군같은 폭군을 낳기도 하고 조선의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인 당쟁과 사화로 비화시키는 참극의 씨앗을 잉태시켰다.(무엇보다 왕조 개창 초기, 정의가 변절을 이기지 못했다는 학습효과가 퍼지게 된 것은 조선역사의 뼈아픈 대목일 것이다)
무엇보다 세조 자신이 죄책감때문에 많이 허약해져 피부병(문둥병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으로 고생하다, 결국 신하들의 접견도 거부하며 흉칙한 몰골로 세상을 떴으니 이만한 업보가 또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모든 게 사필귀정이라.....결국 단종의 억울한 죽음은 다시 240년이 지난 후 역사가 복권시켰다.
<단종대왕릉인 장릉, 청령포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다>
일설에 따르면, 사육신의 단종복위가 수포로 돌아가 유배된 후 다시 금성대군의 단종복위 운동이 발각되자 세조는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자결을 권유했다 한다. 그리고 결국 사약을 내려보내는데, 이를 가지고 한양에서 영월로 가던 금부도사들이 매번 그 사약을 도중에 먹고 자결하는 바람에 단종은 신하들의 충심에 마음의 상심이 컷다고 한다. 결국 마지막 금부도사였던 왕방연이 영월 객사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단종이 자결을 한 후였다고 전한다.
이후 단종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고, 세조는 시신을 손대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고 엄포하기 이른다. 하지만 엄홍도라는 사람이 밤에 몰래 시신을 수습하여 지게에 싣고 자신의 선산에 올랐다. 중턱에서 노루가 앉아 있어 눈이 녹은 자리를 발견하고 거기에 묘를 썼다. 하지만 서슬퍼런 시기, 엄홍도는 봉분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자신만 아는 표식을 해놨고, 때가 되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영월에는 엄씨 집성촌이 있다고 한다)
후에 단종이 복권되고 그의 무덤을 찾는 중종의 왕명이 나오고 나서야 엄씨 집안에서는 단종릉의 위치를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단종의 무덤은 그래서 여러 충신들의 도움으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장릉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박충원낙촌비각이 있고, 그 뒤로 왕릉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박충원이란 사람은 중종때 단종대왕의 묘를 다시 발견한 사람이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저 너머 장릉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솔길 밑으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시설들이 산아래 굽어 보인다>
<장릉의 모습, 정말 단촐한 모양새다, 주위의 소나무들이 경배하듯 기울어져 신령스런 기분이 더한다>
<장릉에는 망주석 2개와 다수의 석수가 있다>
<곡장 뒤에서 바라본 장릉의 능침과 경관>
이제 장릉에서 내려와 산 아래 제사공간으로 향했다. 통상 자리가 먼저 정해지고 계획된 이후에 조성되는 왕릉은 제사공간과 왕릉이 일직선에 놓이게 되지만, 이곳은 아까 그런 역사적 사유로 인해 제사공간이 후일 조성되면서 특이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홍살문이 있는 곳이 제사를 지내는 성역공간의 시작을 알린다>
<홍살문 바로 앞에는 장판옥이 있다. 장릉에는 다른 왕릉과는 다르게, 단종의 충신들에 대한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장판옥 바로 맞은편에 있는 배식단, 충신들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홍살문 바로 왼쪽에는 능지기가 기거하던 수복실과 능 주인의 업적을 기린 신도비가 보이고, 저 멀리 직각방향으로 정자각이 보인다>
장릉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제사공간의 독특함에 있다. 통상 홍살문부터 능침 바로 앞 정자각에 이르는 참도는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릉은 장소의 협소함과 사전 계획된 장소가 아니었던 역사적 연유로 인해 직각으로 꺽어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직각으로 꺽어지는 참도의 모습>
<꺽어지는 부분에서 정자각과 산 위 능침을 바라보다>
<정자각의 입면, 참도는 정자각 앞에서 다시 급하게 직각으로 꺽여져 정자각의 우측으로 접근하도록 되어 있다. 참도는 왼쪽이 높고 오른쪽이 낮은데, 높은 쪽이 신의 길(신도), 낮은 쪽이 임금의 길(어도)이다>
<정자각에서 참도를 똑바로 바라보다>
<정자각에서 홍살문쪽을 바라보다>
<정자각 옆에 서서 능침을 바라보다>
<정자각의 위용>
정자각에서 제사를 지낼 때 임금은 동쪽으로 올라가 서쪽으로 내려온다. 참도(신도와 어도로 이루어진)는 동측에서는 2개의 계단으로 연결되는데, 서측에서는 임금이 내려오는 1개의 계단만 설치된다. 당연히 능의 주인은 정자각 뒤편으로 뚫린 문을 통해 능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정자각 아래쪽에는 영천이라는 제사용 우물이 있다>
<정자각에서 다시 바깥으로 나오는 길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 있다>
<정자각과 재실사이에 있는 엄홍도 정려각, 영조의 명으로 엄홍도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단종의 발자취를 따라 영월의 여기저기를 둘러본 이번 여행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세종의 장손으로 관심과 애정을 한 몸에 받았을 단종......그러나 인륜까지 져버린 역사의 잔인함과 냉혹함은 17살 소년이 받아들이기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아프고 서러운 것이었으리......이제 단종은 애닯은 전설이 되고 역사의 교훈으로 남아 탐욕과 시기로 가득찬 인간들이 자신을 조금이나마 반추해볼 수 있는 작은 거울로 남았으면 좋겠다......
원통한 새 한마리가 궁중을 나오니
외로운 몸 그림자마저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매누나
밤은 오는데 잠들 수가 없고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없어라
새벽 산에 울음소리 끊어지고 달이 흰 빛을 잃어가면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만 붉겠구나
하늘은 귀먹어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서러운 이 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아지는가......
(단종의 자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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