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목표는 영주 부석사였다. 10여년 전에 가본 부석사의 감동을 잊지 못했는데, 이번에 단양에 가족들과 여행을 가면서 꼭 다시 들르고 싶었다. 그런데 영동고속도로의 지체가 생각보다 심해 단양에 도착하고 숙소에 짐을 풀어놓으니 벌써 오후 3시 30분......부석사에 도착하면 해가 질 것같았다. 그래서 방향을 튼 것이 바로 구인사......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고, 소재지가 단양이니 금방 갔다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감을 잡은 것은 단양을 벗어나 곧바로 절벽 위 좁은 길로 들어서면서부터다. 길은 산을 하나 넘어 고불고불 이어졌고, 비도 흩뿌리기 시작한다. 단풍으로 온통 불그스레해진 아름다운 경치조차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 즈음, 끝이 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산길에 갑자기 커다란 주차장이 나타나났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셔틀로 갈아타서 다시 5분 가량을 올라가야 한다고 안내를 해준다. 아무런 준비없이 만난 구인사......그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셔틀에서 내려 가파른 오르막길을 조금 걸어올라가자 산속에서 도저히 만날 수 있을 것같지 않은 규모의 5층 건물이 홀연히 나타난다. 저 건물은 차량정비 등 산문바깥의 작업장같은 곳이다.
오르막 끝에는 갑자기 성채 입구같은 건물이 등장한다. 사천왕문인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사천왕이 있다고 한다. 구인사는 일반 절에서 본 것과 같은 휴먼스케일의 아담한 규모를 생각해선 안된다. 방문자를 압도하는 건물의 매스, 주변 산세를 장악하는 듯한 위세는 마치 중국의 어느 한 사원에 와 있는 착각마저 일으킨다.
입구를 지나서도 오르막길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그 길 양쪽으로 지어진 한옥을 흉내낸 콘크리트 건물 더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절집이 위치하기에는 좁은 산세 틈바구니에 이렇게 큰 집들을 마치 거대한 궁궐처럼 지어놓으니 마치 무슨 요새라도 온 듯한 느낌이다. 단차를 이용한 원근감에 건물 처마들이 겹치며 그 사이로 보이는 위쪽의 건물들로 인해 공간이 매우 깊어보이는 게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총무원이라고 한다. 오른쪽 건물은 인광당이라 불리는데, 신도교육을 위한 대강당과 귀빈숙소가 있다고 한다.
이곳은 천태종의 총 본산으로 알려져있다. 이 천태종이 우리가 역사책에서 알고 있는 대각국사 의천이 창시한 천태종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암튼 그 교리를 모범으로 해방이후 초대 선사가 득도한 곳에 1966년 창건된 절이라 한다.
경내를 돌아다니다보면 내가 마치 어느 대학교에 온 듯한 느낌이다. 이 곳은 수행도량의 성격이 짙고, 염불을 외는 기존의 불교 대신 생활불교를 내세우고 있어 승복을 입지 않는 등의 성격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5층 대법당을 끼고 더 높이 올라간다. 여기 어느매쯤 어느 촌부가 지나가는 보살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 절은 끝이 어디입니까?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 거요?" 그러자 그 중 한 보살이 대답하길..."끝은 없습니다...계속 올라가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죠...".....아! 우문현답이라니......
이 곳은 식당인데, 마침 저녁 식사를 준비중인지 고소한 보리밥과 된장국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름하야 향적당! 여러가지 좋은 향기가 합쳐졌다는 뜻인데 식당 이름치곤 참 명작이다. 구인사가 언론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는 때는 아마 김장철일 것이다. 5일 정도 배추 3만포기, 무 6톤 정도로 김장을 담그는 장면은 나도 몇 번 TV에서 본 적이 있는 것같다.
좀 더 높은 곳에 올라와서 보니 장독대가 그득하다.
장독대 옆 건물 꼭대기에는 관음전이 있다.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예불을 드리는 곳이다.
거의 마지막까지 온 것같다. 길은 끊기고 눈앞엔 거대한 건물이 나를 가로 막았다. 이런 산속에 현대식의 고층건물이라니.....계단을 올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엘리베이터까지 있다...ㅎ..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넓은 데크가 나오고 거기에 멀찍이 대조사전이 보인다. 천태종을 창시한 상월원각 대조사를 모신 곳인데, 전각 내부엔 대조사의 존상이 커다란(정말 커다란!!) 황금불로 만들어 안치되어 있다. 3층의 목조건물인데 황금빛을 주로 사용해서 그런지 화려하기 그지없다. 지금까지 봐왔던 절의 규모만큼이나 커다란 황금불을 보고 있으니,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일말의 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깨달음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변하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너무 지나친 위압감은 오히려 힘을 통한 굴복, 화려함으로 감춘 인간의 나약함만을 보는 것같았기 때문이다. 대조사도 토굴에서 득도에 이르렀지 않은가.....누구나 득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은 자들이 그걸 이런 식으로 대리만족하려는 것은 정말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사진발도 안 받는다. 빨랑 DSLR을 익혀서 그걸 가지고 다녀야겠당....! 헌데 이 데크위에서 바라보는 소백산맥의 모습이 장관이다.....다시 단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아찔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에서 정말 곡예운전을 하고 왔다.
구인사...첩첩산중에서 만난,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에 비례해 커다란 충격을 받은 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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