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기간에 여주에 갔다왔다. 처음부터 그곳을 목적지로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초 계획했던 에버랜드에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차를 돌려 간 곳이었다. 사실 그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마침 핑게거리가 생긴 것뿐이다...
신륵사는 특이하게 남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뒤에는 봉미산이 자리잡고 있어 꽤 경사진 좁은 대지에 가람이 배치되어 있는 까닭에 오밀조밀, 그리고 컴팩트한 느낌이 강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대지가 좋다. 편평한 곳은 재미가 없다. 경사가 진 곳은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많이 생기고 그 공간들을 이어주는 건축적 처리를 살펴보는 묘미가 있다. 그래서 굳이 평지인 곳에서도 그런 효과를 노리고 일부러 단을 쌓아 절집을 만드는 곳들이 꽤 있다.
신륵사 앞은 이름하야 '국민관광지'이다. 마침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선 도자기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정말 조그만 마을의 조그만 축제다. 적당히 흥이 오를 정도로 붐비는 사람들과 볼거리가 오히려 정감있고 좋았다.(이젠 사람들이 너무 많은게 싫다. 나이를 먹었나? 에버랜드 주차장에서 30분 이상을 기다려 셔틀을 타고 매표소앞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난 아침에 충분히 피곤했다.....)
축제장을 아이들과 함께 대충 둘러보면서 여주쌀밥도 먹고, 꽃마차도 타고, 풍선과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쥐어주고는 천천히 산책하듯 신륵사로 갔다. 절앞이 이리 시끄러워도 될까 싶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웃고 떠드는 소리가 고기집과 민박집, 술집들이 무질서하게 난립한 여느 절집 입구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정감있다.
산문은 최근에 세운 듯하다. 그런데 산문으로 길이 이어져 있지 않다. 사람들은 산문앞에서 급우회전을 해서 강변을 따라 절앞까지 가도록 강요받는다. 내가 보기에 이 산문은 그저 절의 경계를 보여주는 광고판 같은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그래도 절은 산문을 통과해야 제맛이다. 길은 없지만 그렇게 나는 속세로부터 떨어졌다. 산문 바로 옆에는 최근에 지은 듯한 멋드러진 한옥건물들이 있다. 바로 템플스테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고, 그 옆으로는 포장된 오솔길이 죽 이어진다.
템플스테이 장소 옆에는 덩그러이 무슨 비석들이 서 있다. 아주 오래 되어 보이진 않았지만 '절집'을 나타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이다.(다른 사이트를 검색하다 보니 이 비석들은 절중수비 정도 되는 것같은데, 원래 절 담벼락에 있던 것을 입구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절 입구에 도착......보다시피 경사진 곳의 등고선을 따라 집들이 배치되어 원근감이 좋다. 다만, 산문도 그랬지만 입구가 왠지 휑한 느낌이다. 사천왕이 눈을 부라리는 대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루 밑을 통과하는 것도 아닌 조금은 어정쩡한 상태라고나 할까.....더구나 예전 사진에서 보아온 돌계단은 사라지고 어울리지 않는 하얀 대리석으로 놓여진 램프는 차를 타고 올라가기 위해 놓여진 공사용 가교같은 느낌이었다.
암튼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범종각이다. 불교 의식에 필수적인 목어, 법고, 종, 운판이 보관되어 있다. 절에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언제부터 물고기가 불교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참 다양한 문화권에서 물고기가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교황이 쓰는 모자는 물고기 아가리 모양이고,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익두수('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란 단어의 첫 글자를 집자하면 희랍어로 물고기라는 말이 된다)를 오랜 전통적인 표식으로 여기저기 붙이고 다닌다.(요즘엔 차에 많이들 붙이고 다닌다) 그런가하면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오안네스(엔키 또는 다곤이라고도 불리는)라는 반인반어(半人半魚)의 신을 숭상하였는데, 지혜의 신이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벽화에 그려진 오안네스의 모습은 지금의 교황과 흡사한 복장을 하고 있다!! 인도에서도 물고기는 비슈누신의 첫번째 화신으로 대홍수로부터 인류를 구한 것으로 나온다.(역시 대홍수도 모든 문화권의 공통 아이콘이다!!) 인도로부터 건너온 물고기 신앙은 역시 인도에서 가야에 온 허황후의 무덤에서도 그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이니...... (하긴 김병모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가야'라는 말도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라 하지 않았던가)
범종각 옆으로는 성보박물관(측면이 보이는 건물)인가 있었는데, 현재 극락보전이 수리중으로 그 안의 부처님들이 모두 이 곳에 옮겨져 있었다.
범종각의 반대편 좌측에는 관음전이 있다. 입구에서 보면 건물 측면이 파사드처럼 내세워져있는데, 지형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같다. 우리네 전통 건축물 중에서는 한옥의 측면이 파사드가 되는 사례는 없다.(반대로 일본에는 종종 있다!)
관음전에서 북쪽을 바라본 모습...저 멀리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조사당이 보인다.
관음전에서 한 단을 더 올라와서 남한강변쪽(입구)을 바라보며 찍은 전경....풍선을 들고 있는 두 넘이 첫째와 셋째다....ㅎㅎ...그런데 저 멀리 있는 아파트는 정말 아니다.....풍경을 확 망친 진상이다...
명부전의 모습.....
조사당 앞 마당의 수령 600년도 더 넘은 향나무가 정말 보기 좋다...
조사당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조선 초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사당은 나옹화상과 지공화상, 무학대사 3분의 영정을 모셔놓은 곳이다.
조사당 좌측의 야트막한 동산에는 2개의 부도탑이 있다. 헌데 그 모양이 참 특이하다. 특히 저 몸통이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 부도탑에는 그림인지, 글씨인지 알 듯 모를 듯한 문양이 인상적이었다.
조사당 뒤쪽으로 계단이 나있기에 올라갔다. 역시 여행은 아무것도 모르고 갈 때 더 흥미진진하다. 계단 위 제일 명당자리에는 뜻밖에도 나옹화상의 부도가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사람을 압도하는 뭔가가 있다.
이 비석은 나옹화상의 탑비인데, 목은 이색이 쓴 글이 비문에 적혀 있다. 고려 우왕 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풍선을 들고 있는 넘이 둘째다)
이게 바로 나옹화상의 부도다. 사각형의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석종을 올린 형태인데 마치 인도의 링가를 보는 듯한 모습......
부도 탑 바로 앞에는 석등이 있다. 역시 보물로 지정된 것인데 그 몸체에 새겨진 무늬가 정말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남성적인 부도탑과 대비되는 섬세한 여성적 구조물이다.
석등에 새겨진 무늬...명품 중의 명품이다....
다시 밑으로 내려오니 삼성각이 보인다. 한마디로 불교에 흡수된 민간신앙인데, 이 곳에 절을 짓는 대신 이 산의 산신령에게 양해를 구한 것이다. 제사지낼 때 상주상을 같이 차리는 이치라고나 할까......
삼성각 밑으로는 곧바로 요사채로 이어진다. 그런데 요사채에서 바라보는 삼성각의 모습이 일품이다. 처마가 겹치며 원근감을 이루고, 계단이 깊이를 더해주는 이 절에서 최고로 멋진 포토제닉한 공간이다.....
요사채의 모습......중정을 만드는 작고 아담한 건물들......
이 절의 제일 중심공간 극락보전은 아직 보수중이다. 극락보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곳이다. 이 절이 세종대왕의 영릉을 관리하던 원찰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극락보전 앞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다층석탑이 놓여 있다. 마치 원각사탑을 보는 듯......이국적인 모양의 탑은 현재 8층까지인데, 비례로 볼 때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이다. 그런데 저게 하나의 통돌이란다...
절 바깥쪽 남한강이 잘 보이는 절벽 위에는 전탑(벽돌로 만든 탑)이 세워져 있다. 전탑은 안동지역과 경기 일부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탑인데, 이 신륵사의 전탑은 그 중에서도 유일한 고려시대 탑이라 한다.
전탑 바로 옆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그 자리에 다시 조그만 삼층석탑과 정자가 세워져 있다. 아쉽게 수리중이었지만, 한참을 앉아 노을을 즐겼다. 참 멋진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불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만에 절을 찾으니 마음이 참 푸근해진다. 에버랜드 대신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극락보전과 남한강변의 저 정자가 수리를 마치면 한 번 더 와봐야 겠다. 그때는 넉넉히 시간을 내어 세종대왕 영릉도 함께 둘러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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