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아시아

북인도기행(4) - 델리(Delhi) Part-1

budsmile 2012. 3. 15. 16:00

드뎌 인도의 수도, 델리에 도착했다. 밤에 도착하지 말아야지 했건만, 벌써 저녁 7시다. 오토릭샤를 타고 '파하르간지' 지역으로 향했다. 파하르간지는 배낭족들에게 유명한 델리의 집결지이다. 뉴델리역 앞의 마치 우리네 남대문시장 같은 곳인데, 싼 숙소들이 밀집되어 있고, 주변에 저렴한 식당, 국제전화 부스, 싼 생필품 가게들이 널려있다. 물론 릭샤들도 많아 이곳저곳 이동도 편리하다.

 

릭샤꾼이 물어보길래 'Payal Hotel'로 갈꺼라고 했더니, 아마 이 시간에 다 찼을 거라며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자고 한다. 나는 처음에 무슨 정부운영 여행안내소인줄 알았다. 도미토리 70루피(당시 3,500원) 정도로 내가 점찍어 두었던 호텔이름들을 부르자 센터 직원들은 해당 호텔에 직접 전화를 걸어준다. 그리고 나를 바꿔주는데, 모두 'full'이란다. 챤디가르에서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센터직원은 나에게 싼 호텔을 소개시켜 주겠다면서 200루피짜리 숙소를 알선해준다. 내가 직접 다른 호텔들을 찾겠다고 하자, 가격이 금방 150루피로 떨어진다. 더 이상은 못 깎겠다고 버티길래, 직접 가서 보고는 그런대로 괜찮은 거 같아 머물기로 했다.

 

어제는 너무 어둡고 혼잡스러워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 파하르간지를 구경하다보니, 내가 찾던 숙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들어가 물어보니, 어제 저녁에도 많이 비어있었단다. 헉? 그럼 어제 전화받았던 넘들은 도대체 모야? 난 또 순진하게 인도사람들에게 농락당한 거였어? 내 다시는 릭샤꾼이 안내해주는 곳으로 가지 않을 테다......씩씩거리며 당장 계약을 하고 짐을 옮겼다.

 

한마디로 여기는 시스템이 이렇다. 역이나 터미널 근처에 있는 릭샤꾼들을 삐끼로 고용하고, 릭샤꾼들로 하여금 초행자들을 상대로 친절하게 창구로 안내해주는 척하면서 자기네 여행사나 숙소로 데려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행자들은 정말 여기가 정부의 공식 매표소가 맞는지 아닌지 구분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 절대로 한 군데에서만 흥정하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릭샤를 탈 때에도 마찬가지다. 공급이 많기 때문에 두 꾼들간에 싸움을 붙이면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가격이 다운된다^^(3-4일 지나면 금방 터득 가능!)

 

그래도 그건 이 나라의 시스템이 그런 것일뿐......정부의 부족한 공공인프라를 대신해, 사설 업체들이 틈새 서비스를 메워주고 있는 것 뿐이다. 실제로 나는 여행도중에 일부로 사설업체를 이용한 경우도 많았다. 때론 거창한 이름에 비해 정말 낡디 낡은 버스를 타고 가는 실패도 경험하고, 때론 기대이상의 성공도 했지만, 어차피 여행자에게 이 모든 것은 복불복이니......그것도 그냥 여행의 묘미라 생각하고 한 번 웃으면 끝난다.

 

역에서 델리의 상징, Red Fort(붉은성)을 찾아 나섰다. 시내버스(단돈 1루피다. 호객행위와 수금을 하는 안내원이 2명 탄다)를 타고 금새 도착했다. 한낮이 되었건만, 스모그가 끼여 웅장한 성벽은 여전히 뿌옇게 보인다. 입장료도 없다(지금은 유료가 됐다고 한다). 붉은색 돌로 지어진 알현실을 지나, 온통 대리석으로 다듬어진 모스크나 집무실을 구경한다. 무굴시대 타지마할을 건축한 '샤자한'의 작품이지만, 라호르성보다는 약간 작아 보인다.  

 

<라호르성의 위용>

 

<접견장으로 이어지는 게이트>

 

<오른쪽부터 왕의 처소, 접견실, 함만(목욕탕)이 늘어서있다.>

 

<왼쪽의 저 건물은 샤자한의 아들이 세운 검소한 규모의 모스크>

 

<왕비의 거처 내부 모습, 냉각수를 중앙으로 흘려보내 온도를 조절했다고 한다>

 

성에서 나와 인근의 가장 서민적인 거리라는 '찬드니초크'로 접어들었다. 그냥 시장인데, 극장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많다. 인도답게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찬드니초크의 거리풍경>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인도 최대의 이슬람 모스크인 '자마 마스지드'가 있다. 마침 내가 갔을 때가 기도시간이라 입장이 불가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도시간이 끝나고 1시 45분경이 되어서야 입장이 허용되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모스크 안에서 기도를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한마디로 모스크안의 중정은 그네들에게 광장같은 역할을 한다.

 

<자마 마스지드의 외벽 회랑 모습>

 

<자마 마스지드 입구에서 본 기도하는 사람들>

 

<자마 마스지드의 중정>

 

 

 

한 바퀴 쭉 둘러보고는 미나르(첨탑)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좁은 통로에 나선계단이 있는데 좁고 어두워 내려가는 사람과 올라가는 사람이 뒤섞이고, 맨 꼭대기에는 다섯사람이 서 있기도 협소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바라보는 올드델리의 전경은 훌륭했다. 낮고 허름한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이 여느 수도와는 다른 느낌이다.

 

<미나르에서 바라본 델리의 모습, 예전 아시아나 항공의 인도취항 포스터 배경이기도 했다>

 

신성함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적어도 관념적이 아닌 이상, 인간은 신성함이란 표시를 위해 눈에 보이는 조치를 가져야 했다. 언제부터 신발이나 모자를 벗는다는 것, 호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는 것, 지퍼를 채우는 것이 경건함의 상징이 되었을까? 가만히 보면 신발이나 모자를 쓰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이다. 그런데 신성함은 그 일상으로부터의 탈피를 통해 획득된다. 모스크 앞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무언가 범접하기 곤란한 곳으로 왔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행동 자체는 전혀 신성하지 않다. 일상을 살짝 비트는 것이 그토록 사람들에게 신성의 관념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건 너무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주목할 만하다. 거꾸로 말하자면, 너무나 간단하게 聖과 俗은 구별될 수 있고,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그 경계를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발이나 모자를 벗는 순간, 일상에서는 코웃음치고 말 비논리와 허무맹랑한 이야기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도록 머릿속 관념의 바탕화면도 자연스럽게(무의식적으로) 전환된다. 그걸 이용해 나찌의 괴벨스는 '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짜가 된다'고 주장하며 간단한 상징조작으로 독일국민들을 집단 최면에 빠뜨렸다. '聖'의 이름으로 '진실'을 감추는 힘......그것은 단추를 눌러 컴퓨터 화면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의외로 간단했던 모양이다.(문득 '엘리아데'가 생각나는 걸!)

 

<간디묘소 입구>

 

시장을 빠져나와 간디가 화장되었던 야무니강변의 라지가트로 갔다. 조금만 걸으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외로 멀다. 어깨가 아파오고 다리가 빠질 정도가 되자 드디어 라지가트 표지판이 보인다. 묘소로는 사방에서 접근이 가능한 개방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소박하지만 단정한 묘소는 간디의 평소 성품을 나타낸 것이리라......묘소는 꽃들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되어 있다.

 

<간디묘소>

 

다음에 찾은 국립박물관에는 정말 엄청난 양의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스 등 서양과 중국 등 동양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이색적인 조각작품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여기서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자주 쉬면서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다.

 

<욕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무용의 신, 인드라를 형상화한 조각품>

 

다시 파하르간지로 돌아온 나는 주변 음식점에서 탄도리치킨과 밥, 커리를 시켜놓고 정말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카레를 원래 좋아하는 터라 인도음식은 너무나 입에 잘 맞았다. 배불리 먹고 집에 전화를 한 후 숙소로 들어가니, 내 도미토리 옆 침대에 여장을 푼 가나메라는 일본인 친구가 반갑게 맞아준다. 캘커타에서 시작해 이스탄불까지 여행중인 이 친구는 성격이 꽤나 낙천적이다. 내가 지폐를 수집한다고 하자, 자신이 부탄국경 근처를 여행하며 수집한 부탄지폐를 선뜻 나에게 내주기까지 했다. 우리는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어릴 적 친구처럼 저녁 늦게까지 웃고, 이야기하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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