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랄! 또 당했다.....5시간이면 온다는 자이푸르는 무려 7시간이나 걸렸다. 세미딜럭스라는 버스는 완전 완행이었다. 다 낡아빠진 허름한 버스에선 머리를 기댈 수도 없었고, 담배연기로 목은 컬컬한데, 버스는 지나가는 사람만 보이면 차를 세우고 자리도 없는데 태운다. 차가 어찌나 흔들리는지, 우리네 국도같은 좁은 도로를 추월해가며 곡예운전을 하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비몽사몽 잠을 자다가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날씨는 약간 덥고, 델리에선 안보이던 낙타가 수레를 끌고 지나다닌다. 그리 시끄럽지도, 매연으로 케케하지도 않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예의 달려드는 릭샤꾼들......물리치고, 무조건 5루피에 태워다 주겠다는 사람을 찍으며 나는 미리 점찍어 놓은 호텔 이름을 불러댔다. Jaipur Inn! 꽤 좋은 중급 호텔인데, 고맙게도 배낭객들을 위해 침대 20개가 있는 도미토리 방 하나를 마련해놓았다. 가격도 착한 60루피......가격도 가격이지만, 시설이 무엇보다 맘에 든다. 화장실이나 침대도 깨끗하고 야외테라스까지 있다. 부엌이 없는 것만 빼고는 내가 인도에서 본 최고의 시설이었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버스스탠드로 가서 아그라행 표를 미리 예약하고, 오는 길에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호객꾼이 인사를 건네길래 가격이나 알아볼까 하고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가격은 일반 식당보다 약간 비쌌지만, 맛도 양도 만족스러웠고, 무엇보다 Sir 소리를 들어가며 웨이터 시중을 받으니 황제가 된 느낌이다. 숙소에 돌아와 오랫만에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빨래도 하고나니 정말 개운하다. 침대 20개는 벌써 다 찼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식당에서 홍차와 토스트 2개로 배를 채운 후 릭샤를 타고 시티팰리스(City Palace)에 왔다. 4km가 넘는 거리인데 10루피밖에 안된다. 가는 도중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진다. 너무 일찍 왔는지 문을 열지 않아, 바로 옆에 위치한 잔타르만타르에 먼저 들렀다. 델리에서 봐왔던 것과 그 형태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훨씬 더 완벽한 형태와 섬세한 문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남아있는 구조물 수도 더 많았는데, 점성술이 발달한 인도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자이푸르의 잔타르만타르는 그래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월요일은 무료였는데, 카메라소지료가 30루피나 해 그냥 눈에만 담고 왔다.(후에 사진이 없으니 조금 아쉽긴 하다)
시티팰리스는 입장료 70루피(현재는 300루피라 한다)에 카메라소지료 50루피다. 아무리 관광도시라지만, 델리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입장료다. 시티팰리스는 18세기에 세워진 왕궁으로 현재도 자손들이 살고 있어 일부만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몇 개의 중정을 둘러싸는 형태로 지어진 왕궁은 독특한 입면처리와 섬세한 무늬로 아름답다. 개방된 구역이 그리 많지 않아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티팰리스 옆에는 '하와마할'이 있다. 바람의 궁전으로 불리는 곳인데, 자이푸르의 상징처럼 소개되는 곳이다. 핑크시티답게 붉은 사암의 핑크빛이 도드라진 5층 높이의 궁전은 온통 창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입면을 자랑한다. 말이 궁전이지 건물이 도로에 바로 면하게 된 것은 그 특유의 기능때문이다. 이 궁전은 바로 이슬람의 '하렘'과 같은 곳이다. 후궁들이 함부로 얼굴을 보일 수 없어 창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밖에서 벌어지는 축제나 세상의 시끌벅적함을 즐기도록 한 것이다. 또한 왕이 시티팰리스로 행차하게 되면, 후궁들은 처소에서 모두 나와 이 건물의 창문 하나에 한 명 씩 자리를 잡고 앉아 왕의 간택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래서 입면은 건물모양이지만 실제 안에 들어가서 보면 그냥 벽만 덩그러이 서 있다. 창문까지는 외부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창문의 영향으로 사막기후인 이 곳에 시원한 바람이 만들어진다.(이런걸 베르누이의 법칙이라 하나?) 왜 이곳을 '바람의 궁전'이라 부르는지 알겠다. 하지만 궁전 내부는 보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곳곳이 흉칙하게 무너져내려 있었다.
하와마할을 사진에 담으려고 이리저리 구도를 잡고 있는데(도로에 면해 있어서 사진찍기 참 불편하다) 바로 앞 가게 주인이 나와 말을 걸기에 사진을 부탁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그의 부탁을 받아 그의 가게안으로 들어갔다. 포목상인데, 이것 저것 비싼 물건들을 잔뜩 꺼내놓으며 광고를 멋지게 한다. 그 물건들을 사면 난 오늘 길거리에서 자야 한다니까 Good Joke! 라며 더 이상 붙잡지 않는다.
다운타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려 교외에 있는 암베르성으로 향했다. 인도의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이 곳은 17세기 초 이 곳을 지배한 왕조의 왕궁으로 건설된 곳이다. 성의 입구에 도착하자 꼭 사파리에 온 듯한 느낌이다. 곳곳에 원숭이와 멧돼지가 사람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거나 쓰레기를 뒤진다. 코끼리는 사람들을 태우고 성문까지 올라간다.(더운날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은 고역이었지만, 난 믿는게 체력뿐이므로 패스!)
성은 너무 커서 둘러보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미로처럼 이어진 방들, 섬세한 모자이크 조각과 거울로 장식된 방, 인공호수와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의 모습은 웅장한 영화세트장에라도 온 듯한 느낌이다. 나는 성 안 광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시내에서 점심으로 사가지고 온 바나나를 꺼내 먹으며 바람을 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아뿔싸~! 정말 커다란 원숭이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 넘이 나에게 전력질주하여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눈깜짝 할 사이에 내가 먹던 바나나를 낚아 채더니, 바로 옆에 가서 껍질까지 우걱우걱 씹어먹어대기 시작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나를 보며, 자기가 목에 걸고 온 꽃목걸이도 원숭이들이 덤벼들어 가져가 먹어치웠다며 서양인 할머니가 위로해준다. 정말 원숭이들 무법천지다.
<암베르성의 화려한 모자이크, 출처: blog.travelpod.com>
오후엔 시내로 다시 돌아와 중앙박물관과 백호가 있다는 동물원도 들렀다. 중앙박물관은 역시 월요일 무료였는데, 돈 주고 들어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컬렉션에 대한 설명도 없고, 유물의 보존상태도 엉망이다. 숙소에 들어와 달걀 두개와 뜨거운 물을 주문해 봉지라면을 해먹고 나니 세상이 다 내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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