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차르에서 챤디가르까지는 버스로 5시간, 오후 7시 무렵에 도착했다. 도시는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챤디가르는 바둑판으로 구획된 신도시다. 펀잡이 둘로 쪼개진 이후 인도측 펀잡에서는 새로운 수도를 구상했고, 그 설계를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르꼬르뷔지에에게 맡겼다. 르꼬르뷔지에로서는 그가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도시설계에 대한 개념을 프랑스가 아닌 인도에서 최초로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청사 입면>
나는 버스터미널을 나와 릭샤를 탔다. 그리고 YMCA를 찾아 나섰는데, 장기투숙자만 숙박할 수 있다는 말에 다시 어두운 거리를 걸어나와 근처 다른 호스텔로 갔다. 하지만 여기도 이미 숙박객이 꽉 찼단다. 바둑판같은 도시는 아직 건물들로 채워지지 않은 상태여서 조금은 휑해 보였는데 어둡고 도시가 커서 도저히 걸어다니며 숙소를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노숙이라도 할 요량으로 일단 역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사이클릭샤를 다시 세웠는데, 이 아저씨, 내가 싼 호텔을 찾는다고 하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호텔을 이잡듯이 찾아다닌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 챤디가르 시내를 온통 휘젓고 다녔다. 그런데 이 도시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가는 곳마다 방이 꽉 찼다며 모두 손사래를 친다. 방이 있는 것같긴 한데, 항상 'foreigner?'라고 물어보고선, 그렇다고 하면 방이 없다고 퉁명스레 답한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무려 그 아저씨와 3시간을 길거리에서 헤맨 후에야 중급호텔인 Yatri Niwas란 곳에서 무려 1박에 250루피를 주고 싱글룸을 겨우 차지할 수 있었다.
릭샤뒤에 타고 다니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도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참 진지하다는 것, 그들은 단지 내가 먼 곳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100루피 이상을 써가며 식사를 대접하고 호의를 베풀줄 안다. 이 릭샤꾼 또한 저녁식사도 하지 못한 채 내 숙소를 잡기 위해 여기저기 물어보고 자신의 일처럼 나를 걱정해주었다. 단돈 3루피 깍아주지 않으면 안타겠다고 으름짱을 놓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아저씨께 저녁식사 하시라며 120루피를 건네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르꼬르뷔제의 전매특허같은 '브레이즈 솔레이유'......강한 햇빛을 막는 외피형식이다>
<창의 입면도 굉장히 신경썼음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르꼬르뷔제의 얼굴과 함께 스위스5프랑 지폐에도 나온다>
<마치 몬드리안의 추상회화를 보는 듯한 입면구성>
쓰러지듯 잠을 자고 일어나니 날씨가 너무 좋다. 숙소에서 정부청사까지는 3블럭거리......산책하듯 30분을 걸어 정부청사 검문소에 다다랐다. 신분을 확인하고 짐을 검사받은 뒤 견학을 허락받았다.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정원을 둘러보았는데, 안개가 너무 많이 껴서 바로 옆의 국회의사당도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내려올 때는 계단으로 내려왔다. 언제나 거장의 손길을 느끼며 건물안을 헤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정부청사 옥상정원>
<정부청사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청사에서 나와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군인들 외엔 아무도 없다. 내부가 잠겨 있어 아쉽게 보진 못했지만 그늘에 앉아 사진도 찍고 스케치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국회의사당 입면>
그가 말년에 심취했던 브루탈리즘-재료의 거친 표면을 활용해 입체감을 돋우고 콘크리트를 자유로운 매스로 활용하는 조형방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볼 때마다 그의 제자였던 김수근의 남산자유센터가 연상된다.
<국회의사당의 입면과 매스구성>
<종잇장처럼 휜, 콘크리트의 가소성을 활용한 지붕>
<국회의사당 입구에 그려진 그의 그림, 추상과 구상의 만남>
<국회의사당 측면>
<국회의사당에서 바라본 정부청사>
국회의사당 너머 대법원이 있는데, 거리가 꽤 되는데다가 아예 출입조차 봉쇄해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역광이라 사진도 찍지 못했는데, 다른 곳에서 찾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주변을 거닐다가 르꼬르뷔제의 '열린손 기념비'를 발견하고 주변에 있던 공무원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열린손(open hand)'은 그가 예전부터 자유로움, 축복과 감사 등을 복합적으로 표현하는 고대의 상징으로 그가 차용한 것이다.
<대법원, 출처: http://upload.wikipedia.org>
<열린손 기념비 앞에서>
이제 인도의 진짜 얼굴을 보러 델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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