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원의 전경, BBC에서 세계50개 명소를 선정하면서 6번째로 꼽은 멋진 곳이다>
암리차르(Amritsar)......인도의 북서쪽 국경도시다. 이 도시가 유명한 것은 여기가 시크교의 총본산이자 성지이기 때문이다. 황금사원이 바로 그곳이다.
시크(Sikh)교란 무엇인가? 15세기 나나크(Nanak)라는 성자(구루, Guru)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로 전세계 2천 3백만명의 신자가 있는 세계5대 종교 중 하나이다. 교리는 힌두교의 윤회사상과 이슬람교의 유일신 신앙을 접목시켰다. 이들은 다른 힌두교신자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데, 우선 풍채에서 풍기는 아우라다. 이들은 힌두교도들과 달리 육식을 즐기는 까닭에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하다. 몸의 털을 깎지 않아 수염이 길고, 머리를 감아 올려 터번을 두르고 있다.(다시 말해, 터번이 모든 인도사람들의 상징이 아니란 얘기) 카스트제도를 믿지 않아 '싱'이라는 성을 모두 사용한다.(그래서 현재 인도 총리 '만모한 싱'도 시크교도다)
인도의 시크교도는 대부분 펀잡지방에 살고 있다. 펀잡은 과거 영국독립 이후 2개로 쪼개졌는데, 무슬림이 대부분인 서펀잡은 파키스탄으로(주도가 '라호르'다, 시크교의 창시자 구루 나나크도 바로 라호르 출신이다), 시크교도가 대부분인 동펀잡은 인도가 되었다. 1984년 펀잡 분리독립운동을 추진하던 시크교도들이 이 황금사원을 점령하였지만, 수천명이 희생되는 비극도 일어났다.(당시 진압을 지시했던 인디라 간디 총리는 결국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암살되었다.) 그 비극의 참상은 사원 옆 박물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꼭 80년의 광주를 보는 것만 같았다.
파키스탄에서 국경을 넘어 인도로 넘어오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조그만 봉고에 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싣는 기네스 경연대회도 해야했고, 세관직원들에게 삥도 뜯겨야 했다. 국경은 정말 간단하게 땅에 그어진 선이었고, 여기를 건너 다시 택시와 버스를 번갈아타고 암리차르에 도착했다(자세한 내용은 '이런저런' 코너에 "도보로 국경넘기 Best 5" 참조) 인도로 넘어오자 자연풍경이 확 달라진다. 우거진 나무들과 향기로운 꽃들이 활짝 피어있고, 그 사이를 소들이 지나다닌다. 때로는 야생공작들과 이름모를 거대한 새들도 소리를 지르며 날아다니는데, 내가 평소 상상했던 인도, 딱 그 장면이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나는 자전거릭샤를 탔는데, 이 아저씨가 나에게 저렴한 숙소를 안다며 꼬드긴다. 믿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한번 가보자고 했는데, 게스트하우스가 맞긴 하다.(릭샤꾼들은 이렇게 숙소주인들에게 커미션을 받고 손님을 알선해주는 역할을 한다.) 피곤한 마음에 그냥 머물기로 했는데, 도미토리에 20개 되는 침대는 밤이 되도록 하나도 안 찼다. 나 혼자 썰렁한 방의 침대에 몸을 뉘이고는, 간단히 빵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 이상한 느낌에 잠을 깼는데, 캄캄한 방 유리창 너머로 몇 개의 '눈'들이 깜박인다. 순간 정신이 퍼득 났는데, 생각해보니 이 큰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출입문을 개목걸이(정말 배낭여행의 필수품이다)로 꽁꽁 묶고 나서, 배낭을 안고 침낭 속에 푹 파묻혀 뜬눈으로 새벽을 기다려야 했다.(날씨도 정말 추웠는데,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황소바람도 장난이 아니었다.) 다음부턴 절대 릭샤꾼을 따라 가지 말아야지....아침이 됐는데, 더운 물도 나오지 않아 세수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싸온 곶감으로 요기하며 얼른 숙소를 나섰다.(역시 싼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구시가는 한산했다. 상점들은 문도 열지 않았고, 간혹 몇 마리의 소들과 청소부들만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설치된 수돗가에서는 이 추운 날씨에도 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옆에는 그냥 거적하나를 깔고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로같은 구시가에선 지도도 무용지물이다. 사람들에 물어물어 황금사원에 다다랐다.
드디어 황금사원에 도착했다. 사원에 입구는 별도로 없다. 4면이 회랑으로 둘러쳐져 있고, 회랑 안에는 거대한 인공연못이 있으며, 그 연못 한가운데 사원이 있다. 회랑에는 동서남북 4개 방향의 입구가 개방되어 있는데, 모든 입구에는 신발을 벗고 발을 씻은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개방성이 이 사원의 컨셉이다. 오늘은 해도 비치지 않고 안개만 자욱한 게 더더욱 신비스럽기만 하다. 떼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회랑에 울려퍼지고, 경건하지만 구슬픈 음악소리가 흘러나와 왠지 모르게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연못 한가운데 있는 황금사원으로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나도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줄을 서서 신전으로 들어갔다. 교주의 관, 그리고 그것을 에워싼 기도자들과 악사들......여기서는 나나크가 직접 만들었다는 곡을 계속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음악이 바로 나를 새벽 세시에 깨웠던 소리다. 2층에서는 몇몇 사제들이 교리서(시크교의 경전인 '그란트 사히브')를 읽고 사람들은 그 주변에서 기도를 드리고 간다.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인도인 청년이다. '빈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청년은 한국에서 몇 년동안 일하고 왔었다며, 내 뒷모습을 보고 반가워 말을 걸었단다. 한국말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역시 시크교도인 그는 나를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가이드도 해주고 기념품가게에서 시크교 상징인 목걸이도 선물해준다. 내가 보답차원에서 점심을 사려고 근처 버거킹(여기서 파는 햄버거에는 당연히 고기가 없다)에 데리고 갔었는데, 한사코 자기가 사겠다며 우기는 통에 결국 또 얻어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지냈던 일들을 설명해준다. 전화카드, 헌혈증, 지폐 등 간직하고 있던 한국 물건을 꺼내놓으며 한국에서 받은 좋은 인상에 대해 말해준다.
그도 역시 불법체류자였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동남아시아계 사람들에 보내는 차별과 냉대, 무관심과 선입견 섞인 거리감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그의 한국자랑을 들으며 한편으로 가슴이 뜨끔해져왔다. 나 역시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그들을 따뜻하게 바라보지 못했으니까......하지만 그들도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때론 감동을 받을 정도로 우리보다 더 인정이 넘친다) 한국사람도 처음 본 이방인에게 이렇게 잘 해 주기는 쉽지 않을 것인데, 우리는 단지 경제적 상황만을 가지고 알게 모르게 사람의 급을 매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그 이후로 나는 버릇이 생겼다. 한국에서 아시아계 사람들을 보면 말이라도 걸고,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버릇 말이다!!)
우리는 근처 잘라안왈라 공원을 같이 둘러봤다. 식민지 시절 영국군에 저항했던 곳-우리로 치자면 탑골공원같은 곳이다-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한참을 둘러보고 나는 빈디와 헤어지고 펀잡의 주도, 찬디가르(Chandigarh)로 가기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왼쪽의 청년이 '빈디'다. 아직 미혼인 시크교도는 혹같이 생긴 게 달린 저런 터번을 쓴단다>
구시가는 새벽에 보던 한산한 풍경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인구대국다운 인도의 복잡함을 느끼며,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랐는데 출발한 지 1시간 정도 지날 무렵부터 틀어놓은 비디오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말로만 듣던 발리우드 영화인데,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내용은 대충 알겠다. 하지만 장르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코믹에, 러브스토리에, 첩보액션까지 모든 게 짬뽕인 것까지는 좋다. 한데 심각한 장면에서 갑자기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며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무희들과 함께 집단 군무를 하는 것은 좀 당황스럽다. 한 두 장면 지날 때마다 광고가 두 세개씩 나오고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도 거의 화면의 1/3정도 아래에는 계속 광고가 나온다. 인도....아뭏든 재미있는 나라다.
'[해외배낭여행] > 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인도기행(4) - 델리(Delhi) Part-1 (0) | 2012.03.15 |
---|---|
북인도기행(3) - 챤디가르(Chandigarh) (0) | 2012.02.17 |
북인도기행(1) - 파키스탄 라호르 (0) | 2012.01.26 |
티벳 라사(4)_드레풍사원과 노블링카 (0) | 2010.05.24 |
티벳 라사(3)-간덴사원 (0) | 2010.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