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동유럽

동유럽배낭여행(마지막)-러시아 모스크바

budsmile 2011. 9. 30. 12:00

 

 

드뎌 모스크바다! 기차역에서 거리로 나오자 환한 햇살에 눈부시다. 그리고 스스로 감격했다. 내가 여길 오다니~불과 10년 전만 해도 갈 수 없었던 땅, 그 땅의 한가운데 그것도 기차타고 국경넘어 자유배낭으로 모스크바에 입성하다니~

 

하지만 감격은 잠깐이었다. 나는 일부러 불친절하려고 작정한 듯 만들어진 도시시스템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우선 영어가 하나도 없다. 지하철역도, 거리 표지판도 모두 러시아어뿐이다. 영어통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게다가 경찰은 물론 호텔뽀이들까지 왜 그리 불친절한지......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사람들은 답답한 회색콘크리트 도시와 함께 왠지 옛 공산시절의 어두운 잔재처럼 느껴졌다.

 

<옛 KGB 건물>

 

숙소에서(도착 첫날, 숙소잡느라 지하철을 타고 온 시내를 헤집고 다녔는데, 다행히 리가역 근처 두 번째 방문한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붉은 광장 근방으로 왔다. 먼저 저 멀리 보이는 건 옛 KGB 건물이다.

 

<황금빛 러시아정교회 건물이 인상적인 시내모습>

 

<볼쇼이 극장 외관>

 

근처 볼쇼이 극장을 거쳐 붉은광장으로 가다가 맑스의 동상을 만났다.

 

 

드디어 붉은광장에 다다랐다. 광장의 입구도 화려하다. 그런데 사실 난 붉은 광장을 찾기 위해 정말 고생했다. 부근 지하도는 정말 복잡하게 얽혀있는데다, 출구표시가 모두 러시아어로만 되어 있어서리....할 수 없이 지상으로 나왔다 다시 지하에 들어가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오를 때쯤 정말 마법처럼 내 앞에 짠~하고 나타났다.

 

 

광장은 정말 거대했다. 오른쪽에는 크레믈린(크렘린)궁의 성벽이, 왼쪽에는 굼백화점이, 그리고 그 사이엔 바실리 성당과 그 맞은편의 역사박물관이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말 그대로, 정치-경제-종교-문화의 중심지가 각 일면씩 차지하고 있는 셈이니, 중심 중의 중심이다.

 

모스크바 자체가 그런 도시다. 크렘린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건설된 도시는 마치 파리의 도시구조를 연상케 한다. 예전 크렘린을 이중 삼중으로 에워싸며 보호하던 방벽은 지금 모두 허물어지고 그 자리엔 환상의 도로가 나 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노선도를 보면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붉은광장에 입구처럼 버티고 서있는 역사박물관>

 

붉은 광장의 어감은 마치 사회주의와 잔인한 중세 시대의 폭압정치를 떠오르게 하는데, 사실은 '붉은'이란 단어는 '아름다운'이란 단어와 동의어란다. 다시 말하자면 '아름다운 광장'이란 뜻이다. 하지만 어쨋든 '붉은' 이란 단어가 주는 강렬한 느낌이 좋다. (그리고 실제 광장의 바닥은 붉지 않다!!)

 

 

역사박물관 쪽에서 바실리성당을 바라본 모습......오른쪽이 크레믈린궁, 왼쪽이 굼백화점이다. 색상이 주는 오묘한 대비와 조화, 디자인의 다채로움, 높낮이의 적절한 구성, 투시도적 효과와 각 상징물들이 주는 무게감은 이 광장을 단연 돋보이게 한다. 이게 바로 광장이다. 비어 있지만 결코 비어 있지 않은 느낌이랄까......

 

오전에는 광장쪽으로 가로질러 가는 게 금지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설명하는 푯말하나 없었으니까.(물론 있다해도 영어로 친절하게 설명할 애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서 굼백화점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2층에 프라이드 치킨을 저렴하게 파는 집이 있는데 맛이 참 좋다....백화점 수준은 so so....영국의 헤롯이나 파리의 프렝땅도 그렇지만 뽀다구는 우리나라 수준에 못 미치는 것같다.) 백화점 구경을 한 다음 레닌묘로 향했다.

 

<굼백화점 내부, 거대한 유리천장이 있어 아케이드 느낌이다.)

 

레닌의 묘는 조그만 피라밋 형식의 마우솔레움(mausoleum)이다. 크레믈린 성벽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비슷한 색깔의 돌로 마감을 해놔서 언뜻봐서는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입장료는 무료. 삼엄한 경비 속에 줄을 서서 입장을 하게 되면 거대한 공간의 한 중앙에 레닌의 시신이 마치 살아 있는 듯, 미이라 형태로 안치되어 있다. 그 관을 한바퀴 돌고 나오면 된다.(입장시간은 오전에 잠깐만 열린다.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 볼 수 있다.)

 

<레닌묘>

 

사실 무덤 내부는 촬영 금지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다른 곳에서 인용했다. 불세출의 인민영웅을 영원히 살아있는 소비에트의 신으로 만들려는 계획은 거꾸로 그들이 '사회주의'라 불렀던 자신들의 체제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위에 구축되어 있었던 가를 오히려 반증하는 게 아닐까? 성인의 뼈를 몇개 가지고 있다며 광고하는 성당이나, 부처의 사리를 가지고 신자를 유혹하는 사찰......인간은 마음 속의 깊은 성찰 속에 깨달음을 얻기 보다 눈에 보이는 그 허무맹랑한 물질(대부분은 짜가이겠지만 말이다!)을 더 믿게 된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이념과 종교가 종국에는 세속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영웅과 선지자들, 성인들이 제시한 세상은 결코 올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시지프스의 돌처럼, 인간의 운명과 문명이란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니......   

 

<박제된 레닌의 시신, 출처: www.telegraph.co.uk>

 

오전에 갇혀있던 광장은 점심 이후엔 활짝 열렸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광장을 가로질러 왕래하고, 나도 그들을 따라 저 모스크바의 아이콘 '바실리 성당'으로 간다. 볼세비키는 혁명 후 그리스정교 교회를 수도 없이 파괴했지만, 정작 크렘린의 심장부에 있던 이 성당만은 파괴하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이 성당은 이제 붉은 광장을 완결하는 필수적인 요소이자 러시아의 상징이 되어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들이 그것을 알았건, 모르고 그랬건, 저 성당이 없는 붉은 광장과 모스크바는 상상하기 싫다. 

 

 

 

 

 

 

개성넘치는 양파머리들이 독특한 이 개성있는 성당은 내부로 들어가면 더 놀랍다. 저렇게 다채로운 외관과 달리 내부는 굉장히 엄격한 중앙집중식 공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중앙의 대공간을 중심으로 각각의 양파머리를 인 자그만 공간들이 혹처럼 붙어 있는 구조다. 획일성 속의 다양함, 다양하면서도 왠지 모를 푸근한 느낌의 조화......그게 바로 성 바실리 성당의 매력이다!!

 

 

 

 

이제 크레믈린으로 간다. 높은 성벽과 망루, 그 안에 언뜻 보이는 궁전들의 모습은 정말 별천지처럼 보인다.

 

 

<망루 하나만 봐도 이 작품이 얼마나 세심하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크레믈린의 입구, 트로이츠카야탑......위용이 대단하다.>

 

크레믈린 안에는 궁, 교회, 정원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정교일치 러시아의 심장부였다. 입장권도 엄청 비싸다. 나는 내부의 교회 3군데를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을 50루블(약 12,000원)에 끊고, 가방을 보관서에 맡긴 다음 드디어 크레믈린에 발을 딛었다.

 

이반대제의 종탑은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용도로 16세기에 세워졌는데, 높이 81m로 모스크바의 건물은 이 높이를 넘어서 짓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반대제 종탑>

 

우스펜스키 성당은 러시아 국교 교회로서 러시아 짜르가  대관식을 거행하던 곳이었다.

 

<우스펜스키 성당>

 

15세기에 지어진 성모수태고지 성당(크렘린 대성당) 뒤로 대크렘린 궁전이 ㅗ인다. 약 2세기 동안 황제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최고회의 개최지로 히의 개최중에는 돔 위에 국기가 게양된다고 한다. 일반인 출입금지 지역이다. 이 밖에도 크렘린 안에는 아르항엘리스키 성당, 12사도 성당 등이 있다.

 

<크렘린 성당의 찬란한 황금색 지붕>

 

이반대제의 종루 앞에는 짜르의 종이 있다. 높이 6m, 무게 200톤의 이 거대한 종은 주조과정에서 한 쪽이 떨어져나가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40톤이 넘는 '세계 최대' 황제의 청동대포는 한 번도 사용된 적 없이 장식용으로 남아 있다.

 

 

왼편에 보이는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이다. 레닌과 스탈린 등 역대 소련 서기장들이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크레믈린을 나온 후에는 젊음의 거리 '아르바뜨'에서 동유럽 여행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그리스에서부터 발칸반도를 거쳐 발트3국과 러시아에 이르는 동유럽 배낭여행이 끝났다.(여기서 다시 배를 타고 북유럽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여행기는 일단 여기까지다) 10년 전만해도 갈 수 없었던 금단의 땅......땅은 열렸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이곳을 여행한 한국인을 쉽사리 찾아볼 수 없었던 지라 여행정보 얻기도 힘들었었다. 하지만 그 곳 역시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때묻지 않은 순수함, 고스란히 간직된 중세의 도시들로 뜻하지 않은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서유럽에 비하면 숙소도, 기차도 모든 게 불편했지만, 불편한 만큼 여행의 묘미는 배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유럽......오래된 미래를 보고픈 자들에게 적극 추천하고픈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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