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동유럽

동유럽 배낭여행(18)-러시아 쌍뜨빼쩨르부르끄

budsmile 2011. 8. 24. 12:30

 

 

쌍뜨빼쩨르부르끄-너무 발음이 어렵나....영어로 치자면 세인트피터스버그이고, 옛날 명칭은 레닌그라드......소련 붕괴후 다시 찾은 이름에 들어 있는 피터는 유대어로 배드로, 러시아어로 표트르다. 표트르 대제는 바로 이 도시를 건설한 황제의 이름이기도 하다.

 

원래 이 곳은 안개많은 늪지였다. 1703년 러시아 짜르 표트르 대제가 늪지에 운하를 파고 성당과 궁전, 요새를 만든 후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그는 열렬한 서구주의자였으며, 동방정책 대신 유럽의 일원으로 러시아를 키우고자 했다. 수도이전은 그런 그의 강력한 정책의 상징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도시는 모스크바와 전혀 다른 분위기다. 밝고 아름답고 질서정연하고 무언가 예술적 감각이 느껴진다.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세계적 거장들이 활동하던 곳이기도 하다.

 

아침 5시. 기차안은 승무원이 승객들을 깨우는 소리로 어수선해졌다. 러시아의 밤기차는 지저분하고 서비스도 엉망이고, 창문까지 열리지 않아 더위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잠이 든 후였다. 하지만 내가 이 곳에 왔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나를 흥분케했다.

 

역에서 가까운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고 구시가로 향했다. 먼저 환전을 위해 은행을 찾았는데, 점심시간 동안은 폐점. 1시간 가량 기다리다 들어갔는데 점원 왈, 러시아돈이 없단다....이게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다른 은행을 간신히 찾아가(은행이 잘 보이지 않는다!) 환전을 끝냈다. 그리고 급하게 간 곳이 바로 겨울궁전......

 

겨울궁전에 가려면 먼저 옛 해군성 건물을 지나야 한다. 건물이자 회랑, 그리고 겨울궁전 앞 광장을 에워싸는 벽 역할을 하는 노란색의 이 깔끔한 건물은 겨울궁전으로의 개선문과 같은 느낌이다.

 

 

 

구 해군성 건물을 통과하면 마주치는 것이 바로 겨울궁전 광장이다. 엄청나게 큰 넓이인데, 바로 이 곳이 제정러시아가 무너지게 된 2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광장이다. 즉, 1905년 8시간 노동제와 최저임금제를 요구하던 14만명의 시위대를 향해 전제군주 니콜라이 2세의 발포로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피의 일요일'이 발생한 곳이다.

 

 

겨울궁전......지금은 세계3대 박물관이라 불리는 에르미따쥬 박물관이 되었다. 박물관은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한데, 약 300만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지붕에 올려져 있는 수많은 장식조각과 오더의 황금빛 주두 처리는 보기만 해도 압권이다. 입구는 뒤로 돌아가야 한다.(학생은 무료, 저녁 7시 폐관)

 

 

네바강변과 면하고 있는 이 곳이 바로 입구다. 신혼부부가 웨딩촬영을 하고 있다.(한가지 팁~! 박물관 로비의 화장실은 무료다. 쌍뜨뻬쩨르부르끄는 박물관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계획된 도시라서 도시의 어딜 목표로 하더라도 박물관을 거칠 수밖에 없다. 항상 용변부터 먼저 보는 습관은 돈을 아끼는 지름길...)

 

 

내부는 사진촬영이 되지 않아 다른 곳에서 가져와봤다. 이 곳은 궁전이었던 만큼 예술작품 외에도 실내장식이 멋졌다. 마치 베르사이유궁과 루브르궁의 미술작품을 합쳐놓은 것과 같다고나 할까......

 

 

(에르미따쥬 박물관 내부, 출처 : www. thoughtitthrough.com)

 

예술작품들은 사조순, 작가순으로 잘 배열되어 있어 훨씬 보기 편했지만, 워낙 컬렉션이 방대해 3시간이 훌쩍이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나 야수파가 많았으며, 특별전으로 피카소의 누드데생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에르미따쥬의 소장품 중 하나, 앙리 마티스의 댄스2, 출처 : www.historiasztuki.com.pl)

 

겨울궁전을 나오니 벌써 해가 뉘엇뉘엇 진다. 근처 운치있는 운하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푸짐해보이는 샌드위치집을 하나 발견하고 요기를 한 후 네프스키 대로를 따라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정말 북구의 베네치아라 부를만하다. 윗 사진은 베네치아 마르코 광장에 있는 통곡의 다리와 너무도 흡사해 사진을 찍었다. 운하 사이를 휘집고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운하 저 멀리 보이는 예수부활교회......잘 짜여진 각본처럼 홀연히 등장하는 이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같다.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성당을 연상시키는 이 성당은 바실리보다는 좀 통일성이 떨어지는 것같이 보이지만, 섬세한 벽면처리와 마치 태국의 사원같은 이색적인 지붕디테일은 화려하다.

 

 

 

 

러시아의 건축양식은 확실히 서구의 성당들과는 다른 색다른 멋이 있다. 조금 더 대륙적 기질, 시원스러움, 화려함, 그렇지만 섬세한 감각이 돋보인다.

 

 

 

호스텔의 테라스에서 네바강변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다가 슈퍼에서 사가지고 온 쌀과 스프로 밥을 해먹었는데, 마침 부엌에 있던 일본과 프랑스 배낭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여행이야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다보니 어느새 10시반....하지만 아직도 해가 지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은 시원한 바람을 쐬며 강변을 따라 산책하듯 걸어갔다. 강변에 정박하고 있는 순양함, 오로라호는 10월혁명의 산 증인이다. 1917년 여기서 겨울궁전을 향해 발사된 포탄을 신호로 혁명군들이 임시정부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혁명 이후에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군함 내부에 당시의 사진, 자료, 모형 등이 잘 전시되어 있다.

 

 

 

다음에 간 곳은 카잔성당......로마의 성배드로성당을 본뜬 모습인데, 반원형의 말굽형 회랑의 열주가 우람하다. 러시아정교회 소속인데, 성당 내부에는 나폴레옹과의 전쟁 이후 노획한 전리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다음은 이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성 이삭성당......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돔을 가진 성당인데, 멀리서봐도 그 위용이 자못 대단하다. 황금빛 지붕은 사격표적이 된다는 이유로 2차 세계대전때 소실될 수도 있었으나, 소련군들이 황금빛을 회색으로 덧칠해 살아남았다. 그 앞에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이 바로 표트르 대제이다.

 

 

 

이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네프스키 대로이다.

 

 

네프스키 대로의 끝에 위치한 스몰니 수도원......10월 혁명군 본부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떨친 곳이다. 이 곳에 도착하자마자 소나기를 피해야했다......

 

 

이제 이 곳의 또 하나의 상징,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로 향한다. 네바강에 놓인 토끼섬에 건설된 이 요새는 도시가 개발되면서 최초로 건설된 것이다. 123m의 황금빛 성당 첨탑은 네바강변의 랜드마크다. 요새 내부에는 성당 말고도 여러가지 시설이 많은데 입장권을 끊으면 그 중 4곳의 시설을 둘러볼 수 있다. 표트르 대제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

 

 

요새로 들어갈 때는 공항검색대마냥 검색이 철저히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검색대를 통과하자 부저가 울린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이 가방을 열고 소지품을 까발려야 했다. 카메라, 책을 시작으로 미처 빨지 못한 속옷과 양말, 휴대용칼, 그리고 마지막에 수저와 포크가 나왔다.......직원은 나더러 혹시 테러리스트 아니냐며 포크를 들고 찌르는 시늉을 한다. 주변사람들과 한바탕 웃었는데, 그래도 부저는 계속 울린다.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해 그냥 입장이 허용되었다.

 

(구시가에서 요새로 가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로스트랄섬의 등대, 아쉽게 수리중이었다.)

 

 

(네바강변에서 바라본 요새의 모습)

 

(네바강변에서 바라본 에르미따쥬 박물관)

 

더운 오후는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여름정원에서 보냈다. 많은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앉아 있었다. 곳곳에 멋진 조각상이 운치있는 곳이었다.  

 

 

숙소는 핀란드역 근방에 있었는데, 그 역앞에는 이곳의 예전이름이자 이곳에서 자신의 혁명을 완성한 레닌의 동상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으로도 익숙한 그의 연설하는 특유의 자세인데, 그는 다시 옛이름을 회복한 이 도시의 지난한 역사의 부침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러시아의 역 이름은 희한하다. 우리같으면 그 역이 있는 곳의 지명을 보통 붙이지만, 러시아는 그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의 최종 목적지를 이름에 붙인다. 윗 사진은 핀란드로 가는 곳이라 핀란드역이다. 따라서 모스크바엔 정작 모스크바역이 없고 쌍뜨뼤쩨르부르끄에서 찾을 수 있다.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모스크바와 비교해 사람들도 친절하고 밝고 상쾌한 날씨, 아름다운 도시경관과 세련된 차림들, 음식도 맛있고 인심도 푸짐하다. 나는 통상 한 번 가본 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일이 드물지만, 이 곳은 예외로 해야할 것같다. 그만큼 러시아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확 업그레이드 시켜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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