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거기에 살고 있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적지않게 당황스러운 일도 일어나지만, 그건 고의성없이 서로를 이해못해 일어나는 재미있는 해프닝이다.
1. 파라과이 환전소에 갔을 때다. 환전소에 들어가면 양 옆에 도열한 총을 든 시커먼 남자들을 지나 창구에 가야 한다. 그 분위기가 어찌나 엄숙하고 위압적인지 나는 잔뜩 긴장하며 창구앞에 섰다. 그리고 환율과 궁금한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이윽고 환전을 하기 위해 복대지갑에 손을 대는 순간, 바로 그 때였다. 8명 가량의 그 남자들이 모두 동시에 장전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총도 그냥 M16같은 소총이 아닌 커다란 공용화기다. '철커덩'하는 소리가 한꺼번에 울리자,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들고 말았다. 헐~이내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헛웃음이 나왔는데,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즈막히 '워워~~' 소리를 내며 지갑을 가르쳤다. 그리고 조심히 돈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준 뒤 환전을 마칠 수 있었다. 하마터면 환전하다 총 맞을 뻔 했는데, 그만큼 이 나라엔 강도가 많다는 얘기겠지?
2. 파리 북역에서다. 야간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락커에 짐을 먼저 보관했다. 북역의 락커룸은 굉장히 컸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혹시나 하며 락커의 동전반환버튼을 여기저기 눌러봤다. (왜 그런일 있지 않은가? 누군가 짐을 찾고 반환된 동전을 찾지 않았거나, 공중전화에서 미친 기계가 괜히 동전을 토해내는 그런 행운말이다!!) 그러다가 역무원에게 딱 들켰다. '완죤 X됐다'하고 있는데, 그 역무원, 나에게 다가온다. 머릿속으론 '어떻게 둘러대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역무원 왈, "무슨 문제있어요?"
'무슨 문제있냐구? 아! 정말 착한 사람이네'하며 나는 말도 못하고 있는데 이 분, 도와준답시고 내가 방금 눌러대던 반환버튼을 대신 열심히 눌러준다.(내 동전을 이놈이 먹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10프랑이나 되는 동전이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커진 눈으로 동전을 감사히 받아들고 'merci~'를 연발했다.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역무원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파리북역 내부모습, 출처 : http://www.group-trotter.net)
3. 그리스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항공기 안에서다. 비행기가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나는 저녁도 먹지 못했다. 이륙하자 마자 배고픔과 피곤함에 대번 곯아 떨어졌다. 한참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풍기는 맛있는 냄새에 잠을 퍼뜩 깼다. 기내식 제공시간이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스튜어디스는 잠을 자고 있는 나를 지나친 게 분명했다. '아니 그렇다면 안내문이라도 붙여놓던지, 기내식을 그냥 놓고 가야지 이런 법이 어디있어?' 혼자 분개하며 큰 소리로 스튜어디스를 불렀다.(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그 조그만 비행기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인상을 잔뜩 구긴 채, 협박하듯 '밥 빨리 줘'를 연신 내뱉었다. 그런데 이 스튜어디스 알았다며 그냥 간다. 하지만 옆 사람이 밥을 다 먹는 동안 여전히 밥은 오지 않는다. 그 스튜어디스는 돌아다니며 다른 승객들에게 음료수도 주고 말도 건네고, 다 먹은 밥도 수거해간다. '아니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거야?' 그를 다시 불렀다. '내가 밥주라는 거 잊어버린거야? 응? 도대체 언제 주는 건데?'하고 따지듯이 물었지만 그는 다시 알았다며 홱 돌아서버린다. 완죤 열받았다. 그리고 씩씩 거리고 있는데......
그 순간, 승무원들이 기내식 카트를 밀고 나왔다. 그리고 기내식을 다시 나눠주는 게 아니겠는가? 그제서야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 틈새로 나처럼 밥을 먹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유대인들은 종교신념에 따라 별도의 기내식을 신청해 먹는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왜 밥안주느냐고 행패를 부렸다니......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픈 맘이었다. 이스라엘이 참 독특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 건 이 때부터였다.
이스라엘에 도착해서도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트랩에서 내리는 사람을 누군가 찬찬히 보더니 나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접근한다. 여기는 왜 왔냐? 누구랑 왔냐? 별 시시콜콜한 것을 캐묻는다.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니, 그 사람 나보고 자기 따라오랜다. 그러더니 밀실로 데려갔다. 나보고 소지품 하나도 남김없이 다 까발리고, 속옷만 입으랜다. 그제서야 내가 잠재적 테러혐의자로 강도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혼도 안한 동양인 남자가, 그것도 혼자서 자그만 배낭하나 달랑메고 텔아비브 공항에 내렸으니......나는 꼼짝없이 그 사람 앞에서 빤쓰만 입고 신체검사를 당해야 했다. 1시간여 동안 추궁을 당한 끝에 혐의없음으로 결론났는지 '훈방'조치 한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그 큰 공항에 직원들말고는 나밖에 없다. 그래도 친절한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이 가까운 유스호스텔을 예약해주고 교통편을 알려준다. 참 이스라엘 입국하기 힘들었다..
(텔아비브시내모습, 출처: http://things.co.il)
4. 델리의 시내버스 안에서다. 인도는 더워서 아침일찍 서둘러 움직였다. 올드델리에서 '쿠타브 미나르'로 가기 위해 도로로 나왔다. 미리 호스텔 주인에게서 알아낸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그런데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세계2위의 인구대국이란 말이 실감났다.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타긴 탔는데, 완전히 샌드위치다. 출근길 시내버스에 완벽한 러시아워......아니 교통비도 싼 인도에서 이게 무슨 생고생이란 말인가?(그렇지만 걷거나 대중교통만을 이용하겠다는 나의 여행원칙을 깨뜨릴 순 없었다!) 버스 안은 더위와 그네들의 체취로 가득한데,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빤히 쳐다보는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다른데로 시선을 돌리진 않는다. 처음엔 부담스럽지만, 나중에 익숙해지면 변태같이 즐기게 된다..ㅎㅎ)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는 무거운 배낭을 움켜쥐고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쪽에 앉아계시던, 수염을 허옇게 기른 할아버지 한 분이 갑자기 일어난다. 그리고는 나에게 앉으랜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어떻게 할아버지한테 자리를 양보받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분의 고집과 완력에 못이겨 거의 반강제로 자리에 앉혀졌다. 목적지 가는 내내 얼마나 가시방석이던지......하지만 나중에 그네들의 낙천적인 성격과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한 나는 그제야 이게 단순히 여행자에 대한 호의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냥 그 순간 가장 힘이들 것같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야 한다!' 어떤가? 그저 나이들었으니까 내가 당연히 의자에 앉아야 한다며 삼강오륜과 동방예의지국을 들먹이는 '강제헌납 예절'보다는 백배나 아름다워 보이는데? 나만 그런가~
(인도시내버스안의 모습, 출처: http://tuxedochicken.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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