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출처 : www.youthhostelministry.org)
여기저기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세계 각국에서 온 다른 나라의 배낭족들과 흔치 않게 마주친다. 야간열차 안에서, 유스호스텔에서 이름도 모르지만 때론 같이 하룻밤을 보내게 되기도 하고(?......이거 그냥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 분 없겠죠? '도미토리'를 얘기하는 거랍니다......) 일정이 같으면 동행도 하게 된다. 이건 배낭여행만의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다양한 넘들과 만날 수 있다는 말인가......그 중엔 아쉬어서 아직도 편지를 주고 받는 넘들도 있고, 연락은 끊겼지만 지금도 추억과 함께 기억나는 넘들도 있으니......지구별 어디에선가 다들 잘 살고 있겠지.....하~
그 많고 많은 배낭족들 중에 내가 만난 것은 당연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차츰 여행의 횟수가 늘다보니 나라별 배낭족들이 유형화가 된다. 일반화하고 싶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 경험에 따른 내 나름의 생각이니 심각하게 읽지 마시길......그 어떤 나라건 폄하하거나 희화화할 맘 전혀 없다.......좌뇌형의 한계려니......ㅋ
밖에 나가면 제일 많이 만나게 되는 배낭족들은 어디에서 온 넘들일까? 서유럽은 워낙 다양한 곳에서 몰리다 보니 분석하기 어렵다. 하지만 거기만 벗어나면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동양인들 중에는 일본인들이 압도적이다. 그 다음엔 한국인, 나머지는 대만과 홍콩, 그리고 이스라엘인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서양인들중에는 단연 네덜란드인들이 많다. 그 다음엔 미국인, 나머지는 프랑스나 독일인, 이탈리아인 등이 차지한다.
일본은 물가상승, 집값상승 등으로 근로의욕을 상실해버린 젊은애들이 프리터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몇 개월 반짝 알바를 통해 번 돈으로 배낭여행을 하는 게 유행이 되어버렸다. 물론 모험심강한 애들도 많아 몇 년째 오지만 찾아다니는 넘, 자전거로 세계일주하는 넘 등 다양한 여행패턴을 가지고 있다. 생김새나 생활패턴, 사고방식 등이 우리와 잘 맞아 의외로 가장 친하게 지낼 수 있다. 어렸을 때 본 만화영화(미래소년 코난이나 마징가Z 얘기를 해보라...난 주제곡도 일본거 개사한 것인지 이 때 알았다.), 축구, 연예인, 음식 등 서로의 공통관심사도 많아 말을 트기 시작하면 금방 친구가 된다. 때론 과거사를 들먹이며 심각한 토론을 하기도 하지만, 논쟁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의외로 순박하고 정이 많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에서 한 친구와 2주 넘게 같이 다닌 적이 있었는데, 당시 발을 다친 나를 위해 내 배낭을 챙겨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인도 델리의 배낭족숙소에서 만난 친구는 내가 지폐수집을 한다는 말을 듣고, 자기가 모은 부탄지폐를 선뜻 주기도 했다. 암튼 설마 이런 곳에도 배낭족이 있을까 하고 찾아간 동네에도 꼭 한 두 명씩은 있는 게 일본인이다......!
네덜란드는 나에겐 정말 불가사의한 나라다. 너무나 개방적인데다가(마약, 매춘, 동성애결혼이 최초로 합법화되었고, 불교신자도 많고 인종차별도 거의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여행중'이다. 인도에서 우연히 네덜란드인 2명과 장거리 택시를 동승한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 우스개소리로 물어본 적도 있었다. '다들 이렇게 여행중이면, 도대체 너희 나라는 누가 지키냐고?' 그는 마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웃었지만 난 아직도 궁금하다. 네덜란드인들은 다른 문화를 그저 바라보는 관광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참여하고 싶어한다. 심지어는 인도 바라나시에서 푸자(Puja) 의식에 직접 참여하는 넘도 본적이 있다. 원래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때문인지, 아니면 여행을 많이 한 덕분인지 암튼 네덜란드 사람들은 꾸밈이 없고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존중해주는 호의가 느껴진다. 작지만, 대륙적 기질이 느껴지는 강소국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나라다.
대만과 홍콩인......이네들은 배낭여행을 많이 하긴 하지만 좀처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먼저 말을 걸기 전에는, 아니면 특정한 상황이 되기 전에는 친해지기 어렵다. 워낙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데다가 수줍음 또한 많이 탄다. 또한 고급스러움(?)을 지향한다. 프랑스에서 3시간 이상 연착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기차에서 내리자 이미 한밤이었다. 역 주변에는 기관총을 든 군인들이 삼엄하고(그 때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직전이었다.) 처음 온 나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초짜 배낭족이었던 나는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다. 그 때 대합실에서 만난 홍콩배낭족과 함께 유스호스텔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말에 무심코 따라 나섰다가 큰 낭패를 봤다. 배낭족으로서는 선뜻 가기 힘든 식당을 찾아가는데 쩝~암튼 유럽에서 가본 제일 고급식당이었다. 그 때부터 홍콩 배낭족들에 대한 내 맘 속 이미지가 고착화된 것같다......
(참고로 중국본토인 배낭족은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티벳의 배낭족 숙소에서 만난 중국배낭족들의 무례함에는 아직도 치가 떨린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새벽까지 떠들고 도박하고 술마시는-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그들이 중국인들의 아주 극히 예외적인 일부이기를......!)
이스라엘인(유대인).......천성은 유쾌하고 발랄한데,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는 천진난만함을 지녔다고나 해야 할까? 얘네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숙소에선 저녁에 꼭 그들끼리 만나 맥주한잔이라도 같이 마신다. 중국 사천성 성도에서 같은 도미토리에 묵었던 이스라엘인 배낭족이 자기들끼리의 회합에 나를 초청해 칭따오를 사 준 적도 있었는데, 얘네들도 끼리끼리 술 많이 마시더군...ㅎㅎ 우리와 같이 집단적인 성향이 있는 듯^^ 요르단 페트라의 배낭족 숙소 지붕위에서 매트리스만 깔고 자는데(그곳엔 그런 형태의 숙소가 많다.) 갑자기 한 무리의 이스라엘 배낭족들이 들이 닥쳤다. 다들 얼큰하게 취해있었는데,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흔들어 깨워가지고는 자기들이 사온 수박을 먹으랜다. 아마 자기네들끼리 시끄럽게 먹기 미안했나 생각됐지만 이건 아니쥐~ㅋㅋ 그래도 애교로 봐줄만한 넘들이다.
미국인......나라가 큰만큼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마치 딴 차원의 세상을 사는 넘들같다. 기본적으로 얘네들은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유산에 관심이 없는 듯......밤새 춤추고 술마시며 나이트문화를 즐기다 오는 넘들이 많은데, 아침에 깨어있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또한 은근히 차별을 드러내기도 한다. 덴마크 유스호스텔에서 약 30명 정도가 거실에 모여 TV에서 영화 '스피드'를 감상하고 있었다. 문제는 맨 마지막 장면, 키아누리브스와 산드라블록이 탄 열차가 테러범의 장난질때문에 속도를 못 이겨 지상밖으로 튕겨져 나와 멈췄는데, 둘이 껴안고 입을 맞춘다. 이 때 맨 처음 등장한 사람이 카메라를 든 동양인 관광객......그는 그 주인공 두 사람의 사진을 얼른 찍어댄다. 이 장면이 나오자 미국애들...'사진 좋아하는 건 재패니스 어쩌구' 하면서 큰소리로 흉을 보기 시작한다. 마침 그 모여있는 30여명 중에 동양인은 나 혼자......나머지 모든 애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미국인들의 결례에 오히려 다른 서양넘들이 당황한 모습들이었다.....난 손사래를 치며 '아임 코리언, 아임 낫 재패니스'하며 웃고 말았는데, 조금 씁쓸하더군....ㅎㅎㅎ
프랑스인들은 정말 개인주의적이다. 연인끼리 여행하는 배낭족들이 많고 숙소도 자기들끼리만 쓰는 통에 친해지기 어렵다. 그런데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요리......모스크바 유스호스텔 부엌에서 오랫만에 짜파게티를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냄새를 맡더니 프랑스남녀 둘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건다. 냄새가 좋다며 이게 어느 나라 음식이냐고 묻는다. 이건 중국음식인데, 중국엔 없다....오로지 한국에 있는 중국식당에 가야만 먹을 수 있다고 말하자 조금 헷갈려하는듯......암튼 이거 먹으러 한국에 꼭 갈거란다. 먹어보라고 권하니 한사코 사양한다. 아일랜드 더블린 유스호스텔에서는 이거 끓여먹고 나자 숙소주인이 식당 창문을 모두 활짝 활짝 열어제끼는 통에 조금 당황했었는데......짜식들...맛있는 걸 알아보다니, 역시 미식가 프랑스인들답군!!!
음식얘기가 나오면 이탈리아인들도 빠질 수 없다. 멕시코시티 유스호스텔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일본배낭족과 이태리 배낭족 두 넘이 기웃거리기에 조금 나눠줬다. 아니, 난 한입도 못 먹고 걔네들이 다 먹어치웠다. 맵다면서도 국물까지 깨끗이 비우기에 '그래 내 배가 문제랴, 라면 한 그릇으로 국위선양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굶어주마' 생각하며 마치 자식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아비의 심정으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다 먹고 나니 그제서야 내것을 모두 뺏어먹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 - 얄미운 것들! -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내일 저녁엔 자기들이 대접을 하겠단다. 맛있는 스파게티로....ㅎㅎㅎ......그래서 기다렸다. 정통 이태리 스파게티를,......정말로 다음날 오후5시부터 부엌에서 난리가 났다. 지지고 볶는 냄새에 뱃속에서 들려오는 아우성소리를 가까스로 참아내고 - 스파게티 만드는 데 왜이리 오래 걸리는거야! - 드뎌 두 시간만에 나를 부르는 천국의 소리가 들려왔다. 헐~ 정말 식탁에 스파게티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도대체 얼마나 요리한 거야? 우리는 숙소에 머무는 모든 배낭족들을 다 불러 모았다. 그 마음에 감동하며 한 입 넣었는데.....흠....크림스파게티의 느끼한 크림맛이 온몸을 전율케했다. 가만보니 나만 전율한게 아닌것같다. 다들 두 세번 떠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쩌라구....이 많은 스파게티를......울고 싶었다. 그래도 그 호의에 맛있다는 표정을 계속 지었지만,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그 느끼함을 꾹꾹 눌러가며 내 평생 한 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스파게티는 처음 먹어봤다.
암튼 어딜가나, 어느 나라에서 왔건 무슨 언어를 쓰건, 피부색이 어떻든 누군가를 배낭족 대 배낭족으로 만날 수 있다면 그건 행운이다. 그저 지구상에서 떠돌아다닌다는 이유 하나로 생기는 끈끈한 유대감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인생을 느끼고, 다른 배낭족을 통해 예전에 만났던 배낭족의 근황을 전해듣기라도 할라치면 마치 내 가족과 연락된 듯 마냥 반갑다. 아니, 꼭 만났던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다. 인도 카주라호의 그 작은 시골마을 식당 방명록에서 한비야씨의 친필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물론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다!)
여행하면서 만난 친구들은, 또 여행하면서 쉽게 잊혀진다지만 어차피 그게 사람사는 삶 아니겠나......내 평생 그 친구들을 다시 못볼 수도 있지만 내가 그들로부터 얻은 것은 너무나 많다. 낯선 곳에 대한 공포,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 다른 문화에 대한 색안경같은 것은 거의 없어졌다. 대신,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는 평범한 사실 속에서 '아름다운' 세상과 그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배낭족이라면 주문처럼 따라다니는 'No Problem!!'같은 자기확신까지 말이다. 그런데 그건 배낭족이라면 누구나 공감했던 것일까......스파게티를 배불리 먹었던 멕시코시티의 그 유스호스텔 벽면 중 하나는 그곳을 거쳐간 배낭족들의 낙서로 가득차 있었는데, 그 중 누군가의 낙서가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If all politician are backpackers, maybe there's no war in the world!!!(모든 정치인들이 배낭족이었다면, 아마 이 세상에 전쟁이란 없을 것이다)'......100%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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