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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로 국경 넘기 에피소드 "Best 5"

budsmile 2011. 3. 22. 12:00

배낭여행을 통해 우리나라에선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 중 가장 독특한 것을 뽑으라 하면 단연코 도보로 국경을 넘는 것이 될 것이다. 국경하면 으레 '휴전선'을 떠올리는 우리로서는 국경을 넘는다는 게 그리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은 너무도 쉽게 국경을 넘어 다닌다.

 

몇몇 예외가 있긴 하다. 즉, 국경이 봉쇄된 경우인데, 미얀마나 부탄같은 곳이 그런 곳이다. 육로로 인근 국가와 접해있지만, 외국인에게는 오로지 항공편을 통한 입국만을 허용하고 있는 곳들이다. 국경지역이 분쟁지역 또는 강도떼 출몰 등이 잦아 피해야할 곳도 있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국경(분쟁지역), 케냐와 에디오피아 국경(치안불안)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국경이 지도상에 있긴 하나 자연환경으로 접근이 불가한 곳도 있다. 파나마와 콜롬비아 국경(밀림),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국경(사막) 등이 그렇다. 이상한 국경도 있다. 키프러스는 현재 터키가 북쪽 지역을 점령하여 분단되어 있는데, 수도 니코시아를 가로지르는 그린라인이라는 국경(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지만)이 존재한다. 그리스의 아토스산 성역이나 중국의 티벳에 갈 때도 별도의 출입허가증을 받아야 접근이 가능하다.

 

유럽처럼 기차만 타고 있으면 알아서 국경을 넘나들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국경에 가서 출국스탬프를 받고(때론 출국세도 내고) 걸어서(또는 버스나 열차로) 땅에 그어진 선을 넘어 상대편 국가에 입국, 비자나 입국스탬프를 받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면 된다. 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땅에 그어진 선을 기준으로 언어와 복장, 통화단위와 사람의 생김새까지 달라지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한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중에서도 특히 배낭족들의 선망이 되는 국경들이 몇 개 있다. 파키스탄에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는 길, 티벳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길, 우유니 소금사막을 통해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길 등등

 

그런데 국경넘기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필요한 만큼, 그 사이 많은 에피소드가 발생한다. 여기 그 중 내가 겪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Best 5를 소개한다.

 

1. 파키스탄(라호르)에서 인도(암리차르) 넘기

 

<파키스탄과 인도 wagah 국경, 출처:www.jollykingdon.com>

 

예전에 한 지역이었던 펀잡이 인도와 파키스탄 분리로 분단되었다. 이슬람교도가 많은 서펀잡은 라호르를 주도로, 시크교도가 많은 동펀잡은 찬디가르를 주도로 하여 나뉘었다. 이 둘 사이의 국경은 두 나라간 사이가 험악해지면 닫히고 우호적일 때만 개방된다. 한마디로 엿장수 맘이다. 마침 내가 갔을 땐 개방되었다.

 

라호르에서 국경까지는 가는 길이 험난하다. 역앞에서 12번 미니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 국경근처 마을 wagah까지 가는데, 기네스북 경연대회를 하는 것같다. 좌석이 다 찼는데도 계속 사람을 태우더니 급기야 지붕위에 올라서고, 창문에 손만 넣은 채 차체 외벽에 매달려 차 안이고 밖이고 더 이상 잡을 곳이 없어진 후에야 출발한다. 12인승에 족히 30명은 탔는데, 멀리서보면 차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떼거리로 뛰는 듯 보이겠다. 

 

1시간 후 도착한 국경마을에서 다시 오른쪽 창이 모두 깨진 또다른 봉고로 갈아 타고 드디어 국경에 도착한다. 출국수속을 밟고 있는데, 갑자기 세관원들이 암달러상으로 변한다. 저렴한 환율로 꼬드기길래 조금 바꿨는데, 그 다음 방에서 여권스탬프 찍어주는 또다른 직원이 나에게 옆방에서 돈을 바꿨는지 물어본다. 그러더니 인도국경에선 화폐유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그 돈 모두 압수당할 거라 한다. 그러면서 500루피만 주면 자기가 무사히 통과시켜주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기같아 그냥 가겠다하니, 250루피...200루피...점점 낮아지더니 100루피만 달랜다. 어떻게 하나 보려고 줬더니...역시나! 국경앞까지 따라오는 척하더니 내빼버린다. 세관원들과 출입국직원들이 짜고 여행객들한테 삥을 뜯고 있었던 것이다.

 

국경은 땅바닥에 벽돌같은 것으로 선을 그어놨다. 그런데 마침 점심시간이 되자 국경직원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덕분에 나는 파키스탄은 출국했으나 인도에는 입국하지 않은 투명인간이 되었고, 2시간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국경선을 이리저리 넘나들며 나름 혼자서 '국경넘기 놀이'에 심취해야 했다. 인도 입국수속은 간단했고, 어떤 사기 징후도 발견하지 못한 채 비로소 황금사원이 있는 암리차르로 갈 수 있었다.

 

2. 이스라엘(예루살렘)에서 요르단(암만) 넘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요르단 국경, 알렌비/킹후세인 브릿지, 출처:picasaweb.google.com>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평화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육로국경을 넘는 게 가능하다. 총 3개의 국경검문소가 있는데, 문제는 비자다. 우리나라는 요르단과는 비자면제협정이 되어 있지 않아 국경에서 받을 수밖에 없다. 요르단은 국경에서 비자발급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어느 국경에서 발급가능한 지는 저마다 정보가 틀렸다. 

 

이스라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암만이 제일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근처 국경(이스라엘에서는 알렌비다리, 요르단에서는 후세인다리라 부르는)에서 요르단비자를 받을 수 있는 지 물어보았다. 대사관 직원은 너무도 쉽게 '가능하다'는 답변을 주었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몇 명의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합승택시를 타고 국경에 도착하였다.(이 지역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므로 이스라엘에서 운영하는 정규버스가 없었다) 그리고 출국수속을 마친 후 국경버스에 올랐다.(여기 국경은 도보로 건널 순 없다. 내부에서 순환하는 버스를 반드시 타고 넘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버스 값도 비싸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 요르단측 국경사무소에 갔는데, 나만 내리랜다. 비자가 없다는 것이다. 비자발급을 요청했더니 여기는 비자발급이 안된단다. 기가 찬 것은 '여기만' 안된단다. 나 때문에 버스를 지연시킬 순 없어 먼저 버스를 보내고 실랭이를 벌였지만 결국 방법은 한 가지! 다시 이스라엘에 입국해 북쪽 1시간 거리에 있는 국경으로 다시 이동한 다음 비자를 받아 요르단에 들어가는 것이다.(쉽게 말해 추방당한거다!)

 

모든 비용이 2배로 들었다. 국경순환버스 비용을 다시 내고, 입국절차를 다시 밟고, 다른 국경까지는 같이 합승택시를 탈 사람이 없어 무려 100달러 가까이 주고 택시를 대절해 이동한 다음, 출국수속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암만에 도착하니 이미 오밤중......(그것도 암만시내가 아니라, 외곽 어디쯤이다)

 

한밤중 불빛 하나 없는 암만 외곽에 떨어진 나는 다시 울며겨자먹기로 택시를 탔다. 미터기를 확인하고 탔는데, 이 운전기사가 미터기 금액을 '디나르'로 요구한다. 물가가 왜 이렇게 비싼거야.....하며 돈을 계산했는데 유스호스텔에 들어가서 숙박비를 본 순간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물가가 비싼 것이 아니라, 택시 미터기의 단위가 디나르가 아닌, 그 아래 단위였던 것이다.(여기는 1dinar=100qirsh=1000fils의 세 종류 기준을 쓴다.) 이래저래 요 날은 돈이 빠져나갈 운세였나 보다.

 

나중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대사관에 항의전화를 했다. 없는 돈 쪼개 전화카드까지 샀다. 굉장히 형식적으로 들리는 '미안하다' 말 한마디가 되돌아왔다. 모르면 차라리 말해주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

 

3. 볼리비아(산타크루즈)에서 브라질(코룸바) 넘기

 

<볼리비아(산타크루즈)와 브라질(코룸바)을 연결하는 기차, 출처:flickr.com>

 

볼리비아 동쪽지역은 구수함이 물씬 풍기는 서쪽 안데스의 인디오 지역과는 판이하게 다른데, 그 중에서도 중심도시인 산타크루즈는 꽤 세련됐다. 그렇다고 국경열차까지 믿으면 안된다.

 

산타크루즈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브라질 국경도시 코룸바에 갈 수 있는데, 국경열차 표를 사는 것부터 고생시작이다. 길게 줄을 서서 간신히 표를 구하고 나면, 이제부턴 모기와의 전쟁이다. 날은 무지막지하게 덥고 의자는 딱딱한데, 움직이기 힘든 공간에서 당하는 모기공격은 정말 고문 중의 최고 고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빈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외부로 노출된 나의 모든 살들에 빨대를 꽂아 놨다.(왜 브라질이 이 국경에서만 황열병 접종증명서 제출을 요구하는지 완전 이해했다.)

 

더 놀라운 것은 잡상인들이다. 열차가 설 때마다(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면 10분에 한 번씩은 서는 것같다) 온갖 종류의 물건을 파는 잡상인들이 기차를 점령한다. 그 중 잠을 확 달아나게 했던 아줌마가 있다. 육중한 몸매에 목에는 도마를 걸고, 무슨 자루도 하나 가지고 탔는데, 뭐라고 샬라샬라~말하니 여기저기서 손을 든다. 그러더니 이 아줌마......품에서 뭘 꺼내는데 영화에서나 본 커다란 정육점 칼이다. 그리고서는 자루에서 프라이드치킨을 꺼내 도마에 놓고는 신의 경지에 다다른 솜씨로 닭을 절단내 봉지에 담는데, 비몽사몽 와중에도 감탄 또 감탄했다.

 

기차 출발 소리가 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승객들은 왁자지껄 잡상인들에게 샀던 간식으로 파티를 벌인다. 뭘 그리 많이 먹어 대는지......밤 새도록 그 광경이 고장난 테잎처럼 반복되는데, 내가 경험한 것 중 가장 시끄러웠던 국경넘기였던 것같다.

 

4. 베트남(후에)에서 라오스(사바나켓) 넘기

 

<라오스의 한국산 중고버스, 출처:jeffreyalanmiller.wordpress.com>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베트남의 역사도시 '후에'의 국제버스터미널은 그냥 조그만 식당이었다. 비는 추적추적 오는데, 저녁 10시에 오기로 한 라오스행 버스는 새벽 1시 30분이 되어야 식당앞에 선다. 버스는 '월미도'라는 글씨가 채 지워지지 않은 우리나라 중고 시내버스다. 그런데 이 버스, 벌써 어디를 거쳐왔는지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간신히 차에 올라탔는데, 통로와 좌석바닥은 온통 가마니로 가득차있다. 어둠 속에서 가마니 위를 '기어다니며' 빈 좌석을 겨우 찾아 앉았다.(몇몇 배낭족은 그런 모습을 보고는 아예 버스타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잠은 쏟아지는데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좌석상태는 참 가관이다. 버스는 우리 중고지만, 내부는 완전 개조되어 정말 딱딱한, 등받이가 정확히 90도인 2인용 의자를 최대한 간격을 좁혀 설치해놨다. 덕분에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을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앉아도 무릎이 바로 앞 좌석 등받이에 닿게 된다. 잠이 와서 허리가 굽어질려고 하면 무릎이 너무 아파져 마치 여자들처럼 무릎을 모아 한쪽에 비스듬히 두어야 한다. 좌석밑의 가마니 때문에 그 자세마저도 어정쩡해져 온 몸을 비틀어야 한다.

 

더구나 머리받침대도 없다. 잠자는 동안 머리는 본의 아니게 과격한 '스윙'에 시달려야 했다. 길은 완전히 비포장으로 버스는 제 멋대로 요동을 치고, 요동을 칠 때마다 버스의 차체와 바닥의 벌어진 틈에선 쉴새없이 먼지가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왜 그리 닭들을 많이 사가지고 가는지......발만 묶어 놓은 닭들은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깜짝 놀라 홰를 치며 나의 무릎위에 올라와 날개를 푸드득 거린다. 어릴 때 닭에게 쪼여본 이후로 무서워 한 동물이지만, 잠은 닭보다 확실히 더 무서웠다.

 

그리고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희미한 새벽빛이 버스안으로 새어들어올 즈음 버스는 국경에 도착했다. 도대체 언제 수속을 밟을 수 있는 지 기약없이 기다리면서 다시 한 번 추위와 떨어야 한다. 그래도 현지인들의 모습은 여유롭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나는 그 버스에 독일인 배낭객과 2명이서 앉아있으면서 비좁다고 생각했지만, 새벽에 보니 그 조그만 좌석에 3명, 많게는 4명(물론 닭들은 제외)까지 앉아 있었다. 그네들이라고 불편하지 않았을까?

 

버스는 다시 국경을 달린다. 잠시 멈추면 자연스레 다른 남자들을 따라 우측(여자는 좌측이다!)으로 흩어져 주변에 볼일을 보고, 버스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손짓발짓 섞어가며 잡담도 나눈다. 500Km도 안되는 거리지만, 드뎌 16시간만에 라오스의 사바나켓에 도착했다. 다시 어둑어둑해지는 밤이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가 된 것같은 묘한 경험이었다.

 

5. 러시아(상트페테르스부르그)에서 에스토니아(탈린) 넘기

 

<러시아 기차내부, 4명이 컴파트를 쓰도록 되어있다. 출처:m.wikitravel.org>

 

국경 개방으로 어떠한 여권검사 없이 국내처럼 돌아다닐 수 있는 서유럽과 달리 동유럽은 국경에서의 검사가 꽤 까다로운 편이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입출국은 귀찮고 힘들기로 유명하다.

 

국경에 다다르면 경찰들과 세관원들이 한 번씩 타서 열차내 모든 불을 켜고 돌아다닌다.(한꺼번에 같이 타면 안되나?) 승객편의는 아예 없고, 벌금을 물릴만한 것은 없는지 뭔가 트집거리를 찾아다니는 형국이다. 잠을 깨길 몇 차례, 짐을 풀었다 쌌다를 몇 차례해야 겨우 그 요란스러움은 끝난다.(내 짐은 완전히 빨랫감 천국인데, 그걸 다른 승객들 앞에서 까보여야 하는 민망함이란......!!)

 

러시아 입국비자를 한국에서 받을 때는 현지초청 바우처가 필요하다.(물론 아는 사람없어도 여행사에서 만들어준다) 이 바우처에는 묵을 숙소가 적히는데, 현지에서 그 호텔의 확인도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비싼 호텔에 묵을 필요는 없다. 다시말해 모든 게 '짜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신 '돈'이 들어간다.

 

내 바우처에 문제가 생겼다. 의사소통 잘못인지 현지 여행사가 바우처에 적어준 호텔에서 확인도장을 거부한 것이다. 나는 한국에 다시 전화를 걸고 모스크바 시내를 반나절 헤맨 후에야(덕분에 모스크바 시내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었다) 그 여행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여행사는 '당연히' 찍어줘야 하는 숙소확인도장을 자신들이 대신 받아주는 대가로 다시 '돈'을 요구했다.(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 해당호텔에서 도장찍기를 거부한 것도 별도의 '뇌물'을 원했었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들어갔지만, 이 확인도장이 없을 경우 재수없으면 국경에서 엄청난 벌금을 물리는 수가 있다.

 

때론 엄청난 희생과 체력이 필요하지만, 분명 국경넘기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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