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여행이야기

당황되지만 재미있는, 그래서 여행!(3) - 생사의 갈림길편

budsmile 2012. 1. 20. 17:08

8. 프랑스 생말로(St. Malo) 해변에서다. 여기는 사실 내 계획에 없던 곳이었다. 아침에 그만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몽생미셸로 가는 기차를 놓쳤다. 근처에 가면 연결편이 있으려니 하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생말로(St. Malo)였다. 해안가 바로 옆에 만들어진 멋진 성채도시다. 이왕 온 거 도시를 한바퀴 둘러보며 해변으로 향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해안가 바위에 왠 고풍스런 또하나의 조그만 성채가 눈에 띄었다. 리틀 몽생미쉘이라 불릴 만했다. 가까이서 보기로 하고 다가갔다. 나는 해변 반대쪽 망망대해가 보이는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일기도 쓰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얼마나 있었을까? 그런데 어느 순간 느낌이 이상하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깜짝 놀라 해변쪽을 바라보니...아뿔싸!! 그 널따란 백사장이 모두 물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있는 곳도 완벽하게 섬으로 변했다. 밀물이다!!...성채에 높은 성벽이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큰일났다. 물은 정말 놀라운 속도로 점점 차올라왔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수영복으로 얼른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바닥에 발이 닿는다. 겨우 목만 내놓고는 배낭을 번쩍 들어 올리고 침착하게(사실은 정말 겁났다^^) 걸어서 바위섬 탈출에 성공했다. 높은 성벽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프랑스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말이다!! 조금 더 늦었으면 어떡할 뻔 했을까.....아직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 생말로 구시가 전경, 출처: http://images.france-for-visitors.com >

- 사진 북측에 보이는 해변가와 이어진 바위섬이 바로 그 문제의 장소이다 -

 

< 문제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출처 : http://holidays.syl.com >

 

9.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의 일이다.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에 막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경. 나는 버스터미널을 나와 숙소가 싼 구시가(동예루살렘)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정류장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Lonely Planet이 알려준 곳을 찾지 못하고 그만 길을 잃고 어느새 시장 한복판에 와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장 구경도 하면서 먹을거리도 좀 샀다. 주변이 좀 익숙해지자 아까 전까지 안보이던 버스정류장도 쉽게 눈에 띄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무사히 구시가에 도착, 다마스커스 게이트 부근 이슬람지구의(구시가는 성벽이 둘러쳐져 있고, 몇 개의 성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가면 아직도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가 완벽하게 펼쳐진다!!) 배낭족들에게 소문난 호스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호스텔 식당에서 어제 시장에서 사온 빵과 잼을 꺼내놓고 아침을 먹기 위해 차를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TV에서 뭔가 중대한 일이 생긴듯, 당시 네타냐후 총리의 담화문 발표가 계속 반복 방영되고 있었다. 주변 배낭족들이 폭탄테러가 발생해서 저러는 거라고 얘기해줬다. '역시 이스라엘이구나'하며 무심코 흘려듣고 있었는데, 순간 지나가는 화면이 너무나 낯익은 곳이었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어제 내가 빵을 사고 있었던 바로 그 곳 아닌가!! 테러가 발생한 시간은 정오무렵......간발의 차이였다. 내가 떠난뒤 1시간도 채 안되어 그곳은 지옥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금새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예루살렘을 훑고 다녔는데, 집에서는 난리가 난 모양이다. 나는 여행을 떠날때면 개략적인 여행루트만 달랑 부모님앞에 남겨놓고 왔었는데, 계획상 예루살렘 입성 시기에 터진 테러소식에 가슴이 철렁하신 것이다. 1주일 정도 지나고 나서 전화를 드렸는데 정말 수화기 터지는 줄 알았다. 나쁜 소식은 항상 밖에선 침소봉대되는 법......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어지간히 부모님 속 많이 썩힌 것같다.

 

<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바위돔과 통곡의벽, 출처 : www.planetware.com >

 

10. 페루 티티카카 호수에서의 일이다. 쿠스코에서 푸노로 가는 길은 반드시 낮에 이동을 하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환상적인 풍경을 마음껏 즐겼지만, 막상 도착한 푸노에서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듯 해가 내리쬐고 있었다. 푸노에 온 목적은 오직 하나......티티카카 크루징을 하기 위해서다. 항구에서 배를 타면 호수 특유의 갈대밭숲을 지나 갈대로 만들고 실제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우로스섬을 거쳐 잉카인의 후예들을 볼 수 있는 타켈라섬을 한바퀴 둘러보고 오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생겼다. 그 좋던 하늘이 갑자기 시컴해지더니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이다. 30여명 남짓한 승선객들은 모두 갑판아래 지하실처럼 어두컴컴한 객실에 모였다. 그래도 좀 큰 배였는데, 좌우로 요동치는 게 롤로코스터를 탄 듯, 예사롭지 않다. 급기야 빗물이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고 천둥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서양인들은 저마다 눈을 감고 성호를 긋거나,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손을 꼭 붙잡고 서로 격려의 말을 주고받았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할 정도가 되자, 여자들은 기가 질려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다. (좌석이 우리네 지하철처럼 벽에 기대어 마주보고 앉게 되어 있었다.) 이러다 배가 뒤집힐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기를 여러번, 얼마나 지났을까? 배가 마침내 갈대밭사이로 들어가자 파도가 잔잔해진다. 죽음과 같은 3시간이었지만, 더 슬펐던 것은 막상 나의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는 상황이 닥쳤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반면, 이런 상황에서 나를 더 감동시켰던 것은 사람들의 자세였다. 누구도 소리를 지르거나 흥분해 질서를 깨뜨리지 않았다. 어느 모녀는 자신들의 우의를 벗어 키를 잡고 있는 소년에게 씌어주는가 하면, 아르헨티나 청년은 비스켓을 꺼내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유쾌한 표정을 지어준다. 가이드는 한 사람씩 말을 걸어 안심을 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런 상황이 닥치자 '마음을 열고 서로를 감싸주는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 이런 재미가 있어 사는구나 싶었다. 방금까지는 곧 닥쳐올 죽음에 공포를 느꼈지만, 그 공포를 하찮게 만드는 힘이 바로 우리들에게 있구나 느꼈던 '유쾌한' 하루였다.

 

 < 티티카카호수, 출처: http://www.smileyland.com >

 

To be continued.....

 

free coun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