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여행이야기

당황되지만 재미있는, 그래서 여행!(5) - 배낭족을 위한 변명

budsmile 2012. 8. 3. 15:15

배낭여행을 좀 하다보니, 거꾸로 이젠 우리나라가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에게 얼마나 우리가 매력적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천만 관광객을 바라보는 요즘에도 여전히 입국자들의 절반이 일본과 중국인들이고, 유럽인들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일본인과 중국인들은 싼 맛에 가까운 곳에서 좋은 물건 사기 위해 오는 것이 대부분이고, 유럽인들은 주로 회의참석차 왔다가 잠시 관광하는 것이 많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구조를 유지하려면 우리보다 더 좋은 조건의 쇼핑장소가 나타나지 않아야 하고, 회의도 많이 개최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면 꼭 봐야할 뭔가가 있고, 호기심 댕기는 매력이 있어 한 번쯤, 아니 한 번 이상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 인식이 없는 한, 지금의 '천만' 관광객은 신기루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배낭여행을 하면서 얻은 세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1. 먼저 배낭족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사실 배낭족들은 돈이 안된다. 저렴한 숙소와 식사를 찾고 아끼면서 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와도 별로 국가적으로는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순간, 패키지 관광객들이 쓰는 돈과 1:1로 비교할 때에만 국한된 얘기다. 배낭족들의 네트워크는 생각외로 상당히 넓다. 그들의 정보는 곧 전 세계 배낭족들과 공유되고(그들이 잘 모이는 숙소게시판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책으로도 활자화된다.(배낭족들의 바이블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여행서적 'Lonely Planet'의 탄생부터가 그렇다.) 그들은 유명한 관광지는 물론, 그 나라의 오지 구석구석 찾아가는 것을 즐기고, 체험관광을 좋아하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저렴하게 온 만큼,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상관없이 머물며 아예 그 지방의 맛집, 숙소, 볼거리 등을 그 나라 사람들보다 더 꿰뚫는 것은 다반사다. 그들이 그렇게 찾아낸 곳들이 유명관광지가 되고, 뒤이어 돈많은 패키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발리가 그렇고, 라오스의 방비엥이나, 태국의 싸무이섬,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등이 해당된다.

 

<배낭족들의 전형적인 모습(출처: smh.com.au)과 론리플래닛 한국편>

 

태국 방콕에 가면 배낭족들의 천국이라는 '카오산 로드'가 있다. 이 좁고 300m도 안되는 거리에는 배낭족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저렴한 식당과 바, 상점과 숙소 등이 밀집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눈에 띈 것은 여행사들이다. 이 곳에 가면 태국의 깊은 오지로 들어갈 수 있는 고만고만한 투어상품들이 널려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명과 마을인데, 그렇다고 딱히 거창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원주민들과 접촉, 래프팅 등 체험스포츠 등이 끼워져 호기심을 자극한다. 5-6명이 조그만 짚차를 타고 반나절, 혹은 한나절 여행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으며, 배낭족들이 요구하는대로 투어일정과 가격 등은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다. 또한 이웃나라로 갈 수 있는 페리나 기차, 국제버스, 항공권 등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이렇게 구축된 인프라를 통해 전 세계 배낭족들은 태국의 깊은 속살을 느끼고, 그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주변 국가로 가기위한 베이스캠프로 충분히 활용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어딜 가더라도 관광객용 투어는 정해져 있다. DMZ투어, 경복궁이나 창덕궁같은 문화유산 투어, 롯데월드, 명동이나 N타워 혹은 동대문같은 쇼핑투어가 통상적이고, 그나마 요새 나아진 것들이 템플스테이, 북촌걷기투어 정도다. 지방이라 해봐야 경주, 부여, 부산 등이 전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배낭족들은 알면서 안가는게 아니라, 몰라서 못가는 것뿐이다. 자랑스런 세계유산, 하회마을 조차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간 후부터 외국에 이름이 알려졌다고 하니, 말 다한 것 아닌가!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출처: thaitravelnews.net)>

 

배낭족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공짜로 활용할 수 있는 홍보대사이고, 외국인들에게 먹힐만한 관광지를 발견해낼 수 있는 테스트베드같은 존재다. 그들은 한 번 마음이 동한 곳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는 방법, 근처 맛집, 숙소 등을 발굴하여 전 세계에 널리 전파하고 Lonely Planet에 싣도록 만든다.(물론 몰디브, 칸쿤, 타히티처럼 국가정책적으로 정부가 주도해 만드는 관광지들도 분명 있다. 따라서 지역별로 끌어들일 관광객들의 타겟을 분명히 설정하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모든 게 태부족이다. 정보를 얻을 곳이 부족하고, 저렴한 숙소는 찾기 쉽지 않다. 대중교통일일사용권이나 레일패스같은 것도 없다.(교통편이 적어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외국어가 잘 통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사실 배낭족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배낭족보다는 패키지 위주의 정책이 우선인 것같다. 그렇다면 패키지 정책이라도 잘 되고 있는가?

 

2. 국가별 여행자들의 눈높이는 다양하다.  관광객들은 전문가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들도 보통사람인지라 더 큰 것, 더 화려한 것, 세계 최초 혹은 세계 최대 뭐 이런 것들에 혹한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서 보면 우리 문화유산들은 다 고만고만하게 느껴진다.(오해마시길!) 특별히 중국이나 일본, 더 나아가 인도나 이집트, 멕시코에 비교해봤을 때 5천년 역사치고 독창적으로 남아있는 게 별로 없는 것같다. 문화유산은 그렇다치고, 우리네 도시들도 어딜 가나 모두 비슷비슷한 것 같아서 굳이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고픈 마음이 내키지 않도록 만든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건, 경복궁이나 불국사같은 것들만 줄기차게 보여주고는 그들이 스스로 우리의 독창성을 깨우쳐 '원더풀~'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모양새다. 우리가 보여줄 게 정말 빈약한가? 그렇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건은 하나지만, 그걸 통해 보고싶은 것은 나라별로 열이면 열 다 틀리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증명사진'을 좋아한다. 가이드북에 나온 멋진 사진, 드라마에 나왔던 장소 등은 꼭 자신이 가서 자신의 카메라에 똑같은 앵글로 담아오기를 희망한다.(거의 병적 수준이라 봐도 된다) 일본에서는 이미 이것을 마케팅에 이용해 명소마다 스탬프를 찍어 엽서를 보낼 수 있도록 한다든지, TV에서와 똑같은 장면을 찍을 수 있는 뷰포인트를 가르쳐준다. 기념품도 공장에서 찍었을 지언정,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상품으로 포장한다.(조그만 인형에도 각기 다르게 지은 이름들이 태그로 붙여져있다) 중국인들은 졸부 기질이 있다. 조그만 물건을 사도 번듯한 곳에서 '대접받기를' 희망한다. 미국인들은 유적지보다는 오히려 '문화생활'에 더 관심이다. 정동극장이나 대학로, 홍대앞 클럽들이 그들에겐 서울의 전부일 수 있는 곳이다. 유럽인들은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 유럽에 가면 한 도시 내에 다양한 시티워킹투어가 있는데, 예를 들어 유령투어, 영화명소투어, 유명건축물투어, 음악투어, 역사투어 등 주제가 정말 다양하다.(심지어 유럽의 놀이동산만 가도, 애네들은 롤러코스터보다는 배타고 인형들 춤추는 것 보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래도 모든 패키지의 내용이 단순 보여주기식의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행자들의 지갑을 열도록 하는 방식은 조금 더 다양해져야 한다.

 

<홍대앞 클럽(출처:seoulexpat.com)>

 

3. 거기가면 '이것'만은 꼭 해봐야 한다고 욕망하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을 봐야 하고, 카파도키아에 가면 열기구를 타봐야 하고, 러시아에 가면 '마툐료스카' 인형을 사와야 한다. 뉴질랜드에 가면 번지점프를 해야 하고, 이탈리아에서는 피자와 파스타를 먹어봐야 하고, 브라질에 가면 삼바축제를 반드시 봐야 한다. 우리에겐 무엇이 있는가? 한국에 가면 꼭 사야할, 꼭 봐야할, 꼭 해봐야할, 꼭 먹어야할 그 무엇이 있는가? 사실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인사동에 가면 '메이드인 차이나'의 허접한 제품들이 마치 우리 전통기념품인양 자리잡고 있고, 한국방문 기념 엽서나 티셔츠는 어디서 파는 지조차 모르겠다. 도처에 일식, 중식, 이태리 식당에 미국식 패스트푸드 식당과 치킨집은 많은데 도대체 한식은 어디서 먹어야 되는지, 눈에 띄는 것은 고깃집이 대부분이다.(그나마 있는 한정식집들도 1인은 받지도 않는다. 내가 보기에 배낭족들이 한국음식 먹기를 시도할 때, 찾을만한 곳은 분식집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유명 관광지에 가도 그 지역에서만 파는  독특한 기념품은 없고, 전국 어딜가나 살 수 있는 것들 뿐이다. 그나마 4대강 자전거길, 동강 래프팅, 폐선부지를 활용한 레일바이크 등 지역 특색을 살린 체험스포츠 시설이 늘어난 것은 조금 다행이다.

 

<인사동(출처: mangovine.net)>

 

예전에 대학교 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서울에 있는 외국인게스트하우스 숙박자들을 상대로 대면설문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허름한 한옥을 개조해 만든 게스트하우스 숙박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 침대가 없는 좌식생활이나, 온돌방, 커뮤니티가 가능한 마당이 한국을 새롭게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게 중론이었다. 배낭족들은 허름해도, 불편해도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단순히 쉴 곳을 찾는 휴양지가 아니라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뉴욕이나 런던을 흉내낸 현대도시가 아니라, 정작 우리가 사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외국 배낭족들과 얘기하다보면, 애네들 보는 시각은 완전히 색다르다. 우리는 그저 무심코 지나쳤을 것들에 흥미를 가지고 물어본다. 예를 들어 유흥가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건물을 도배한 간판들은 오히려 외국에서는 한국의 대표사진으로 보여주는 신기한 문화다. 그와 더불어 낮보다 더 화려한 밤문화도 그렇고, 아파트 주거문화나 화려한 모델하우스도 외국에선 보기 힘든 것이다.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은 말할 것도 없고, '멍멍탕'이라던지, 냉면같은 차가운 국수요리도 신기해한다. 잘 보존되고 있는 禪불교나 유교의 제사문화에는 호기심이 넘친다. 세계 3대 갯벌이나 전 세계 남아있는 것 중 반 이상이 있는 고인돌도 말해주면 놀라는 것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 아이템만 가지고는 외국인이 한국을 반드시 방문하도록 유도할 수 없다. 뭔가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옥게스트하우스(출처: triparoundworld.info)>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프랑스는 기껏해야 과일주인 포도주를 가지고 소믈리에라는 직업을 만들고, 예법, 맛에 대한 차별화된 식감 등을 개발해 마치 포도주 마시기를 하나의 문화인 양 격상시켰다. 그렇다면 같은 발효식품으로 다양한 종류와 맛, 지역별 특성을 가진 김치도 그런 방식의 마케팅이 가능하지 않을까? 농담처럼 들리긴 하지만, 그네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이것만은 꼭 하고 가야한다는 욕망을 불러넣어 줄 수 있으려면 포장술이 좀 더 필요하다. 외국에서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을 지언정, 오리지널을 즐기려면 한국에 찾아올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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