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나만의 문화일기

뮤지컬 '빌리엘리어트'(2010.10.2)

budsmile 2010. 10. 8. 00:36

 올초 '모차르트!' 이후 오랫만의 뮤지컬이었다. 빌리 엘리어트......대학시절 영화로 봤던 희미한 기억만을 가지고 갔었는데, 3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새롭고 재미있었다.

 

<출처 : www.theskykid.com>

 

내용은 단순하다. 광부의 아들, 빌리가 우연히 발레를 접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드라마다. 당연히 주인공은 어린 빌리다. 그것도 춤 잘추는 빌리......오디션으로 선발된 후 일정기간 연습을 했다 하지만, 공연을 통해 보여준 소년의 풋풋한 음성과 물오른 춤은 놀랍기만 하다. 약간의 실수와 2% 부족한 듯 보이는 모습은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건 공연내내 자신을 그 주인공의 감정에 자연스레 이입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는 보편적인 신파의 요소를 모두 가진 덕분이다. 어머니를 여윈 소년의 애틋한 감정, 가난한 집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통해 출세하는 자수성가 스토리, 평범하고 차갑지만 끼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과 제자의 앞날을 진정 걱정해주는 존경스런 선생님, 허물없는 친구(설령 그가 동성애자라도)와의 진솔한 우정, 자식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 상......

 

극 전체에서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세트가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폴매카트니는 주인공의 감정을 때론 꿈꾸듯이(진짜 발레리나와 백조의 호수에 맞춰 추는 춤), 때론 결의에 찬 모습으로(국립발레단 오디션에서 의기소침해 있었지만,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냐는 질문에 화답하는 춤), 때론 천진난만한 아이로(친구 마이클과 함께 여성옷을 입고 추는 탭댄스) 잘 표현해내며 무대위 공간을 꽉 채워나갔다.

 

<1대 빌리 4명, 출처: www.koreatimes.co.kr>

 

그러나 단순한 성장드라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발레리나의 성공드라마로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이 극의 배경이자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로 대표되는 영국의 복지 시스템은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당국의 무능력을 확대재생산하며 1970년대 말 영국경제를 IMF로 몰고 갔다. 2차 세계대전 후 국가재건을 위해 국유화된 광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졌지만 수익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산업구조를 개혁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 그것은 결국 대규모 해고와 이에 맞선 파업으로 전개되었다. 이익을 쫓아 산업을 부흥하고 대규모 노동력을 투입하지만, 결국 이익이 소진되면 찬밥신세가 되어야 하는 서민들......산업의 역군에서 졸지에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다른 일을 찾는 것뿐이다. 빌리처럼 특출한 재능이 있다면 문제없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는? 내가 그 중의 한 명이라면? 국가에겐 한 없이 관대하지만, 개인에겐 한없이 잔혹한 이 '빌어먹을' 사회적 불합리를 극복하는 방법이 순전히 '개인적인 능력'이 되어야 하는지(누군가는 그랬다. 이 뮤지컬을 보고 평론하며 비참한 시대상황에서도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듣기는 좋은 말이지만, 진짜로 이 극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또다른 시스템이 필요한 것인지는 아마 인간사회의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같다.

 

마지막으로 이 뮤지컬의 매니아층이 상당한 것같다. 몇 번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고, 4명의 1대 빌리들의 공연을 모두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공연장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도 많았는데, 담배를 많이 피우고, 욕설이 난무하는(물론 원작보다 수위를 많이 낮춘 것이 눈에 보이지만) 극의 배경상 아이들 관람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아뭏든 빌리 엘리어트......오랫만에 본 수작 뮤지컬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