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즈에서 우유니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오지로 가는 기분이다. 오후 3시 30분에 라파즈에서 출발한 버스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오루로란 곳에서 갈아탄 야간버스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부터 나온다. 정말 이런 버스가 아직도 있구나 싶은데 좌석은 모두 뒤로 젖혀지는 게 고장이 나서 아예 조절이 불가능하고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마다 절로 도로 굴곡이 느껴진다.) 창문은 모두 손잡이가 빠져 테이프로 창문을 모두 붙여놓았다. 천장의 환기구에서는 정체모를 물이 계속 떨어지는데 하필 내 좌석이다. 흥건히 젖은 좌석에 내 바지도 모두 젖었는데 새벽이 되니 기온이 뚝떨어지면서 한기가 밀려온다.
새벽 5시 30분 우유니에 도착하기 전까지 가로등도 없는 비포장 도로를 어찌 이런 차로 용케 갈 수 있었는지 정말 부서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완행버스이니 수시로 서며 불을 켜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비몽사몽 터미널에 내렸는데 일단 삐끼를 따라 시내중심가 숙소 하나로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 이른 새벽인지 주인도 없고해서 가방만 카운터에 두고 다시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물색했다.
넓은 마당이 있는 그럭저럭 허름한 집이 눈에 띄었는데 흥정을 하다보니 소금사막 투어를 자기네 가게에서 신청하면 방은 그냥 공짜로 주겠단다. 이런 횡재가....(게다가 이 집에서 알려준 투어는 Lonely Planet에도 나온 투어였기에 공신력까지 있었다.) 샤워하고 빨래를 해서 마당에 걸어놓으니 이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몸과 마음이 따스해지니 잠이 절로 와서 오전은 그렇게 잠을 자며 보냈다.
오후 2시 20분 참을 수 없는 배고픔에 일어난 나는 근처 식당을 찾았다. 음료수는 스프라이트 1리터가 최소단위인 희한한 집이었지만 닭고기맛은 정말 일품이다. 음료수가 많다고 여겼는데 배불리 먹다보니 1리터로도 부족하다. 또 시킬까 마음먹던 차에 뒷자리 앉아있던 서양인 여자애가 자기 꺼 컵에 따라먹고 남았다며 혹시 괜찮다면 가져가라며 물어본다. 당연히 Welcome이지...^^
내일부터 시작될 투어를 앞두고 물과 간식거리 이것저것을 준비하고 우유니 시내 중심가(정말 조그마한 도시다. 중심가라해봐야 200m남짓의 대로가 전부이다.) 노상에서 열리는 시장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투어는 11시부터 시작되었다. 4륜 구동 중고 도요타에 기사 포함 총 7명이 3박 4일간 숙식을 같이 하며 보내게 된다.
먼저 간 곳은 우유니 근교의 기차무덤.....식민지 시대 기차와 기찻길이 있는데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시설이란다. 사막을 향해 놓여있는 기찻길은 과거의 역사를 뒤로 하고 수풀과 쓰레기만 가득한 게 을씨년스럽다
우유니를 벗어나자 널따란 사막이 펼쳐진다.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곳에선 스케일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낮은 구름이 해를 가려주면 비로소 그늘이 생기는 곳을 달리기 1시간여......드디어 멀리 하얀 띠가 지평선 근처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아지랑이처럼 지면에서 피어오르는 소금안개로 인해 저 멀리 산들이 마치 섬처럼 공중에 떠있다. 정말 지구상에 이런 풍경이 또 있을까? 하얗게 펼쳐진 소금바다는 눈이 부실 정도다. 지금은 우기라 곳곳에 물이 흥건히 고여있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내륙국이지만 소금 수출국이다. 또한 이 사막의 지하엔 천연가스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다고 하니 참 희한한 곳이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소금 채취를 위해 저렇게 쌓아놨다. 물만 빠지면 그냥 주워 담아 팔기만 하면 된다.
정말 몽환적이다. 파란하늘과 파란 바다는 그 경계가 없어져버렸다. 동시에 꿈과 현실이 하나의 세계안에 공존하게 되었으니 거리감과 스케일과 형태와 시간이 모두 없어져버린 세계는 그야말로 초현실적이다. 살바도르 달리가 이곳을 방문한 후에 초현실주의가 완성되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고지대라 그런지 하늘엔 구름이 없다. 구름은 낮게 내 시야 속에 깔리니 손에 잡힐 듯 볼륨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하얀 산, 하얀 들판은 척도를 가늠할 수 조차 없어 전혀 볼륨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뭔가 뒤바뀌어 버린 듯한 감각, 뒤바뀌어 버린 듯한 지식......대자연 앞에 내 자신의 지식과 존재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원근감이 없는 이곳에서 그냥 풍경사진을 찍는 건 그래서 의미가 없다. 오히려 차가 됬건 사람이 되었건 뭔가를 화면 안에 넣고 찍어야 멋이 난다.
소금 사막 한 가운데는 소금으로 지어진 호텔도 있다. 플라야 블랑카 호텔......지금은 숙박을 받지 않으나 내부 구경은 자유다.
집안의 모든 도구들도 소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소금 사막 안에는 섬도 있다. 말 그대로 섬이다. 사람들은 비가 오면 1-2cm 차오르는 사막이 바다로 느껴졌다 보다. 바위로 이루어진 섬은 쭉쭉 뻗어나간 선인장들로 기묘한 인상마저 준다.
이 곳에서 기사 아저씨가 준비해준 햄버거로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소금 사막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반나절 이상을 달려야했다. 보석을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소금 결정체들은 육각형 모양으로 바닥에 무늬를 새겨놨다.
소금사막을 벗어나 첫째날 묵을 숙소로 들어갔다.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인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 곳에서 더 어두워지기 전에 찬 물로 샤워하고 빨래하고(소금사막에서 절은 바지는 빨리 빨아야한다.) 나니, 주인집 아줌마가 닭고기를 내온다. 생각보다 맛있다. 외지인과 친해지고 싶은 주인집 어린 아들은 말이 안통하니 그저 우리 곁을 맴맴 도는데 사진을 찍자하니 흔쾌히 웃어준다. 그 순박함이란......
일본인 일행과 잡담하며 시간을 보내다 자려고 촛불을 껐다. 그런데 난 그 때 '어둡다'는 것이 뭔가를 그제서야 알았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뜬 장님이라더니......더듬더듬 바깥으로 나와봤다. 하늘에서 별이 하나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별이 하늘에 있었구나.....은하수에 별똥별까지......난 그날 저녁 4륜 구동차 제일 위에 올라가 누워 하늘을 이불삼아 잠을 잤다. 너무나 멋진 밤이었다.
이튿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차가 빵빵거리니 앞에 가던 새끼 리마들이 길 양 옆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고 길을 따라 차 앞에서 달리기를 하는게 너무 안스럽기도 하고 재미있다. 조금 더 달리자 그늘 하나 보이지 않는 사막이 나타났다. 재미난 것이 사막인데도 만년설을 인 산이 동시에 등장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가 해발 4,000미터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달리던 차는 어제 굳었던 땅이 녹아버린 탓에 진흙탕이 되어버린 사막 한가운데에서 멈춰섰다. 타이어가 빠져버린 것이다. 다들 내려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이리 밀고 저리 밀고 날은 더운데 진땀깨나 뺐다. 그런데 차를 빼고 나니 꼴이 말이 아니다. 서로 재미있어서 사진도 찍고 한바탕 요란법석을 떨었다.
조금 있으니 이젠 먹구름이 몰려온다. 아...우기지...그런데 비는 조금 오는데 번개와 천둥이 무시무시하다. 특히 번개는 정말 아찔할 정도다. 근처 피뢰침은 커녕 대신 맞아줄 나무조차 없으니 번개가 그냥 수직으로 땅에 내려 꽂힌다. 그게 눈에 보인다....그런 곳을 차가 지나가니 어떻겠는가....아~ 여기서 나는 통닭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눈에 보이는 산들은 정말 가까이 보인다. 그리고 별로 높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나의 완전한 착시였다.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들이 원근감을 상실하게 만든 것이다. 저래뵈도 6-7천미터급 고봉들이다. 그리고 반나절을 달려야 겨우 그 산 옆을 지나갈 수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있지만 그건 실제하는 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막에는 호수도 많이 있다. 그런데 소금기 가득한 호수는 미네랄이 풍부해 플랑크톤이 번식하는데 그 종류에 따라 호수 색깔이 틀리게 보인다. 그리고 그 플랑크톤은 홍학(플라멩코)의 주요 먹이가 된다.
여기는 호수가 노란색이다.
여기는 호수가 초록색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쉬었던 곳......이끼가 자라고 있는데 자연의 생명력이란......
그 바위 그늘 한 켠에 토끼같이 생긴 동물이 뭔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도 삶이 있구나.....빵을 주니 처음에는 겁을 먹다가 나중에는 포즈까지 취해주며 먹는다. 비스까챠인가 하는 놈인데....사막에서 의외로 많은 동물들을 봤다. 라마는 기본이고, 미꾸니(사슴처럼 생겼다.), 타조 등등....사람들도 이 황량한 땅에서 낀와라는 식물을 재배하고 양과 라마를 키우며 살아간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서나 나올 법한 바위......
라구나 콜로라나라는 호수...여기 색깔은 붉은색이다. 역시 플라멩코 떼들이 모여 있다. 이 곳은 바람이 정말 강하게 부는데...새들이 바람때문에 정면으로 걷지 못하고 단체로 옆으로 걷는게 재미있었다.....
소금의 흰색과 호수의 붉은 색, 그리고 하늘의 파란색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호수가 세번재 날의 종착역이다. 호수 근처에 게스트하우스같은 게 있었는데 당연히 물도 전기도 없다. 화장실에 쓰려고 받아놓은 빗물(그것도 드럼통 하나밖에 안되는)로 샤워를 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 법이다....ㅋ
숙소 앞에서 찍은 희한한 사진....이 동물은 달리다가 죽은 것일까? 어떻게 이런 모습이 가능할런지....암튼 미스테리하다....
다음날 아침은 새벽에 일어나 용암지대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온천에서 세수를 했다.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뻘과 간헐천도 있는데 정말 사막의 풍경이 변화무쌍하다......
주민들이 이름 붙여놓은 그대로 '살바도르 달리'라는 풍경......띄엄띄엄 솟아오른 바위가 사막가운데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또하나의 초현실적 풍경을 마지막으로 투어는 끝났다......
소금사막 한가운데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조금 따가웠지만 걸을 때마다 퍼지는 동심원의 파장이 정적을 깰 때의 느낌은 가보지 못한 어느 누구도 느껴보지 못할 것이다......
어부의 섬이라 불리는 소금사막 한가운데 있는 섬......
4일간의 투어를 함께 한 운전기사 아저씨....'페르민'....순박한 미소를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유니 시내 풍경....쇠락한 모습이지만 그 어디보다 활기차고 순박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제 광산도시 포토시로 향한다. 볼리비아는 비포장률이 높아 버스가 저렇게 가다 멈추는 일이 잦다. 멈추면 사람들은 당연하듯 내려서 버스를 밀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 함게 여행을 해간다....
내일은 또 무엇을 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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