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아메리카

남미여행(13) - 볼리비아 포토시, 수크레, 산타크루즈

budsmile 2009. 5. 19. 13:44

 우유니를 아침 10시경 떠난 버스는 오후 4시 30분경 포토시(Potosi)에 도착했다.

 

버스는 중간에 진흙탕이 된 비포장도로에서 바퀴가 한 번 빠졌는데, 신기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에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를 즐기는 듯하는게 인상적이다. 모두 내려서 자기 일인양 바지를 걷고 차를 밀면서 여유있게 환호와 탄성을 내지르기도 한다.

 

또 사람들은 차가 멈추면 아무 거리낌없이 그늘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남자건 여자건,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자연스럽게 볼 일을 본다. 오히려 불편한 건 나였다. 생각해보면 문명이란 게 얼마나 허약한 토대위에 서있는 것인지......이들을 후진국민, 야만인, 비문명인 등으로 폄훼할 순 있어도 정작 단지 '수세식 변기'가 없어 볼 일을 시원하게 보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나' 혼자 뿐이니......

 

 포토시는 한 때 남미 최고의 은광으로 번창한 도시였다. 그러나 모든 문명이 그러하듯 은이 나오지 않자 지금은  쇠락한 도시가 되었다. 도시 중심가에선 어디든 세로리코란 산을 볼 수 있다. 세로리코는 과거 은광이 있던 나무 하나 없는 붉은 산이다. 여기서 나온 은은 모두 유럽으로 옮겨졌는데, 그 양이 당시 유럽에 비축량의 3배 이상이었다니 엄청난 규모다. 그러나 모조리 빼앗긴 포토시는 지금 가난하다.

 

세로리코에 가면 아직도 은맥을 찾아 지하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폐쇄된 광산을 찾아와 하루 온 종일 지하에 내려가 갱도를 판다. 이들은 광산 입구 근처에 허름한 판자집을 지어놓고 가족단위로 일을 한다. 내가 갱도에서 만난 사람 중에는 13살 어린이도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일을 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있겠는가...가난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니 기본권이니 하는 말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세로리코로 광산투어 가는 날......여기는 개인적으로 갈 수 없고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나와 같이 투어를 신청한 외국인은 모두 10여명 남짓......먼저 시장에 들러 광부들에게 줄 꼬까잎과 담배, 다이너마이트 등을 샀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다이너마이트 뇌관......장화와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저 막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조명등 같은 것은 없다. 조금만 기름램프에 불을 켜서 들고 다녀야 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약간 쌀쌀한 날씨 속에 12시 30분 드디어 광산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허리를 꼿꼿이 펼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이어졌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두 아들을 데리고 새벽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이곳에서 일을 한다는 사진 속의 아저씨......마침 다이너마이트를 매설중이었다. 실제 폭파도 시켰는데 쿵 소리와 함께 무너질 것같은 흔들림이 느껴졌다. 이 소리와 진동은 광산 안에 있던 1시간 30분 동안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지하는 온통 미로처럼 얽힌데다 습하고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어 조심해야 했다. 조금더 깊숙히 들어가자 광부의 수호신을 모신 곳이 나타났다. 바위를 깎아 양의 뿔을 꽂아 놓은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의 상이었지만, 그래도 지하에서 하루종일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그네들의 안녕을 나도 빌어본다.

 

 

이 곳을 지나자 이제 통로의 높이는 1m도 채 되지 않는다. 당연히 몸을 최대한 바닥에 붙게 구부리면서 기어다녔다. 길도 반듯하지 않고 천장의 뚫린 작은 구멍으로 올라가거나 지하 깊숙이 더 내려가기도 했다. 해발 4,800미터의 화산이라 조금만 힘을 써도 숨이 가쁜데 공기까지 통하지 않아 숨쉬기가 너무 답답하다. 폐쇄공포증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미쳐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하 미로는 그 순간 하나의 공포였다. (여기서 찍은 사진이 없다. 아니 찍을 수도 없었다. 그저 여기서 빨리 탈출하고픈 마음만 가득했다.)

 

투어가 끝날 무렵 지하 몇 층을 내려왔는지 모를 그 암흑천지 막장에서 난 13살 아이를 만났다. 나를 보자 대뜸 제키 챈을 좋아한다며 무술 포즈를 취하는 아이의 해맑은 모습을 보며 난 세상의 현실에 격분하고, 아이의 현실에 안스러워했으며, 풍요롭지만 불만에 가득 찬 내 자신이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겨우 1시간 반이었지만 출구에서 쏟아지는 빛을 보자 마치 지옥에서 살아나온 듯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숨은 쉬기 어려웠지만 시원한 공기가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광산에서 나와 바라본 포토시 시내 모습......비까지 와서 더욱 을씨년스런 모습이다.

 

 

포토시 시내에는 화려한 옛 시절의 영화를 보여주듯, 고급스런 교회와 개인 저택들이 즐비하다.

 

 

다음날은 화창하다. 7시 30분 출발한 버스는 으례 그러하듯 이곳 저곳을 정차해가며 11시 정도에 볼리비아의 헌법상 수도인 수크레(Sucre)에 도착한다. 라파즈가 볼리비아의 관문이자 경제수도라면 정부기관들이 모여있는 이 곳은 행정수도다. 도시 모습은 이제까지 봐왔던 볼리비아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유럽풍의 깨끗한 잘 꾸며진 멋진 하얀 도시...날씨까지 쾌청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중심가인 5.25일 광장에 면해있는 성당......

 

 

수크레 전경을 잘 볼 수 있는 레콜레타 수도원에서......하얀 회칠의 벽들과 빨간 지붕의 집들이 마치 유럽의 도시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수크레에서 산타크루즈(Santa Cruz)로 가는 길은 야간버스를 택했다. 이제 정든 안데스 산맥을 뒤로 하고 산 밑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어찌나 산이 험한지 도대체 15시간 동안 산을 몇 개나 넘는지 모르겠다. 포장도 안된 절벽 위 도로에서 반대 방향으로 오는 차와 마주치면 후진까지 해가며 아찔한 장면을 연출하는데......이런 때는 그냥 눈을 지그시 감고 나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아침이 되자 덥고 습한 공기가 확 밀려온다. 안데스의 찬 바람에 익숙한 나는 갑자기 찾아온 여름이 반갑다. 오전 9시쯤 도착한 도시의 모습은 정말 볼리비아가 맞나 싶을 정도다. 잘 정돈된 바둑판길, 가로수 또는 인도까지 삐져나온 건물의 아케이드와 화려한 상가들, 노천카페들은 정말 서구적이다. 난 무의식적으로 볼리비아 오른쪽 귀퉁이에 치우쳐 있는 산타크루즈를 조그만 시골동네로 지레 짐작했었나 보다.

 

이 곳의 유스호스텔은 10달러짜리 호텔이었다. 볼리비아에선 꽤, 아니 아주 많이 비쌌지만 그만큼 물가가 비쌌다. 대신 시설은 훌륭했다. 그동안 밀린 목욕, 빨래 등을 모두 헤치우고 침대에 누워 케이블TV를 봤다. 저녁엔 1층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주문해 봉지라면까지 해먹으니 세상이 모두 내 것이다. 행복이란 참 별게 아니다.

 

 

이제 산타크루즈를 떠나 브라질로 간다. 16:30분 산타크루즈에서 기차를 타고 국경마을인 퀴하로(Quijarro)에 11:30분 도착, 다시 합승택시를 타고 국경을 건너 브라질 국경마을인 코룸바(Corumba)로 들어간다.

 

볼리비아에서는 기차타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우선 표 사는데만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하고, 또다시 짐검사와 역이용료를 내고 연착이 예사인 기차에 올라타지만 에어컨이나 친절한 차장서비스는 기대금물....기다리는 건 모기와 먼지다. 그날 얼마나 많은 모기에 물어 뜯겼는지 내 다리에 성한 피부가 없을 정도였다. 더워서 잠을 자기도 힘든데 웬 정차역은 이리 많은지...또 정차할 때마다 행상인들은 떼로 타 차, 음료는 물론이고 아이스크림, 닭고기스프, 샐러드 심지어 라디오, 손전등, 옷, 기념품,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시장이 따로 없다.

 

그  중 나의 눈을 번쩍 뜨게 한 것은 후라이츠치킨 행상인이었다. 정말 몸집이 거대한 아줌마가 타더니 마치 무사처럼 정육점에서 사용하는 거대한 사각칼을 허리춤에서 꺼냈다. 그러더니 주문을 받은 후 자루에서 닭을 몇 마리 꺼내 목에 걸고 들어온 도마위에 놓고 칼로 탁탁 썰어 봉지에 싸주는데 가관이었다. 물론 손님들에게 인기 만점이었고 감히 다른 행상인들은 그 카리스마에 눌려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것같다. 

 

어둠이 걷히고 땀띠가 가득난 엉덩이가 가려워 일어난 나는 아마존 초입의 짙푸른 지평선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벚꽃처럼 흩날리는 무언가가 보이는데..세상에 그게 모두 나비였다. 아침까지도 행상인들은 기차가 멈추면 기차를 점령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렇게 나의 볼리비아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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