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에서 푸노로 가는 버스는 말 그대로 정말 로컬버스다. 보따리를 하나 가득 실은 잉카 여인네들과 까무잡잡한 시골 아저씨들로 꽉 찬 버스는 터미널도 아닌 곳에 수시로 정차하며 사람을 태운다. 덕분에 한 자리에 3명이 앉아서 가기도 하고 일부는 통로에 앉기도 한다. 도대체 정원이란 개념이 없다.
정차한 버스에 때로 장사아치들이 타고 한 구간을 같이 동행하며 옥수수, 닭고기, 빵 등을 파는데, 그 자리에서 주문받은 즉시 칼로 고기를 탁탁 썰어 비닐에 싸주는 풍경이 참 낯설다.
차 밖 풍경은 정말 소문대로 아름답다. 이 구간은 차밖 풍경을 위해서라도 낮에 타야한다고 해서 일부러 14시 출발 버스를 탔다. 안데스 산맥을 따라 해발 4천미터 구간을 달리는데, 물론 날씨는 여름인데도 매우 춥다. 하지만 널따란 초원과 안데스의 만년설이 쌓인 고봉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풍경은 이국적이다.
21시, 버스는 마침내 푸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하늘엔 쏟아질 듯 별들이 반짝인다. 비가 왔는지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추운게 빨리 숙소에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터미널에 모여있는 삐끼들과 흥정해 적당한 위치와 가격을 제시한 숙소로 직행......피곤한 몸은 눕자마자 바로 시체로 돌변....아침까지 움직이지도 않고 잘 잤다.
아침 6시 어제 예약했던 티티카카호수 투어를 하러 숙소앞 버스에 올랐다.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낱씨가 쾌청하고 맑다. 항구에 도착한 후 다시 배로 갈아타고 티티카카호수로 나갔다.
티티카카호수라....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정말 꿈에서나 그리던 곳이었다.
유람선 지붕에 설치된 의자 제일 앞에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데, 머리위에 떠있는 구름하며 저멀리 햇볕에 반짝이는 섬들은 마치 미야자키의 만화 속 풍경같다.
배는 약 30분을 달려 우로스섬에 도착했다. 이 섬은 워낙 유명한데,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섬같았다.
모든 게 토토로라고 하는 갈대로 만들어져 있다. 바닥도, 집도...그리고 조잡한 민예품을 만들어파는 상인들만 있을 뿐이다.
섬은 걸을 때마다 푹신푹신한게 느낌이 묘하다. 밑부분이 썩어가니 자주 갈대를 보충해주어야 한다. 섬 주변이 온통 갈대밭이다.
주변 섬에 보면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보인다. 그런데 여기도 문명의 바람이 불긴 했나보다. 갈대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함석지붕도 올린게 꽤 현대적이다. 앞쪽에 보이는 건 화장실...
사람들은 토토로로 만든 배를 역시 타고 다닌다. 뱃머리는 용머리처럼 만들어놓은 게 재밌다. 다시 먹구름이 끼는 데 이것은 이날 발생한 험난한 여정의 암시였는지 모르겠다.
우로스 섬에서 다시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타켈라 섬이다. 고래처럼 생긴 섬인데,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호수 풍경을 감상하면서 오후 3시경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푸노가는 길은 정말 공포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좋던 날씨가 돌변한 것이다. 마치 거대한 폭풍우가 온 것처럼 비는 세차게 쏟아지고 바람은 잔잔하던 호수에 파도를 일으켰다. 모두들 배 선실로 모였는데 떨어지는 빗소리가 선체에 부딪히는 소리와 가끔씩 틈사이로 새 들어오는 빗방울이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했다. 또한 앉아있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는 뱃속에서 사람들은 모두들 손을 꼭 쥐어잡고 누구는 기도를, 누구는 울음을 그야말로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끔 한 기나긴 3시간이었다. 마침내 배가 육지근처 갈대밭 속으로 들어서자 파도가 잔잔해졌다. 항구가 보일 때에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비도 개기 시작한다.
그런데 정말 감동한 것은 사람들의 매너였다. 가이드는 한 사람씩 빠짐없이 챙겨주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금새 친구가 되어 웃고 장난을 친다. 아까 비가 왔을 때에는 어느 딸과 같이 여행온 엄마가 그들의 비옷을 벗어 비를 맞으며 키를 잡고 있는 소년들에게 입혀주었다. 배가 흔들리자 아르헨티나에서 온 청년은 배낭에서 과자를 꺼내 모든 사람들에게 돌리며 안심을 시킨다. 암튼 오늘 투어는 막판에 힘들었지만 처음의 날씨만큼이나 유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 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달릴 때는 비가 왔는데 국경에 도착하자 금새 날이 갠다. 내리자마자 숙소를 잡고 - 호수가 내다보이는 멋진 방이다 -태양의 섬으로 가는 배를 타러 부둣가에 갔다.
새하얀 구름, 새파란 하늘과 청록빛 바다......먼지 하나 끼지 않은 듯 선명한 색이 온통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곳은 정말 바다라고 해도 믿겠다. 파도도 치고 볼리비아는 내륙국가임에도 이곳을 근거지로 해군도 있다.
마침내 태양의 섬에 도착했다. 여기는 잉카의 발원지라 불리는 곳이다. 저 멀리 달의 섬도 보인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본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게다가 물소리, 새소리까지 곁들어지니 천국이 따로 없다.
태양의 섬에 나 있는 잉카의 계단......
태양의 섬에 있는 태양신전......
유적은 자그만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포스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신전의 반대편......
이제 남미의 티벳..볼리비아가 펼쳐진다......또 어떤 것을 보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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