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커다란 보름달은 독특한 존재이다. 우리에겐 풍요의 상징이나, 서양인에겐 늑대인간이 활동하는 불길한 징조인 보름달은 지구주위를 공전하는 위성일 뿐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달의 자전과 공전주기가 일치하면서 지구상에선 절대 달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태양보다 400배나 작지만 오묘한 거리차이로 인해 지구에서는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 가능할 정도로 그 크기가 동일하게 보인다. 우연이라 하기엔 신비롭게 보이는 현상들은 갖가지 상상력을 자아냈다. 나중에 아폴로 우주선이 달 뒷면에서 UFO를 봤다는 얘기들이 나오면서 달은 UFO기지 또는 외계인들의 지구감시를 위한 인공위성이란 설까지 등장했다.
아폴로 11호의 인류최초 달착륙도 이러한 음모론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소련보다 뒤쳐졌던 미국의 우주개발 기술이 단기간에 달착륙까지 가능할 정도가 된 것도 의심스럽지만, NASA가 달착륙 이후 최초 공개한 영상에는 달의 하늘이 파랗고 성조기가 휘날렸으며, 암스트롱이 우주복을 머리에 쓰지 않고 돌아다녔다는 점들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건 바로 공기가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물론 NASA는 이 자료들을 즉시 회수하고 현재 우리가 보는 사진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있지도 않은 달착륙을 지구상 어디선가 조작하면서 실수를 했던지, 아니면 달에 진짜로 대기와 공기가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가 감추려 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중력이 지구의 1/6 정도인 달에 건물을 짓는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 분명 다른 재료, 다른 구조, 다른 공간배치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건축을 한다는 것은 형태, 공간, 색채, 재료, 구조 등을 복합적으로 구성하고 여기에 철학과 관념을 더해 완성하지만, 가장 원초적으로는 중력의 지배를 받아 일차적인 모양을 갖추게 된다. 어쩌면 건축은 지구의 중력장이라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스스로의 한계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며, 거꾸로 말하자면 건축은 중력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벽을 세우고 지붕을 들어올려 땅과 지붕사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그것은 바로 중력을 이겨낸 인류의 최초 행위일지 모른다. 이후 건축은 어떻게하면 더 높은 공간, 더 넓은 공간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랍에서 고안한 아치를 로마는 기둥위에 올려놓음으로서 지진에 안전하면서도 더 높은 천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치를 횡방향으로 길게 잡아 빼면 볼트가 된다. 기둥사이의 간격을 벌리면서 내부에 대공간을 만든 것이다. 또 이 아치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회전시키면 돔이 된다.
<고인돌 - 무거운 돌을 지붕삼아 들어올려 내부공간을 창출>
<기둥위의 아치(좌) - 기둥위에 보를 설치하는 것보단 더 높은 실내공간 창출이 가능해졌다.>
<기둥위 아치를 횡방향으로 확장시켜 만든 볼트(Vault)구조(우)>
돔 구조의 최고봉은 로마의 판테온이다. 지름 43.2m의 둥그런 공이 내부에 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2세기에 지어진 이 만신전(로마가 주신으로 받드는 12신을 위한 신전)은 여러 신들을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 원형의 평면을 구상했고 이를 위해 돔을 사용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아치에서 확장된 돔은 모든 부재가 압축력을 받게 되어 꼭대기부분이 구조적으로 제일 취약할 수밖에 없다.(이는 우리 석굴암의 본존불 바로 윗부분의 돔중앙에 설치한 돌에 금이 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로마인들은 그래서 이 부분을 비워버렸다. 뻥 뚫린 구멍은 의외의 효과를 주었다. 우선 창문하나 없는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채광창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도 강한 직사광선이 들어와 하루 내내 12신을 번갈아가며 비추어주게 된다. 또한 입구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상승기류를 타고 빠져나가는 환기구역할도 한다.(이 때문에 실내에는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 그야말로 기능과 설비, 구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로마 판테온의 단면도(좌), 건립당시를 그린 상상도(우) - 현재도 건물은 원형그대로 로마에 남아있다. 12신상은 제거되고 성당으로 사용되는데, 라파엘로 등의 무덤이 있다.>
로마인들이 무거운 돌을 가지고 이 높은 돔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치의 힘이었다. 판테온 바깥 외벽을 보면 벽을 아치형태로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아치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도 동일 석재를 사용해 전체적으로 편평한 벽을 만들었지만 이는 힘을 받지 않는 부분일 뿐이다. 내력부분(힘을 받는 부분)과 非내력부분(힘을 받지 않는 부분)의 구분이 등장한 것이다.
<판테온 외벽부분 - 자세히보면 벽 속에 숨겨진 아치가 보일 것이다.>
돔은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된다. 건축가는 돌로 쌓을 수 있는 돔의 높이에 불만족했는지, 더 높은 성당을 만들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돔을 반으로 갈라 거리를 띄운 다음 그 위에 다시 돔을 올려놓은 것이다. 당연히 높이도 너비도 기존의 2배가 되었다.
<이스탄불의 하기야소피아 외관(좌), 평면도(중), 내부모습(우) - 평면도를 보면 원을 쪼개 형성된 반원 사이로 또다른 원이 들어가 있는 것이 보인다.>
아치로 이루어진 볼트도 진화를 하기 시작한다. 볼트 역시 모든 곳에서 압축력을 받는 부재이므로 어느 한 부분이라도 구멍을 뚫어 창문을 낼 수는 없다. 따라서 볼트에서의 쟁점은 창문만들기였다. 결국 로마사람들은 볼트와 볼트를 직각으로 교차시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흔히 교차볼트(크로스볼트)라고 불리우는데 이 구조로 인해 아치는 횡, 종의 양방향으로 확장이 가능해졌다. 중세시대 성당이 아치(원형아치)와 교차볼트로 지어진 로마의 바실리카(집회장) 양식을 활용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이 시작된다.
<볼트의 진화 - 위에서부터 차례로 일반볼트, 교차볼트(아치가 반원형), 그리고 리브볼트(아치가 뾰족한 첨두형)>
<로마네스크 건축물의 외관 - 원형 아치 사용, 벽에 창문이 별로 없고 무거워보이며 규모가 작다>
그러나 파리를 중심으로 상공인들과 교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국왕들은 뭔가 자신들의 자본력과 위세를 자랑할 만한 기념비적 건축물이 필요했고 여기에 로마네스크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들은 원형아치 대신 아치의 꼭대기를 뾰족하게 늘린 첨두형아치를 고안했고, 내력벽을 지지대 형식으로 바깥에 설치하여 비내력벽과 구분하면서, 벽의 높이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볼트도 전체를 일체형으로 만드는 대신, 모서리면을 먼저 구조부재로 잇고 나머지 부분은 얇은 돌들로 채워넣었다.(모서리면의 구조부재가 마치 갈비뼈와 같다 해서 이를 리브볼트라 한다.) 고딕건축에서의 기술적 진보는 놀라워서 마치 중력하에서 인간이 돌로 지을 수 있는 최고 높이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리브볼트(Rib Vault)의 모식도와 그 사용례 - 뼈대는 후기로 갈수록 더 화려해진다.>
<첨두아치 사용례 및 쾰른성당 - 첨두아치, 수많은 창, 높은 천장, 거대한 규모>
재료가 돌에서 유리, 철골, 콘크리트로 바뀐 근대시기의 새로운 축조방식을 보여준 건축물은 바로 미스반데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다. 멋대로 놓인 벽들은 이제 구조재가 아니라 표피로서의 의미만 남은 것을 상징한다. 하중은 가느다란 기둥 몇 개가 감당한다. 천장도 자유롭게 벽과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강조하듯 건축가는 그 틈새로 새들어온 빛을 손으로 가린 여신상을 두는 센스까지 보여주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 엑스포 독일관으로 지어진 건물로 몬주익 언덕 입구에 있다. >
한편 르꼬르뷔제는 벽없이 기둥과 슬래브로만 구성된 도미노시스템을 새로운 재료에 걸맞는 새로운 축조방식으로 선보였다. 그러나 벽, 기둥, 보, 슬래브(바닥판), 계단이라는 독립된 구조부재가 결합되는 선사시대부터의 축조방식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르꼬르뷔제의 도미노시스템-기둥, 슬래브, 계단으로 구조부재 최소화>
그러나 벽의 기능과 형태가 재정의�던 것처럼 모더니즘의 정형화된 축조방식이 해체되면서 나머지 구조부재들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동시에 구조부재들은 하이브리드화(혼용화)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프랭크 게리의 프라하 네덜란드보험회사 빌딩은 차라리 순진하다. 그의 또다른 빌바오 구겐하임에 가면 벽과 기둥, 슬래브의 구분을 하는 게 어리석어진다.
<프랭크 게리의 네덜란드보험회사 빌딩(좌) 및 빌바오 구겐하임(우)>
MVRDV의 Villa VPRO는 슬래브를 말아올려 벽을 만들기도 하고 위층과 계단대신 연결하기도 한다. 덕분에 뜻하지 않는 아트리움도 생기고, 마치 언덕과도 같은 풍경을 제공하며 외부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이겠다는 건축가의 컨셉을 구현한다.
<Villa VPRO의 내부 - 말아올린 슬래브(좌), 들어올려 위층과 연결된 슬래브(우)>
한국과 일본의 전통 건축물의 축조방식은 같은 듯 다르다. 서양에서처럼 ‘더 크게 더 넓게’를 추구하진 않았지만, 양국의 건축물은 분명 크기에서 차이가 난다. 이를 두고 일본의 건축기술이 더 발전했다고 감히 말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기본적으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목재를 짜맞추듯 지은 가구식 건물로 왕궁, 절 등이 지어졌다. 즉 축조기술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크기를 결정지은 것은 다름 아닌 자연환경이었다. 여름보단 추운 겨울을 견디려 했던 한국의 가옥들은 진흙으로 속을 채운 무거운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다. 당연히 집이 높이 올라갈 리 없다. 그러나 일본은 별로 춥지 않은 겨울보단 습기많고 무더운 여름을 견디기 위한 건물을 짓는다. 무거운 진흙을 채우지 않은 목재로 간단히 구성된 가벼운 지붕은 더 높은 건물을 가능케 했다. 물론 텅 빈 천장이 통풍을 유도해 습기도 해결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목조건물이라는 일본 나라의 도다이지 - 여기서도 수평성은 두드러져 보인다.>
또한 지진이 많은 일본은 수평부재를 많이 사용한다. 우리처럼 기둥과 기둥사이로 쏙 숨어버리는 보가 아니라, 기둥위를 덮어서 전체 건물을 감싸버리는 보를 사용해 멀리서보면 수평의 힘이 압도적이다. 또한 이 수평부재를 이용해 여러 채의 건물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를 구성한다. 덕분에 교토의 니조조같은 곳은 내부에 넓은 대공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교토의 니조조 - 도쿠가와 시대에 지어진 쇼군의 거처로, 여러 채가 아닌 한 덩어리의 거대한 집>
이처럼 건축에서의 축조의 결과는 중력의 한계내에서 시대적, 환경적 요구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표현되어왔다. 그런데 내부는 생산과정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획일적인 도미노시스템과 사각큐브로 만들어놓고 외벽을 눈속임하듯 화강암이나 대리석으로 덮어버리는, 또는 알루미늄패널과 유리로 대충 외벽을 씌우고 첨단건축물이라 우기는 우리네 요즘 건축물을 보면서 축조에 대한 고민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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