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건축은 중세이후 고딕과 로마네스크,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치게 됩니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건축은 무거운 석재라는 한정된 재료를 가지고 더 크고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축조방식에 관심을 보인 시기였습니다. 그리스로마 건축의 재발견이라 일컫는 르네상스기 건축가들은 비례와 조화, 대칭과 안정, 휴먼스케일을 통해 이전 시기 발전된 기술을 활용한 조형미학에 관심을 가졌고 그 정점은 미켈란젤로 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미켈란젤로는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로서 바티칸 성배드로대성당과 로마시대 원로원이 있던 캄피돌리오 언덕을 멋진 광장으로 설계했습니다.
<미켈란젤로 도안의 이태리 1만리라(1962-73) 앞면과 뒷면의 캄피돌리오 광장>
그리고 바로 그 때 이제 건축에서 나올 것은 다 나왔다며 푸념하던 건축가들은 건축의 발전에 회의를 보이면서,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됩니다. (극과 극은 통하나요?) 일부러 비례를 일그러뜨리고 대칭을 깨뜨려보는 과정 속에서 르네상스의 정적인 공간에 대비되는 역동적 공간이 탄생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바로크의 시작입니다. 'baroque', 말 그대로 '기괴한' 건축은 뒤틀린 공간, 과거의 것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장식들로 채워져갔고, 이로 인해 축조방식(고딕, 로마네스크)와 조형미학(르네상스) 시기에 이은 공간미학(바로크)을 창출하며 근대주의와 맞닿게 됩니다. 바로크는 주로 독일 등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는데 노이만은 독일을 대표하는 바로크 건축가 중 한명입니다. 그가 설계한 뷔르츠부르크의 궁전, 성당 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또 한 명 베르니니는 르네상스적인 '원'이 아니라 이교도적인 '타원'을 모티브로 성배드로성당 전면 광장을 구성하게 됩니다.
<노이만이 도안인 독일 50마르크(1993) 앞면과 뒷면>
<베르니니가 도안인 이태리 5만리라(1992) 앞면과 뒷면>
바로크의 전성기가 되면서 건축가들은 또 한 번 이제 더이상 나올 게 없다며 과거의 것을 베끼기 시작했습니다.(역사는 리바이벌된다고 했던가?) 그리스로마 양식을 추종하던 신고전주의(베를린 국립박물관), 고딕양식을 추종하던 낭만주의(영국의 국회의사당), 과거의 양식을 짬뽕하여 표현한 절충주의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당시 그러한 양식이 출현해야 했던 시대적 고민은 무시한 채 장식적 차용 등에 치우치면서 많은 비판을 받게 됩니다.(우리도 마찬가지죠...기둥위 공포구조와 기와지붕은 흙과 나무로 이루어진 한옥에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전통을 계승한다며 콘크리트로 똑같이 복제해놓은 건물에서는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지죠) 암튼 건축의 변방 영국에 나타난 크리스토퍼 렌이란 건축가는 르네상스 양식의 돔과 바로크 양식의 종탑을 버무려 런던에 세인트폴 대성당이라는 절충주의 건축물을 짓게 됩니다.(영국인들은 이 건축물이 성배드로성당에 이어 2번째로 크다며 자랑스러워했다네요...철학이 빈곤하면 규모나 순위가지고 우쭐대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인가봐요) 어쨌거나 '스위니 토드(팀버튼 감독)'라는 영화에 보면 이 건물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데 당시 런던의 거의 독보적인 랜드마크였죠...
<크리스토퍼 렌과 세인트폴 대성당이 도안인 영국 50파운드(1983-94) 뒷면>
20세기 초 더 이상의 진보는 없을 것같던 건축계에 크나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건축물의 주요재료가 무거운 석재에서 철, 유리, 콘크리트 등의 대량보급으로 다양화되고, 산업혁명은 기계적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습니다. 예술계에서 공장의 대량생산은 큰 이변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수공예적인 장인정신의 명품이 사라지고 값싼 저급의 디자인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게 된 것이죠...이 시기 화가나 건축가들은 모두 예술의 수공예적 전통과 대량생산의 기계적 방식을 어떻게 볼 것인지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과거의 ~주의 또는 ~양식이 모두 사라지면서 많은 시도가 일어나게 됩니다.(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그 중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아르누보'입니다. 담쟁이 넝쿨처럼 꼬불꼬불한 선이 특징인데 '철'이란 재료가 지닌 가소성(마음대로 구부러지는 성질)을 최대한 활용하되, 수공예적 방식으로 장식에 응용하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르누보는 크게 2개 지역에서 등장합니다. 최초의 아르누보 건축물은 벨기에의 빅터 오르타가 설계한 '타셀 하우스'이구요, 또 하나의 지역은 비엔나입니다. 특히 비엔나의 아르누보는 제세션(분리라는 뜻-즉,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파라고도 불리는 데 화가 클림트 등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건축가로서는 오토 바그너가 있는데 비엔나 우편저축은행을 설계하면서 유리란 재료를 활용하여 반투명적인 실내공간을 거의 최초로 도입하였습니다.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로선 획기적인 것이었죠. 아르누보 시기 또 한 명의 유명한 건축가는 바로 스페인의 가우디인데 그의 대표작 '성 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이 100년을 지어왔고 앞으로도 200년은 더 지어야 한다는 말은 바로 수공예적 건축방식을 과장하여 일컫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새로운 재료와 공업기술, 그리고 생산방식은 이제 전혀 새로운 건축을 이끌어가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더니즘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시간나면 언젠가 계속 이어집니다...to be continued....)
<빅터 오르타 도안의 벨기에 2천프랑(1994-) 앞면과 뒷면의 아르누보 장식 도안>
<오토 바그너 도안의 오스트리아 500실링(1983) 앞면과 뒷면의 비엔나 우편저축은행 도안>
**참고로 여기에 있는 사진들은 모두 Ron Wise's Banknoteworld에서 가져왔습니다.(단 영국 50파운드는 구글 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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