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예와 기계적 생산방식의 결합방안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던 20세기초 초기 아방가르드 시기, 몬드리안 등이 중심이 된 네덜란드의 ‘데스틸(The Style)'과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예술에 기계문명을 적극 도입하자는 등 유럽은 이전과는 다른 형식의 예술, 다른 건축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정리되면서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이 바로 모더니즘입니다. 이 시기 2명의 스타가 등장하는 데 바로 에펠과 르꼬르뷔지에입니다.
<몬드리안의 추상화>
에펠은 시대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인물입니다. 철과 콘크리트 등의 신재료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규모의 교량 등 구조물의 건축을 가능케 해주었는데, 여기서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파리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2회 만국박람회 장소에 그간의 기술성과를 자랑하듯 높은 첨탑을 세웠습니다. 바로 에펠탑입니다....바벨탑 이후 아마 그렇게 높은 인공 구조물을 처음 봤을 파리시민들은 경악했고 박람회 이후에는 철거될 운명이었으나 다행히 방송수신탑의 기능이 필요해져 지금까지 남게 되었습니다.
<에펠 도안의 프랑스 200프랑(1999) 앞면과 뒷면의 에펠탑 도안>
에펠탑은 디자인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구조공학을 통한 정밀한 계산을 통해 그 형태가 결정되면서 건축(Architect)과 기술(Engineer)이 분리된 최초의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당시 파리에서는 ‘에꼴 데 보자르’라는 아카데미에서 건축전통이 이어져 왔고, 이 학교에서의 중요 커리큘럼은 건물정면(흔히 ‘파사드’라 부르는)을 어떻게 화려하고 장식적으로 설계할 것인가 였습니다. 당연히 구조기술을 디자인 우위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죠.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은 오래전부터 건축계의 또다른 숙제였지만 이때부터 건축가와 기술자, 건축과 토목간 영역이 확실히 구분되어 버린 것은 기계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 중 하나였으며, 에펠과 에펠탑은 그 시초라 할 수 있는 건축가와 건축물입니다.
또 하나의 특별한 충격은 에펠탑에 설치된 나선계단에 있었습니다. 예전의 건물들은 하나의 시점, 하나의 파사드만 있었습니다. 이는 중세의 절대적 시각(당연히 ‘하나님’의 시각이겠죠?)에 따라 건축가가 보여주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한 방향에서 전달해주는 것이었죠. 철저히 사람이 소외된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펠탑의 나선계단을 오르던 사람들은 계단을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과 탑의 모습에 새로운 경험을 한 것입니다. 이때의 충격을 화가 들로네는 아래와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다초점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시각적 변이에는 당연히 이동이라는 개념과 시간이라는 개념이 혼재되어 있고 그것은 바로 입체파의 탄생과 맥이 닿아있습니다. 건축의 투시점이 절대적인 것에서 상대적인 것으로, 신에서 인간으로 바뀐 것은 다윈의 진화론만큼이나 인간에겐 혁명적 변화였죠...에펠탑이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기념물은 아니랍니다.....
<에펠탑 나선계단과 들로네의 에펠탑 연작 중 하나>
르꼬르뷔지에는 근대건축(모더니즘)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사람입니다. 그는 콘크리트라는 재료를 활용하는 새로운 건축모델을 정립합니다. 예전에는 벽을 세워야만 건축이 가능한 건축물이 이젠 기둥 몇 개만으로 지탱이 가능해지면서 필로티(벽없이 기둥으로만 된 1층 공간), 평지붕 등이 가능해졌으며 이제 자유자재로 설치가 가능해진 벽을 가지고 건축가들이 조합할 수 있는 어휘가 풍부해졌습니다. 그는 정확히 필요한만큼의 구조와 당위성을 지닌 형태로 이루어진 기계들(선박, 항공기, 자동차 등)을 찬양하면서 덕지덕지 붙은 장식들을 제거하고, 기능과 디자인, 구조와 미학의 결합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원래 입체파 화가로 출발한 이력에서 보듯, 그가 설계한 건물들은 휴먼스케일을 통해 실제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시선을 섬세하게 다루었으며, 건축어휘들의 조형적 구성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그의 건축물에 들어서면 어디에서건 마치 한 폭의 완벽한 그림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그가 제시한 모델은 전세계적인 호응을 얻으며 소위 ‘인터내셔널 양식’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르꼬르뷔지에 도안의 스위스 10프랑(1996) 앞면과 뒷면의 그의 건축물 도안>
<르꼬르뷔지에가 제시한 휴먼스케일의 모듈러와 그의 작품중 인도 찬디가르의 국회의사당>
그러나 문제는 그의 숭고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그의 건축모델이 대량생산에 적합하다는 점을 간파하여 모든 어휘는 잘라버린 채 육면체의 네모반듯한 획일적 건물들만을 양산하게 됩니다. 비록 2차 세계대전 직후 주택난을 해결하려는 시대상황에 따른 것이긴 하나,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태생적 한계일 수도 있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반발이 시작된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삭막하게 변질된 모더니즘을 다시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자는 운동은 세계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데 단연코 이들 중 제일 앞에는 핀란드의 알바 알토가 있습니다. 그는 모더니즘의 직선을 거부하고 핀란드의 호수가 만들어내는 유려한 곡선을 건축에 도입하였는데 그가 설계한 핀란디아홀을 비롯해 여러 건물들과 인테리어 가구들을 보면 그의 그러한 경향이 잘 드러난다. 이 밖에도 멕시코의 바라간, 인도의 코레아, 일본의 안도 타다오 등이 자국의 특성을 잘 살린 새로운 건축물들을 설계해나가게 됩니다.
<알바 알토 도안의 핀란드 50마르카(1986) 앞면 및 뒷면의 핀란디아 홀 도안>
<실제 헬싱키의 핀란디아 홀(음악당)과 그가 설계한 의자>
(현대에 등장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또는 해체주의 등의 경향도 재미있는데 아쉽게도 지폐에는 관련 건축가나 건축물이 없네요...담에 시간되면 지폐랑 상관없이 한 번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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