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우리 나라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일한 궁궐이다. 원래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거의 정궁의 역할을 대신했다. 경복궁이 중국의 주례고공기에 의거해 형식을 갖춘 반면 창덕궁은 우리 산세에 얹혀 축조되면서 특유의 풍수지리와 자연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된 특징을 갖고 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면 명당수가 흐르는 금천교를 지나 궁 내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돈화문 방향에서 본 금천교의 모습이다.
금천교는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석교로 다리 하나에도 세심한 배려가 깃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유산 중 하나이다. 다만, 명당수가 흐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금천교 네 귀퉁이에는 이렇게 석물이 조각되어 있다. 너무 귀엽고 익살맞은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금천교 아래에는 남측에 거북, 북측에 해태상이 있다. 명당수를 타고 들어오는 악귀를 쫓아낸다는 믿음을 상징하는 것인데, 사실 폭우 등으로 세진 물살이 교각에 부딪히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역할도 한다.
또한 교각에는 잡귀를 쫓는 도깨비 얼굴이 부조되어 있다. 근데 도깨비 얼굴을 보면 잡귀가 웃음을 참지 못해 선한 귀신이 되버릴 것만 같다....^^
금천교를 건너면 이제 본격적인 구중궁궐로 들어가게 된다. 문을 금천교의 축에 똑바로 맞추지 않고 살짝 틀어놓아 역동적이면서 속내를 다 드러내보이지 않도록 배려된 센스~
금천교를 건너자 회랑 너머 인정전의 위용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맛보기 효과'-나름 내가 건축공간에 붙인 이름이다. 저 건너편의 공간을 암시하며 사람의 동선을 이끌도록 하는 방법
궁궐의 가장 중심공간인 인정전은 바로 사진의 왼쪽 솟을대문으로 되어 있는 인정문을 통해 들어가게 된다. 경복궁의 예와 같이 광화문-홍례문-근정문-근정전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게 되는 성리학적 궁궐의 형식이 파괴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공간인 인정전은 산세를 등지고 남측을 바라보도록 설계되었다.
근데 이 공간 참으로 재미있다. 중요한 공간으로 건너가기 바로 직전에 만들어진 대기공간인데, 가만히 보면 네 면이 모두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직사각형이 아니다. 처음 내가 금천교를 건너 들어온 문(진선문)이 있던 벽의 길이가 길고 바로 맞은편 문(숙장문)이 있는 벽의 길이는 짧은 사다리꼴 형태의 공간이다. 즉, 좁은 공간이 투시도효과로 인해 더 깊고 길게 보이는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금천교 건너 진선문을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인정문(좌측)과 맞은편의 숙장문>
자 이제 숙장문으로 들어가 볼까....궁금궁금!!
아 참~숙장문 너머 들어가기 전에 궁궐에 왔으면 봐야 하는 정전은 보고 가야지....여기가 바로 창덕궁의 정전, 인정전...왕들이 즉위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고 국가의 경축행사를 벌이던 바로 그 곳이다.
행사시에는 동쪽(오른쪽)에 문관, 서쪽(왼쪽)에 무관이 품계별로 자리를 잡고 서게 된다. 이때 문득 든 잡념 하나....지금 청와대 본관도 집무실을 중심으로 양 사이드가 뻗어나간 'ㄷ'자 형태로 지어져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동쪽(오른쪽)이 충무실, 서쪽(왼쪽)이 세종실이다. 즉 예전 문과과 무관의 개념이 바뀌어 있는 것이다.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회랑을 돌며 바라본 인정전 건물......인정전 앞 마당은 나무 한 그루 없을 정도로 굉장히 상징적 공간이므로, 중요 행사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함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따라서 모두들 이렇게 회랑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 때 또 문득 든 잡념 둘......불국사에 가보면 대웅전 등 주요 불당을 중심으로 회랑이 둘러쳐져 있다. 즉 신라시대만 해도(백제의 미륵사도 마찬가지이다.) 회랑은 절에서 공간을 구획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어느 순간 절에서 회랑이 사라졌다.(궁궐에는 남아 있는데......)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경복궁 근정전도 그렇지만 궁궐의 정전이 가지고 있는 이 설명할 수 없는 비례감각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지붕, 공포, 문창살, 석조단 등 모든 하나하나의 요소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아우라일 것이다.
인정전 올라가는 계단에 놓여있는 석물......이 엄격하고 보수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에 정말 파격이다. 여기까지도 귀염둥이 동물이 익살맞게 놓여있다니......
저 콧구멍 좀 봐라...ㅋㅋㅋ......왼발이 더 크네....대칭을 살짝 비틀어댄 궁궐 건축가의 센스......
인정전 너머로 선정전 지붕이 보인다. 그런데 우와~'청와대'다......궁궐 내 유일하게 청색 기와로 만들어진 집이다. 바로 임금님이 업무를 보던 곳인데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라는 소리가 몇 천번 울렸을 공간이다.
선정문에서 선정전까지는 임금님께서 비에 맞지 마시라고 이렇게 차양을 설치해놨다.
담벼락도 그냥 두지 않는 센스~정말 세세한 것까지 신경썼던 조상들의 지혜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선정전을 지나면 희정전이 나온다. 침실이 딸린 또다른 업무실이었으나, 나중에는 회의실로 사용되었다 한다. 안타깝게 20세기 초 화재로 소실되어 일제가 경복궁의 강녕전을 이리로 옮겼다. 왠지 모르게 경복궁 전각들을 없애기 위해 창덕궁에 화재를 낸 것같은 냄새가 나는데~킁킁
캐노피(차양)처럼 한옥 처마의 가운데를 길게 뺀 것은 예전에는 볼 수 없는 양식인데, 알고 보니 자동차가 도입되면서 차를 댈 필요때문에 변형된 것이라 한다. 마치 호텔 입구에서 자동차를 내리는 손님이 비를 맞지 않도록 하려고 차양을 길게 뺀 것처럼......
창덕궁의 굴뚝......너무 아름답지 않은가......굴뚝도 이만하면 보물감이다....
창덕궁 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여러 채의 전각들이 중첩되면서 묘한 공간감을 낳고 있다. 우리나라의 바로크 공간이라 부를 만하다. 마치 저 뒤편에서 음모를 꾸미는 모략꾼이 아직도 임금을 염탐하고 있을 것만 같다......ㅋㅋㅋ
짜잔~여기가 바로 궁궐 내 가장 은밀한 장소, 바로 임금님과 왕비의 침전이다. 이 건물도 일제시대 때 화재로 소실되어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 지었다. 옆에는 수라간도 있다.
침전 건물은 특이하게도 용마루가 없다.(경복궁의 교태전도 마찬가지다) 용마루란 지붕 제일 꼭대기에 수기와를 쌓아올린 것으로 마치 지붕의 척추와 같은 형태를 지닌 것이다. 용마루가 상징하는 '용'이 임금님(용)과 함께 두 마리가 되면 서로 충돌하게 된다는 믿음에서였다.
창덕궁의 후원......경사지를 이용해 계단식 테라스를 만들고 거기에 조경을 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조경형식인 것이다.
조경에 대해선 잘 모르나 꽃과 나무를 심는 것도 일정한 규칙이 있는 듯하다.
이제 슬슬 후원으로 들어가 볼까......비원은 일제가 만들어놓은 말이다. 마치 궁궐내에는 온갖 암투와 비밀과 모략만 있는 것처럼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다. 또는 에로틱하기까지 한 단어다.
역시 후원입구는 다른 문들하고는 틀리다. 장소에 따라 문도 다르게 설치하는 센스......경사가 급해 계단을 일직선으로 만들지 못하고 비스듬하게 만들어 더욱 운치가 있다. 바로 이런게 창덕궁의 맛~
한국의 로마네스크 건축 또는 파리 개선문의 한국판이라고 해도 될까....완벽한 비례에 원형아치와 절제된 듯 화려한 문양과 색깔이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든다.
여기는 후원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부용지라는 연못 옆에 있는 영화당이란 건물이다. 바로 이 영화당 앞(춘당대라고 부른다)에서 임금님이 참석하는 특별 과거시험이 행해졌다. 당시 과거시험은 궁궐 후원에서 많이 치뤄졌나보다.....지금 청와대 내에 있는 '녹지원'(보통 대통령이 외신인터뷰, 야외오찬 등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TV에도 종종 나온다)이 예전엔 경복궁의 후원이었고, 과거시험 장소이기도 했다.
창덕궁 내에서 제일 사진발 잘 받는 부용지와 주합루......경복궁에 경회루가 있다면 창덕궁엔 주합루가 있다. 저기도 기회가 되면 언젠가 꼭 올라가보고 싶은 공간이다.
인공섬이 있는 부용지 모습......한국식 정원의 백미이다. 이를 조금 응용한 것이 바로 용인 호암미술관 내 한국전통정원인 '희원'이다.
부용지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부용정
후원에는 연못과 정자들이 참 많다.....관람정이라 한다....아니,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정자를 저기에 설치한 이유는 저기에 앉아보면 된다. 그리고 그 느낌이 바로 창덕궁이다....
관람정은 우리나라 유일의 부채꼴 정자라 한다. 주변 환경이 주는 느낌에 따라 그것을 최대한 포용하고 표현할 줄 아는 지혜......규칙을 존중하나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아는 자세......그러나 지금 그 조상의 후예들은 돈만 벌 수 있다면 사용할 사람이야 어떻든 싸고 빨리 지을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네모박스 아파트로 평지건 구릉이건 서울을 온통 도배해놨는데....도대체 전통, 전통하더니 뭘 배운걸까? 콘크리트 건물위에 기와지붕 올린다고 전통은 아니다......
잔디밭 사이로 낸 길...그런데 길이 재밌다. 팔자 걸음을 걸으란 소린가....ㅋㅋㅋ
어느게 하늘이고 어느게 연못인가...... 정말 이곳에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이제 옥류천까지 다 왔다.
옥류천은 후원 중 가장 상류에 있는 개천을 말하는 데 그 중 소요암이란 바위에 떨어지는 계곡물을 둥근 홈을 파서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어 놨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바로 이건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에선 마치 경주의 포석정처럼 임금과 신하가 빙 둘러앉아 술잔을 띄어놓고 시를 읊어가며 풍류를 즐겼다 한다. 바쁜 국사의 와중에서도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멋이 부럽다......그 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워졌을 텐데 우리는 뭐가 그리 바쁠까? 시를 읊기는 커녕 시집이나 한 권 제대로 읽는 자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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