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이 항상 즐거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신에게 운명을 맡겨야 하기도 한다. 방금 걷던 거리가 폭탄테러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던 예루살렘, 사막의 폭풍을 만나 셀 수 없는 번개가 내가 탄 차 옆에 떨어지던 볼리비아,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잔잔했으나 곧 몰려온 험한 풍랑으로 전복직전의 배에서 가까스로 내렸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돌았던 티티카카호수......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인도의 부다가야(Budgaya)에서 일어났다. 부다가야까지는 바라나시(Varanasi)에서 한나절 기차를 타고 가야(Gaya)까지 간 다음 다시 버스로 세시간을 더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12시간 연착된 기차를 타고 어둑해질 즈음 들어간 가야의 모든 교통편은 이미 끊긴 상태. 하지만 기차를 기다리다 친구가 된 서양 배낭객들과 의기투합하여 다행히 싼값에 합승택시를 빌릴 수 있었다. .
부다가야는 부처님이 득도하신 장소의 마하보디탑을 중심으로 각 나라가 세운 주변의 절들이 많다. 택시는 가난한 배낭객을 위해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는 버마사원 앞에 멈춰섰고, 일행은 여기저기 널브러진 야전침대 하나씩을 차지하고 여장을 풀었다. 그렇다면 한국절도 있을까? 물어보니 있기는 한 모양이다. 기왕이면 한국절에서 묵어야지 하고 무작정 도로로 나섰다. 어딘지도 모르는데 밤중에 도보 이동은 어려워 사이클릭샤(자전거가 끄는 인력거형태의 교통수단)를 무조건 타고 ‘Korean Temple'을 외쳐댔다.
<마하보디대탑, 부다가야>
그런데 아뿔사......어느덧 릭샤는 마을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사람 하나, 불빛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운전사가 강도로 돌변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곧 저 멀리 희미한 불빛 하나가 나타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어선 나를 인도인 스님이 깜짝 놀라며 맞아주었다. 이유인즉 여기는 들끓는 도적떼로 인한 강도와 살인으로 현지인들조차 밤외출을 하지 않는 곳인데 어떻게 왔냐는 게다. 내가 여기 오기 일주일 전 한국절 맞은 편의 베트남절이 떼강도의 습격을 받아 일부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소름이 끼쳐왔다. 되돌이켜 보건데 난 그 때 어둠속 한줄기 빛이 가져다준 마음의 평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 ‘빛’이란 참 오묘한 존재다.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채울 수도 비울 수도 없다. 실체가 없지만 누구나 빛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을 안다. 아울러 공간속의 빛은 내가 의도한 형태만큼 느낄 수는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빛은 건축의 주요한 모티브였다. 빛을 건축에서 다루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절제된 공간에 최소의 장치를 통해 연출된 드라마틱한 빛과 공간에 균질하게 담겨진 유니버셜한 빛이다.
드라마틱한 빛을 위해선 무언가 장치가 있어야 한다. 스페인 똘레도(Toledo)의 대성당에는 제단 상부에 교묘하게 뚫린 천창이 있다. 머리를 들어도 잘 보이지 않지만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은 이 창을 통해 제단을 밝은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냥 ‘밝은 빛’만 있는 게 아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20m는 족히 됨직한 높이를 온통 아기천사들이 얼기설기 뒤엉켜있다. 빛은 천사들의 몸을 훑으며 강한 음영을 통해 아래까지 내려온다. 자칫 어두운 성당내부에 강한 햇빛의 도입으로 눈부심만 있었을 공간을 멋지게 다룬 건축가의 센스가 엿보인다.
<똘레도 대성당의 천창 및 천창 아래 천사조각들, 1493년 作>
추상적인 빛을 구체화된 빛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사리넨’의 MIT대학 채플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아기천사’ 대신 ‘모빌’을 달아놓았는데,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빌덕에 마치 무언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하다. 이는 똘레도 성당을 모더니즘으로 재해석한 명작이라 부를 만하다. 또한 ‘르 꼬르뷔제’의 프랑스 롱샹성당에서는 하얗게 회칠된 제단 뒷벽의 의도적으로 거칠게 마감된 울퉁불퉁한 표면이 ‘아기천사’를 대신한다. 덕분에 장식하나 없는 밋밋한 제단에 쏟아지는 빛은 자신을 이 제단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다. 당연히 빛은 곧 신성, 즉 예수님을 상징하는 메타포가 된다.
롱샹성당에는 빛을 다루는 건축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부분이 또 있다. 바로 주 예배공간에 사용되는 실 남측 벽의 창문들이다. 콘크리트 벽을 최고 3.6m 두께까지 한 다음 비스듬히 창문을 뚫었는데, 그 각도와 크기와 방향이 모두 제각각이어서 이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벽에 걸린 액자처럼 저마다의 개성이 풍부하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의 빛은 더 이상 햇빛이 아니고 ‘건축적 빛’이다.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빛의 교회’는 조금 더 직설적이다. 그는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해 남쪽 제단 뒷벽을 가위로 오리듯 십자형의 창을 냈고, 여기서 쏟아지는 빛은 실로 공간가득 감동을 채운다. 최근 아이파크 타워를 리모델링한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베를린 유대인학살추모관을 설계하면서 매스로 그은 듯 건물벽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이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건물내부를 혼란스럽게 뒤섞어 놓았다. 마치 어지러웠던 나치시대의 독일을 상징하듯....이 공간에 굳이 추모를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 리본을 장식으로 달 필요는 없다. 공간을 압도하는 빛은 여타 부가적인 인테리어를 필요없게 만들어버린다.
<롱샹교회(좌, 1955년 作), 빛의교회(중앙, 1989년 作), 유태인학살추모관(우)>
3. 반면에 서양의 유니버셜한 빛의 사용은 최근에 들어와서부터이다. 제1회 엑스포를 위한 런던의 수정궁(Crystal Palace)은 온통 유리로 뒤덮인 건축물이다. 벽돌등 전통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이 건축물은 배드로성당의 두배 이상의 크기지만 프리패브방식을 이용, 규격화된 유리를 철제 프레임에 붙이는 방식으로 몇 달만에 완공되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내부공간이면서 외부공간같은 이 공간을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크리스탈 팰리스, 1851년 作 - 지금은 화재로 소실>
유리를 이용한 균질한 빛은 아르누보 건축가들의 손을 거쳐 마침내 ‘미스 반 데 로에’의 유니버셜 스페이스(universal space)를 뒷받침하는 공간요소가 된다. 기둥이라는 최소구조로 만든 균질한 실내공간에 어떠한 기능도 담을 수 있다는 이 이론은 사실 사방으로 뚫릴 수 있는 창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뉴욕 링컨센터를 설계한 ‘필립 존슨’은 더 나아가 내부의 유니버셜한 기능은 물론 외부의 경관을 위해 온통 유리로 둘러싼 직사각형의 ‘글래스 하우스(Glass House)'를 설계했다.
<글래스 하우스, 1949년 作>
4. 그러나 우리에겐 오래전부터 이미 수많은 ‘글래스 하우스’가 있었다. 부석사 근처에는 우리나라 제일의 건축작품, 병산서원이 있다. 여느 서원과 다를 바 없는 ‘입 구(口)’자 배치이지만, 이 서원의 압권은 바로 입교당(강의실) 맞은편 주출입구에 가로로 길게 놓인 ‘만대루’이다. 서원 바로 앞 병산과 낙동강을 내부로 끌어들인 이 한국의 ‘글래스 하우스’ 한가운데 앉아 있으면 우리네 조상이 빛과 자연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마루의 기둥과 기둥사이에 창호지를 덧댄 문을 달면 여느 한옥집이 된다. 그런데 이 창호지란 게 참 묘해서 보온과 흡음 등의 효과는 물론 자외선 방지까지 그야말로 웰빙창문이다. 창살을 바깥쪽으로 하여 창호지를 붙이는데 이는 공간을 잘게 나눠 찬 공기의 직접 유입을 막기 위한 지혜였다.(추위가 없는 일본은 우리와 반대로 창살을 안쪽으로 한다. 예전 이순신장군 소재 드라마에서 풍신수길의 거처는 그래서 잘못되었다.) 더구나 창호지는 밖에서 들어오는 직사광선을 부드럽게 하여 내부에 있는 사람 얼굴을 각이 사라진 동글동글한 인상으로 만들어준다. 이렇듯 실내의 균질한 빛에 수백년간 익숙해져왔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유리를 통해 남쪽에서 들어오는 직사광선을 선호하게 되었다.
<병산서원의 만대루와 기둥사로 보이는 낙동강>
우리의 도시는 어느새 모두 남쪽을 향해 기다랗게 사열하듯 늘어선 아파트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남향집이 마치 전통적인 우리네 삶의 방식으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실제 그럴까? 소위 전통마을이라 부르는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그리고 서울의 북촌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이 집의 향을 잡을 때 기준으로 삼은 것은 바로 ‘안산(案山)’이라 불리는 것이다. 대지를 감싸듯 아늑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터잡기는 심지어 북향집도 만들어냈다. 결국 우리 조상들은 무조건적인 남향보다 집이 들어설 대지의 입지조건을 최적으로 살리는 배치를 우선했던 것이다. 대신 남향이 아닌 집들은 멋진 조망과 햇빛을 가득 담아내는 마당을 통해 새로운 ‘건축적 빛’을 만들어내었다.
<서울의 아파트단지>
모든 집의 환경이 똑같을 수 없다. 그러나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등지고 시끄러운 도로를 향하며 마치 빛에 굶주린 듯 획일적인 방향을 강요받는 아파트는 너무 무성의하다. 이로 인한 주거환경 악화는 도로의 방음벽 설치 등 공공이 모든 책임과 부담을 떠맡아야 한다. 건설업체들은 집을 너무 쉽게 지으려한다. 북향의 집이 약간 춥고 어두워 분양가가 떨어진다면 북향집만의 아이덴티티 개발을 통해 가치를 높여야 했다. 이제 ‘건축적 빛’을 어떻게 설계해 낼 것인가 하는 고민없이 획일화된 우리의 도시환경을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2005.9.15)
<북향집인 화성 정용채가옥의 햇살가득한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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